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산수국 사랑
중년의 사랑은
외로워 푸른빛이다
깊은 산 속에 피어나는
산수국 닮아 그리워하나
다가설 수 없는 사랑
우기(雨期)의 긴 빗소리
그늘을 밟으며
자욱한 숲으로 퍼지고
가슴엔 나직한 휘파람 소리
펴 보일 수 없으매
차라리 속으로 품어 안아
웃음 속에 눈물이 어리는
깊고 푸르른 빛
어쩌다 가슴을 베었는가
울 수도 없는 아픔으로
자꾸만 여위어 여위어
그리워질 때마다
찾아가 바라보네
비안개 속에 피는 산수국

♧ 누구 나에게
누구 나에게
저 자귀나무 꽃 한 가지
꺾어 주지 않으려오
아라비아 공주의 눈꺼풀 같은
소근 대는 귓속말 같은
잡으려는 순간 사라지는 꿈결 같은
저 세상의 꽃
비린 욕정에 흔들리지 않은 누구
나를 위하여
분홍빛 명주실 피 흐르는
자귀나무 꽃 한 가지
달려가 꺾어주지 않으려오.

♧ 버릴 것 다 버리면
민들레 꽃씨가 바람에 날아간다
사람도 그러하리라
어느 날 다 익으면
버릴 것 다 버리면
꽃씨가 되어서
한없이 가벼워져서
땅에 묻히지 않고
얼마든지 날아갈 수 있다.
저 무한 허공으로

♧ 엉겅퀴
너를 사랑하게 되면서부터
입술을 깨무는 버릇이 생겼다
가시 많은 엉겅퀴가 나인 것만 같아
뼈저린 그리움이 온통가시로 변하여
너를 찌르고 있는 것만 같아
슬픔이 독인 줄 알면서도
목젖이 아프도록 삼키는 나는
너를 사랑하게 되면서부터
문득문득
눈물이 핑 도는 버릇이 생겼다.

♧ 에미의 노래
가다가 도라지 꽃밭을 만나거든
네 에미 아린 가슴인 줄 알아라
미녕적삼 몽당치마 하나로
그렇게 야윈 젊음 이울었느니
가다가 엉겅퀴 밭을 만나거든
네 에미 아픔 가슴인 줄 알아라
걸음걸음마다 가시 돋아
그렇게 눈물지며 살았느니
가다가 고사리 밭을 만나거든
네 에미 설운 가슴인 줄 알아라
꺾이어도 꺾이어도 다시 돋아
그렇게 되살아나며 살았느니

♧ 돌매화(巖梅)
바람의 손금 같은 선율로
너는 핀다
내 마음의 산정에
그 차가운 벼랑에
칼바람 에이는 바위가슴에
피맺힌 발부리 가누어
결 곱게 피어나는
작은 꽃이여
야성의 혼이여
꺾이어 쓰러질 때마다
아픈 눈물 먼 훗날로 미루고
부르라
사랑하는 별의 이름을

♧ 엉겅퀴 꽃
누구라 알까
저 엉겅퀴꽃의 외로움을
내돋친 가시마다
안으로 끌어안은 사랑이라 하리
저 혼자 삭히는
불같은 마음이라 하리
바람만 내달리는
황량한 들판에
헤매는 그리움
묻어본 사람이나 알까
손가락 마디마디
피가 맺히는 사랑을
--김순이 시집 '오름에 피는 꽃'(도서출판 제주문화, 2000.)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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