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세상

宵火 고은영의 가을 시편

김창집 2016. 9. 28. 08:06



비 내리는 아침입니다.

9월의 마지막 자락을 적시듯

밤부터 시작된 비는

여름과 가을을 구분 짓기 위해

내릴 만큼 내리고서야 멈출 것 같습니다.

 

일요일 산행에서

붉게 물든 한 무더기의 나무들을 발견하고서야

문득 가을이 오고 있음을 알았었는데,

 

어제는 새벽부터 하루 종일

가족묘역 울타리 개수작업장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오후 한 때

햇볕이 없는데도 엄청난 더위에 시달렸습니다.

이제 보니 여름의 마지막 발악이었던 것 같네요.

 

어제 찍은 이질풀 꽃과 씨방의 모습이

가을을 알리는 것 같아

화가이자 시인이신 宵火(소화) 고은영의 가을 시편과

함께 올립니다.

        

 

비와 함께 가을을 동봉합니다

 

무수한 외로움을 견디다

고독과 벗하는 쓸쓸함이

빗물에 더욱 농도 짙은

계절의 안부를 물을 때

 

우리 사랑도 점점 엷어져 빛 바래다

사라지는 신기루처럼 허망한 날

떠나간 그리움에 혼불을 지피던

그 여름 정염의 피날레에 젖어드는

서늘한 가을 비의 입맞춤

 

누군가 영원히 돌아 올 수 없는

꽃 상여에 목을 놓듯

처연한 사이렌 빗속을 질주하고

윙윙 또 하나의 생명이

소실점을 예견하는 여름의 막장에서

여름내 무수한 꽃들이 환한 미소도

계절의 사랑 속에 익던

아가서의 눈물진 애틋함의 노래도

이제 완연히 기우는 계절은 커피색

 

극명한 어둠의 이면으로 불거지는 삶속에

가을비는 가슴마다 여울져

그리움으로 그리움으로 흐르고 있어요

        

 

단풍 지는 가을


지리한 기다림에 가을은

주체할 수 없는 감동과 설렘을 저울질하다

단단히 닫아 건 가슴을 월장하고

해일처럼 밀려 온 것이다

 

낙하하는 것들은

험한 세상의 침묵을 깨트리지는 못해도

나약한 군상들의 식어버린 마음을 움직이고

굳은 가슴에 돌을 던지는 것이다

찡한 파문이 올 때까지

 

, 어느 여백의 한 귀퉁이를 허물며

다시 쓸쓸한 어둠의 사각지대로

흥건히 젖어 오감을 적시는 낙엽은

팔랑거리다 쌓이는 것이다

날마다 한적한 창가에 배부른 그리움을

하나씩 게워내기 시작하는 것이다

 

푸른 혈맥을 빨며 촘촘히 돋아났던 날개들이

하나씩 외롭게 부서져 가는 기로엔

햇살 든 단풍이 영혼에 가시로 박히고

사레든 목울대로 메마른 기침만 수시로 콜록대는 것이다

발열의 불꽃들이 적조한 시간마다 빨간색으로

뜨겁게 뜨겁게 떼 지어 꽃을 피우는 것이다

    

 

 

가을, 능금빛 계절

 

씁쓸한 시간의 텃밭에서

미지근한 겻불처럼

이 밤

설익은 시간에 흐르는 빗소리

가을비 양수에 홀로 젖는 침상

 

서름서름한 미완의 탯줄로 남아

9월이 가슴에 무지한 대화처럼

자주 비가 내리고

 

날이 갈수록 점점 더 깊어지는

가을이라 가을 닮은 빛의 처연함

서러운 단내로 가득해 지면

 

남들이 다 웃더라도 한번은

사랑을 위한 사랑을 위해

잃어버린 기억들을 줍는

21g의 가벼운 영혼에

능금처럼 고운 물들여

식어가는 가슴을

눈물겹게 뎁히고 싶어요

    

 

 

가을 아다지오 

 

, 그대의 손길은 유연하고

나는 아직도 그대의 사랑을

완벽하게 해독하지 못했다

세파에 시달리는 우리의 허구 속에

그대가 추구하는 사랑은 세속과 거리가 멀어

몇 천 년인들 변함이 없고

지상에 황홀한 낭만으로 이별을 고하며

상수리나무를 흔들고 자작나무를 흔들고

후박나무를 흔들고 온 숲을 흔들어 대는

도무지 정의할 수 없는 그대의 손길은

이 차가운 세상에 잠든 영혼을 깨우고

삶의 잠언을 예언하며 흐득흐득

사랑과 이별의 본질을 꿰뚫는

진정 아름다운 실존이구나

    

 

 

그리웠던 가을 속에서


그대여 잠을 잊었는가

푸른 춤을 추던 자유의 목멤 속에

이제 가을이 홍반처럼 물들어 가는구나

소식 없는 안부를 기다리지 마라

시간은 지루해도 변하지 않는다

다만, 너와 내가 변해가는 일이고

왜소한 이면의 꿈을 조금씩 잃어가는 일이다

 

청춘은 이미 시든 꽃으로 떠돌고

너울너울 비 내리는 가을 벌판

언제고 맨발로 헤매는 서글픈 편린들

고적한 변방은 쓸쓸해도 말이 없다

 

잡을 수 없는 기억들이 심연에 가시로 박혀

수시로 가슴 찌르는 전율로 영혼을 흔든다

나는 내 인생을 담담하게 서술하고 싶었다

상처나 아픔 없이 노을진 풍경처럼 잔잔하게

 

나는 안개 자욱한 숲으로 걸어 들어가리라

그리웠던 가을 속 혼돈의 페이지에 안개는

은밀하게 지독한 자각 증상을 불러 일으킨다

그때에 정적의 긴 침묵을 깨고 지나간 모든 사랑을

나는 하나씩 읽어 가리라

    

 

 

가을이 나에게로 왔다

 

가을은 산에 있다

가을은 들에 있고

가을은 하늘에 있다

가을은 도심을 휘젓고

가을은 시골의 한적한 들길을 헤매고

가을은 농로의 황토벽에 발자국을 남기고

가을은 얼키설키 푸른색을 좋아해서

푸른색을 먹어치운다

 

떡잎들은 푸른빛을 잃어 몸살을 앓고

두런두런 붉어지는 눈빛만 말똥거리고

가을이 발화되면 온 산이 탄다

타는 산은 갈밭을 구르다

강물로 가 몸을 담그고 뜨거운 가슴으로

물구나무선 하늘을 양껏 마시고

하늘은 놀라움에 습기 잃은 파리한 얼굴로

자꾸만 더 높이 달아나고 있다

 

가을은 온종일 쏘다니다가

긴 장문의 편지를 들고

피곤에 절은 얼굴로 나에게로 왔다

가을은 소리도 없이 내 집의 덧문을 열고

자리가 있는 곳마다 다리를 뻗고 뒹굴기도 하다가

침대 위에 책상 위에 토악질을 해대고

빈자리마다 와인 빛 사연들로 물들이고 있다

내 가슴을 영혼을 출구 없는 날개 죽지를

붉게 물들이며 가을은 나까지 다 태울 작정인 갑다

 

 

소화 고은영 Gallery & Poem’에서

     http://cafe.daum.net/kong11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