간식을 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눈 일행은
흐뭇한 마음으로 말미오름을 내려온다.
내려오는 길에 면한 시골집 앞에
매화꽃이 한창이다.
벌써 제주 전역에 피었던 매화꽃들은
끝이제 천천히 물로 가고 있다.
골목길을 다 나왔을 때 비가 세어져서
차나 한 잔 마실 겸
‘종달수다뜰’에 들어가서
당근 주스와 막걸리로 비를 그었다.
나와서 종달교차로를 건너는데
비가 다시 커진다.
종달초등학교 옆을 지나
물이 고인 골목길을 지나고 보니
할머니들이 모여 고스톱을 치고 있다.
얼른 손을 들어 인사를 하니
들어오라는 시늉이다.
웃으며 인사를 하고 지나는데
화분을 예쁘게 가꾸어놓은 것도 보이고
서다시 너 군데의 매화가 우리를 맞는다.
옛날 소금밭은 더러 개간되어 보리를 갈았고
더러는 갈대밭으로 변했다.
옛날 소금을 생산하여 먼 곳까지 지고 가서
농작물 같은 현물로 바꾸어 왔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추억에 젖었었는데,
좋은 아이템을 가지고 이곳을 이용할 수 있는 날이 오길….
해안도로로 막 나가는 길에
조그만 저수지가 남아 있어
청둥오리 같은 철새들이 떠 있다가
“포로롱” 날개를 폈다 접는다.
바다는 언제나 넓고 포근하다.
멀리 우도와 성상 일출봉이 안개 속에 아득하다.
일행은 지금 제주시와 서귀포시의 어름을 지나고 있다.
해안가에 표지석 대신 세워놓은 해녀상이
안개 속에서 풍성한 모습을 드러낸다.
이 상을 만든 조각가가 푸근한 아줌마의
인심을 표현하기 위함이리라.
우리가 다녀온 말미오름의 모습이
안개 속에서 천천히 그 모습을 드러낸다.
서귀포, 아니 성산포 바다는
빗속에서도 설레고 있음이 역력하다.
언제부터 ‘성산포’ 하면
이생진 시인이 떠오르는지 모르겠다.
‘살아서 고독했던 사람 그 사람 빈자리가 차갑다
아무리 동백꽃이 불을 피워도
살아서 가난했던 사람 그 사람 빈자리가 차갑다
나는 떼어놓을 수 없는 고독과 함께
배에서 내리자마자 방파제에 앉아 술을 마셨다
해삼 한 토막에 소주 두 잔
이 죽일 놈의 고독은 취하지 않고
나만 등대 밑에서 코를 골았다
술에 취한 섬 물을 베고 잔다
파도가 흔들어도 그대로 잔다
저 섬에서 한 달만 살자
저 섬에서 한 달만 뜬눈으로 살자
저 섬에서 한 달만 그리움이 없어 질 때까지’
-이생진 ‘그리운 바다 성산포’ 일부
비는 더욱 거칠어지고
아침에 새로 꺼낸 우산살도 부러진다.
작년 방송 촬영하며 ‘조개잡이’ 했던 곳은
이제 물에 잠겨 가뭇없이 사라졌다.
송난포구 방파제에 갈매기가 조르르 앉았다가
카메라에 놀랐는지 몇 마리 날아올랐다가 다시 앉는다.
텃세를 하려 함인지 몇 마리는 끄덕도 않는다.
오른쪽으로 언제 복원을 했는지
오소포연대가 의젓이 바다를 지켜보고 서 있다.
갑문교 못 미쳐 한도로를 만났을 때
빗속에서 진행하는 게 안쓰러웠는지
교수님이 택시를 타고 가서 차를 가지고 왔다.
아직 광치기 해변까지 4.5km 남았는데
다음에 가게 되면 여기서 시작하면 되지 않느냐고,
‘아. 생각하기에 따라서 그렇게도 되는구나.’
그러고 보니, 아랫도리는 전부 젖었다.
이렇게 해서 새로 시작하는 올레 첫 나들이는
끝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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