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새 종자가 개발되었는지
메밀도 이모작을 한다.
이른바 봄 메밀을 재배하면서
축제도 하게 되었다.
토요일엔
올레 제3코스 중 온평리에서 김영갑 갤러리까지 걷었는데,
중간에 반가운 메밀꽃이 보여 다가서는 순간,
분홍빛이 더러 눈앞에 들어왔다.
생전 처음 보는 광경이어서
앞서 지나쳐버린 일행을 큰 소리로 불러
이 꽃의 존재를 알렸다.
그런데 집에 와서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붉은 메밀꽃 또는 분홍 메밀꽃으로
몇 군데 소개가 되었다.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에 나오는 허생원처럼
나만 아둑시니 같이 모르고 지내온 것 같다.
♧ 메밀꽃 필 무렵 - 박인걸
어슴푸레한 달 빛 아래로
흰 빛 엷은 꽃 파도가
메밀 섶 연실 흔들며
그리움을 토하고 있다.
하얗게 핀 밭둑에 앉아
눈빛으로 소곤거릴 때
일렁거리는 꽃향기만큼
우리들 가슴도 출렁거렸지.
달아오르던 첫사랑은
꽃잎처럼 활짝 피어나고
꽃잎만큼 많은 이야기들을
은하수가 멈추도록 엮어갔다.
지금은 빛바랜 추억으로
마음 한 구석에 뒹굴지만
메밀꽃 필 무렵이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른다.
♧ 메밀꽃 - 조성심
달빛을 닮았습니다
그건
내 가난함 그대로 드러난 순수
돌무더기 들추어내고
뿌려진 씨앗에서
그대를 향한
그리움 하나
버팀목으로 하여
오롯이 꽃 피울 수 있었습니다
밤새도록 귀를 기울였습니다
수런수런 들려오는 속삭임들이
고독을 이겨내려는
작은 몸부림으로
서로 부대끼며 다독였습니다
아픈 적막이 흐른 후에야
꽃빛보다
더 하얀
메밀 속살 받아 안으며
눈물져 내립니다.
♧ 메밀꽃 필 무렵 - 최광림
이렇듯 찬란한 날에
빈 들을 서성인다 치자
보태고 뺄 것도 없는
여백의 이력서에
가끔씩
철새를 불러
란(蘭)이라도 치고싶다
지금쯤 봉평 뜰엔
메밀꽃 한창이겠네
술 익듯 달도 익어
시가 되어 내리는
물방
풀무질소리
십리밖에 환하겠다
발가락이 닮은 강이
산을 끌고 내려온다
막걸리 한 사발에
신명이 난 춤사위여,
허생원
소맷자락에
둥지 트는 해산달.
♧ 메밀꽃 밭을 지나며 - 고재종
누이야, 달빛 한 자락만 뿌려도
서리 서리 눈물 떼 반짝이는 이 길을
사나이 강 다짐으로 그냥 넘으라는 것이냐
누이야,잔바람 한 자락만 끼쳐도
마음의 온갖 보석들 싸하니 이는 이 길을
사나이 꺼먹 꺼먹 차마는 못 넘겠다.
지나온 절간에서 댕- 울리는 종소리가
한 귀에서 다른 귀로 빠져나가는 순간
영혼의 쇠든 것이 싸악 씻기는 경우 였다
그리하여 멧새 몇 마리 뒤척이며
깃에 묻은 이슬 부리는 소리에도
환약 먹은 듯 환약 먹은 듯한 마음 자린데,
누이야, 한 가지에 나고 가는 곳 모르온저
나는 더 더욱 명부의 꽃밭은 모르고
이렇게는 메밀꽃밭을 그냥 넘으라는 것이냐
소금 같은 소금 같은 눈물의 보석 일구어
은하수 하늘에다 서걱 서걱 옮기어 놓고
이렇게는 이 가을 차마는 못 넘겠다.
♧ 메밀꽃 - 이영균
바람결에 나부끼는 9월의 여인
널 안고 섰노라면 내 가슴은 시리다
어찌하여 너의 팔랑거림
내겐 땅속 깊이 꺼져 내리는
주저앉고 싶은 그리움이 되었는지
천상녀의 하얀 드레스 속엔
왜 허허로운 내 아버지의
빛바랜 내음이 배어나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아마도 넌
내 아버질 사랑한 기억이었나 보다
넌 그리 희게 물결쳐 감추려 애써도
그런 맘 서늘한 바람결엔
배어난 내 아버지의 훈기 짙게 다가온다
밀려드는 회상의 편린
아 꽃잎들이여
이젠 내 아버질 만난 듯
날 그리워하여 그리 안겨오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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