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세상

김순이 시인의 들꽃시편

김창집 2016. 7. 7. 09:35

 

산수국 사랑

 

중년의 사랑은

외로워 푸른빛이다

 

깊은 산 속에 피어나는

산수국 닮아 그리워하나

다가설 수 없는 사랑

 

우기(雨期)의 긴 빗소리

그늘을 밟으며

자욱한 숲으로 퍼지고

가슴엔 나직한 휘파람 소리

 

펴 보일 수 없으매

차라리 속으로 품어 안아

웃음 속에 눈물이 어리는

깊고 푸르른 빛

 

어쩌다 가슴을 베었는가

울 수도 없는 아픔으로

자꾸만 여위어 여위어

 

그리워질 때마다

찾아가 바라보네

비안개 속에 피는 산수국

      

 

 

누구 나에게

 

누구 나에게

저 자귀나무 꽃 한 가지

꺾어 주지 않으려오

 

아라비아 공주의 눈꺼풀 같은

소근 대는 귓속말 같은

잡으려는 순간 사라지는 꿈결 같은

저 세상의 꽃

 

비린 욕정에 흔들리지 않은 누구

나를 위하여

분홍빛 명주실 피 흐르는

자귀나무 꽃 한 가지

달려가 꺾어주지 않으려오.

        

 

 

버릴 것 다 버리면

 

민들레 꽃씨가 바람에 날아간다

사람도 그러하리라

어느 날 다 익으면

버릴 것 다 버리면

꽃씨가 되어서

한없이 가벼워져서

땅에 묻히지 않고

얼마든지 날아갈 수 있다.

저 무한 허공으로

        

 

 

엉겅퀴

 

너를 사랑하게 되면서부터

입술을 깨무는 버릇이 생겼다

 

가시 많은 엉겅퀴가 나인 것만 같아

뼈저린 그리움이 온통가시로 변하여

너를 찌르고 있는 것만 같아

 

슬픔이 독인 줄 알면서도

목젖이 아프도록 삼키는 나는

너를 사랑하게 되면서부터

문득문득

눈물이 핑 도는 버릇이 생겼다.

      

 

 

에미의 노래

 

가다가 도라지 꽃밭을 만나거든

네 에미 아린 가슴인 줄 알아라

미녕적삼 몽당치마 하나로

그렇게 야윈 젊음 이울었느니

 

가다가 엉겅퀴 밭을 만나거든

네 에미 아픔 가슴인 줄 알아라

걸음걸음마다 가시 돋아

그렇게 눈물지며 살았느니

 

가다가 고사리 밭을 만나거든

네 에미 설운 가슴인 줄 알아라

꺾이어도 꺾이어도 다시 돋아

그렇게 되살아나며 살았느니

        

 

 

돌매화(巖梅)

 

바람의 손금 같은 선율로

너는 핀다

 

내 마음의 산정에

그 차가운 벼랑에

 

칼바람 에이는 바위가슴에

피맺힌 발부리 가누어

결 곱게 피어나는

작은 꽃이여

야성의 혼이여

 

꺾이어 쓰러질 때마다

아픈 눈물 먼 훗날로 미루고

부르라

사랑하는 별의 이름을

    

 

 

 

엉겅퀴 꽃

 

누구라 알까

저 엉겅퀴꽃의 외로움을

 

내돋친 가시마다

안으로 끌어안은 사랑이라 하리

저 혼자 삭히는

불같은 마음이라 하리

 

바람만 내달리는

황량한 들판에

헤매는 그리움

묻어본 사람이나 알까

 

손가락 마디마디

피가 맺히는 사랑을

 

                                         --김순이 시집 '오름에 피는 꽃'(도서출판 제주문화, 2000.)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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