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디카 일기

밤이 저만큼 커졌는데

김창집 2016. 7. 9. 00:10



한 사날 동안 열대야를 겪고 보니

마른장마 중 시원한 빗줄기가 그립다.

 

그런 중에도 시간은 모르게 흘러

밤송이를 저만치 키워놓았다.

 

벌써 가을을 그려보는 건 욕심인가?

저게 여물어 벌어지면 그만인 걸

 

하긴 훅하게 지나고 보면

여름은 너무 짧았다 싶겠지?

 

더워지면 산에 오르라고

산에 가서 여름을 보내라네.

    

 

 

근심거리 - 권경업

 

이 땅에 그나마 몇 남지 않은 산자락

대원사 지나 시오리 조릿대밭 길

간간이, 굴참나무 낙엽

하릴없는 내 나이처럼 쌓여 가는 곳

봉우리마다 피는 바람꽃, 기다림에 야윈 가슴 위해

세평 뜨락 아무렇게나 마른 풀섶에서

풀벌레는 제 명을 깎아서 운다

어찌 들으면, 눈물처럼 솟는 설움같기도 하고

어찌 들으면, 밤새 부를 초혼가같기도 한 소리

 

별이 되어 버린 그리움들

밤하늘 가득 돌아오라며 불 밝힌 처마 끝

비탈의 나무들 단풍 든 지 오래, 이제는 잎마저 져

한 차례 소슬바람 헤집고 간 뒤

이런 풍광에 담담해 하는 민 씨

노구솥 가득 마가목술 내어 놓는다

 

이슥토록, 그리운 이를 그리워하는 이야기 끝에

산중의 이야기 시() 아닌 것이 어딨겠냐만

마지막 사과알 여물어 가는

새재 아래 과수밭까지

어제는 전기가 들어오는 오늘은 새 도로가 닦이고

그 뒤를 따라 행락객 왁자지껄 들어온다며

그나마 몇 남지 않은 산자락 또 근심거리가 생겼다

---

*노구솥-등산이나 야외용의 솥. 코펠.

        

 

 

그리움 앞세워 - 권경업


핏기 없는 하늘 조금씩 나누어 품고

가을을 앞세워 새재를 넘자

 

가다 보면 어느새 품안엔 솔솔바람, 그 바람 줄곧

평촌리 들녘 쫓아오던 세속(世俗) 것인 줄 알겠지만

 

지금은, 고향 떠나 어느 먼 도시

쉬 중년을 넘겨 낯설게 늙어 갈

어느 소녀의 눈빛 같은 조개골

둥둥 걷은 그리움의 맨종아리로 건너면

까치발 발돋움으로, 혹여

아쉽게 떠나보낸 봄날이 저만치

연분홍 연둣빛 아름다운 날들이 저만치

 

목을 빼 바라보는 장당골 굴참나무 숲

어디선가, 후두둑 여문 도토리 떨어뜨리는

산죽(山竹)밭 맑은 댓바람 있으니

하산한 뒤 다시 그 가슴으로 하늘 짜 맞춘다면

세상 온통 싱그럽지 않을까

 

여보게, 그런 새재를 넘어 보지 않을래

아득한 그리움에 다가가려면

가을을 앞세워 가야 한다기

        

 

토왕성의 빛 - 권경업


푸른 빙벽은

계곡을 흐르던 달빛의 결정이다

날개 없이 하늘에 다다를 수 있는

지상의 유일한 길이며

젊은 날 오르려했던

많은 산꾼들의 이상향이었다

 

처음 보는 이들 눈멀게 하던 차가운 빛

목메이던 한번의 오름짓은

모두의 부러움이었으며

밤이면 먼 바다의 오징어잡이 집어등集魚燈

돌아가야 할 지상의 좌표로 떠다녔다

아침이면 오름꾼의 정열

동녘바다의 해처럼 타올라

세찬바람이

, , , , , 진의 사이를 헤집어도

우정은 노적봉의 자작만큼 빛났고

사랑은 비룡폭포 두터운 얼음장 밑

도란거리는 물처럼 쉼없이 흘렀다

 

이제 우리들 사이에는

아득한 그리움이 설악의 능선처럼 자리했는데

젊은 꿈을 키우던 금정산 비탈로

그대들 뿌려둔 토왕성의 빛이

오월의 푸르름으로 번져오른다


---

*토왕성: 외설악에 있는 수직 고도차 약 400m의 국내 최대 빙벽

*금정산: 부산의 대표적인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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