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디카 일기

수줍은 분홍 메밀꽃

김창집 2016. 6. 14. 00:17


이제는 새 종자가 개발되었는지

메밀도 이모작을 한다.

 

이른바 봄 메밀을 재배하면서

축제도 하게 되었다.

    

토요일엔 

올레 제3코스 중 온평리에서 김영갑 갤러리까지 걷었는데,

중간에 반가운 메밀꽃이 보여 다가서는 순간,

분홍빛이 더러 눈앞에 들어왔다.

 

생전 처음 보는 광경이어서

앞서 지나쳐버린 일행을 큰 소리로 불러

이 꽃의 존재를 알렸다.

 

그런데 집에 와서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붉은 메밀꽃 또는 분홍 메밀꽃으로

몇 군데 소개가 되었다.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에 나오는 허생원처럼

나만 아둑시니 같이 모르고 지내온 것 같다.

     

 

메밀꽃 필 무렵 - 박인걸

 

어슴푸레한 달 빛 아래로

흰 빛 엷은 꽃 파도가

메밀 섶 연실 흔들며

그리움을 토하고 있다.

 

하얗게 핀 밭둑에 앉아

눈빛으로 소곤거릴 때

일렁거리는 꽃향기만큼

우리들 가슴도 출렁거렸지.

 

달아오르던 첫사랑은

꽃잎처럼 활짝 피어나고

꽃잎만큼 많은 이야기들을

은하수가 멈추도록 엮어갔다.

 

지금은 빛바랜 추억으로

마음 한 구석에 뒹굴지만

메밀꽃 필 무렵이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른다.

        

 

메밀꽃 - 조성심

 

달빛을 닮았습니다

그건

내 가난함 그대로 드러난 순수

 

돌무더기 들추어내고

뿌려진 씨앗에서

그대를 향한

그리움 하나

버팀목으로 하여

오롯이 꽃 피울 수 있었습니다

 

밤새도록 귀를 기울였습니다

수런수런 들려오는 속삭임들이

고독을 이겨내려는

작은 몸부림으로

서로 부대끼며 다독였습니다

 

아픈 적막이 흐른 후에야

꽃빛보다

더 하얀

메밀 속살 받아 안으며

눈물져 내립니다.

     

 

메밀꽃 필 무렵 - 최광림

 

이렇듯 찬란한 날에

빈 들을 서성인다 치자

보태고 뺄 것도 없는

여백의 이력서에

가끔씩

철새를 불러

()이라도 치고싶다

 

지금쯤 봉평 뜰엔

메밀꽃 한창이겠네

술 익듯 달도 익어

시가 되어 내리는

물방

풀무질소리

십리밖에 환하겠다

 

발가락이 닮은 강이

산을 끌고 내려온다

막걸리 한 사발에

신명이 난 춤사위여,

허생원

소맷자락에

둥지 트는 해산달.

    

 

 

메밀꽃 밭을 지나며 - 고재종

 

누이야, 달빛 한 자락만 뿌려도

서리 서리 눈물 떼 반짝이는 이 길을

사나이 강 다짐으로 그냥 넘으라는 것이냐

누이야,잔바람 한 자락만 끼쳐도

마음의 온갖 보석들 싸하니 이는 이 길을

사나이 꺼먹 꺼먹 차마는 못 넘겠다.

 

지나온 절간에서 댕- 울리는 종소리가

한 귀에서 다른 귀로 빠져나가는 순간

영혼의 쇠든 것이 싸악 씻기는 경우 였다

그리하여 멧새 몇 마리 뒤척이며

깃에 묻은 이슬 부리는 소리에도

환약 먹은 듯 환약 먹은 듯한 마음 자린데,

누이야, 한 가지에 나고 가는 곳 모르온저

 

나는 더 더욱 명부의 꽃밭은 모르고

이렇게는 메밀꽃밭을 그냥 넘으라는 것이냐

소금 같은 소금 같은 눈물의 보석 일구어

은하수 하늘에다 서걱 서걱 옮기어 놓고

이렇게는 이 가을 차마는 못 넘겠다.

        

 

메밀꽃 - 이영균

 

바람결에 나부끼는 9월의 여인

널 안고 섰노라면 내 가슴은 시리다

어찌하여 너의 팔랑거림

내겐 땅속 깊이 꺼져 내리는

주저앉고 싶은 그리움이 되었는지

천상녀의 하얀 드레스 속엔

왜 허허로운 내 아버지의

빛바랜 내음이 배어나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아마도 넌

내 아버질 사랑한 기억이었나 보다

 

넌 그리 희게 물결쳐 감추려 애써도

그런 맘 서늘한 바람결엔

배어난 내 아버지의 훈기 짙게 다가온다

밀려드는 회상의 편린

아 꽃잎들이여

이젠 내 아버질 만난 듯

날 그리워하여 그리 안겨오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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