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우리詩' 2월호의 시와 백서향

김창집 2017. 2. 1. 08:26


<우리> 2월호 주요 목차

 

권두 에세이 | 임채우

신작시 26| 차영호 서정문 주경림 김기찬 김청미 김성중 김미외 김세형 박영배

    배두순 조경진 조성순 남정화 박동남 이기헌 이강하 한문수 김이안 김원희 오명현

    오광석 김은옥 김혜천 박노식 전선용 최영랑

기획연재 인물: 이인평

신작 소시집 | 성숙옥

테마 소시집 |홍해리

시 에세이 | 나병춘 김승기

한시한담 | 조영임

 

 

시작詩作 - 차영호

 

말은 거울이라고?

 

그럼 나는 여태껏 거울 잔등에 올라타고

꼬질꼬질한 빨래를 빨고 있었던 게로구나

      


지는 꽃의 표정 - 주경림

 

자목련이 흐드러졌어요

 

호박꽃이 된서리를 맞았어요

 

능소화가 절반만 피고 떨어지려고 해요


금불초가 갈래갈래 시들었어요

 

동백꽃이 통째로 툭

 

그렇게 지고 있어요

 

모두 이중섭의 흰소, 황소, 싸우는 소

소꼬리 끝에서 피어난 꽃들이에요.

     

 

사랑 서설 - 박영배    

                                                       

사랑은 가슴에 담아

온몸으로 피워내는 꽃

전설의 별을 안고

눈물로 씻어내는 고통

한 겹 한 겹 내 욕망을 걷어

그대 허물을 덮어주고

밤새 이슬의 노래로

상처를 보듬어주는 일이다

 

인연의 굴레에서

바위가 되고 이끼가 되고

서로의 심장에

등불 하나씩 밝혀주는 것

무거운 짐을

함께 나누어 갖고

한 올 한 올 오색실로

꽃을 피워나가는 일이다

     

 

극빈 - 이강하

 

  무리한 구조 변경은 극빈이다

 

  한옥의 담이 살아 있는 나무라 좋았는데 그 자리에 CCTV와 철창이라니, 이유를 모른 이웃 사람들은 그 집 구석구석이 궁금하다 11월이 되면 더 궁금하다 오래된 장독간은 사계절을 잊은 채 목이 마르고 뒤꼍 앵두나무와 포도 넝쿨은 수십 년 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듯 핼쓱하다


  극빈한 주인의 주름은 성형을 해도 불안하다

  곡창에 곡식이 가득한데도

  자꾸 그 집에서 도양이 울음소리가 난다

  춥고 배가 고프다

   

 

 

위태한 접신 - 김원희

 

시인이란 호칭 성스럽고 부끄러워

시는 쓰지 않으려 했는데

운명처럼 그가 비밀을 품은 듯 찾아왔다

 

시와의 합궁 묘미가 일탈의 외도와 견줄까

불면의 밤은 화려한 궁으로 변하고

세상 모든 것은 그가 되었다

 

시를 잉태한 만삭의 처녀

작두 타는 애기무당처럼 홀린 듯

접신의 위대함인지 위태함인지

시의 보살 내안에 들다

 


햇빛사다리 - 김혜천

 

여행은 서사敍事

 

공간을 날아다니는 새들의 사연으로

마음 높이를 키우고

그 높이를 따라 걷다보면

공유한 시간으로 창이 열리고 깊숙이

묻어 두었던 생각을 꺼낼 수 있는 용기가 생긴다

 

그와의 만남은

갈퀴처럼 모든 걸 앗아갔지만

모래 위에 쏟아낸

마지막 피 한 방울을 통하여

나를 바라보는 동공을 넓히고

바닥을 딛고 솟구칠 힘을 키웠다

 

서사의 중심에 나를 세우고

계곡 물소리를 따라 걷는 길

빛은 멈추지 않고

자작나무 숲 사이로 사다리를 놓는다

 

바닥까지 추락한 나도

저 햇빛사다리를 타고 오르면

그곳에 닿을 수 있을까

   


산중일기3 - 박노식

     -처마 아래에서

 

볕이 드나드는 처마,

그 아래 서서

양손을 바지주머니에 넣는다

 

손도 비고 주머니도 비고

 

구름 같은 눈도 비어서 평안하다

     

 

그림자 - 전선용

 

뚜벅뚜벅 걷다가 성큼성큼 다가오는 그림자를 본다

 

밟을 수 없는 존재

 

너였구나.

 

내가 흔들리면 같이 흔들리고

 

쓰러질 때 함께 누운,

 

불 꺼진 방에서 증발된 너는 지금 어디에 있나

 

아직 아침은 멀었는데.


                                                *'우리詩' 2017년 2월호(통권344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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