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타래난초를 노래한 시들

김창집 2017. 8. 13. 08:10


타래난초 - 홍해리(洪海里)

 

천상으로 오르는

원형 계단

 

잔잔한

배경 음악

 

분홍빛

카피트

 

가만가만 오르는

소복의 여인

 

바르르 바르르

떨리는 숨결.

    

 

 

타래란 - 김내식

 

장마철 뒷산의 할머니 무덤가에

웃자란 잔디사이로 타래타래

핏빛 한을 꼬아 올리며

귀 열고 사방을 둘러본다.

 

신혼의 단꿈을 깨고

일본군 총알받이로 끌려간 임

6.25전장에서 소식 없는 유복자

죽어서도 기다린다.

 

이른 봄엔 할미꽃이

백발을 휘날리며 위로해주고

참꽃이 이산 저산 붉게도 피어나면

두견이 피 토하며 울어주나

 

밤마다 실타래 감아가며

한숨과 눈물로 삭이던 한을

저승가도 풀지 못해

빗속에 울고 있다

    

 

 

타래난초 - 이명윤

 

중학생 또래나 되었을까

가늘고 앳된 연변 소녀들

서로를 묶은 채 허공에 길을 내고 있다

한 사람의 어깨 위에

한 사람의 발이 놓이고

또 다시 발이 올라타며

아슬아슬 허공을 오르고 있다

허공에 오르는 일은

하나 둘 믿음을 쌓아 올리는 일

누구 하나 허공에 발을 빠뜨려서는 안된다

중심이 흔들릴 때면

서로의 눈빛을 실타래처럼 묶는다

공연은 하루에 세 차례

그녀들에게 몸이란 유일한 돈벌이 수단

한번이라도 실수를 의심해선

피울 수 없는 꿈

모두들 투구(鬪具)를 쓴 채 하루하루

서로의 꿈을 잇는다

얼마나 올라가야

저 멀리 고향의 집들이 보일까

꽃과 꽃이 층계를 쌓아

마침내 하늘 길이 완성되자

순간, 소녀들 새처럼 날아

한 바퀴 공중을 돈다

그리움이 안전하게 착지한다

관객들의 박수소리

꽃잎처럼 우수수 진다.

    

 

 

타래난초 - 김승기(夕塘)

 

어여쁜 꽃을 달고서도

무슨 심사가 뒤틀려 온몸이 꼬였느냐고

수군덕거리지들 말거라

 

지구가 자전 공전을 하며 허공을 맴도는

이 땅에 뿌리 내린 몸이니라

 

몇몇 치매에 걸린 사람들이 흔들어 대는

광란의 몸짓

그 현란한 춤사위에

세상이 미쳐 돌아가는데

보잘것없는 몸뚱이 하나로 버티는 삶이

어찌 꼬이지 않을 수 있겠느냐

 

지금은 세월이 어지러운 땅이니라

삐딱하게 기울어진 지구 축이

바로 서는 날

배배 비틀린 이 몸도

말끔하게 풀릴 것이니라

 

그래도 몸은 꼬였을망정 뿌리까지는 뒤틀리지 않았느니라

      


타래난초와 한판 붙다 - 박남준

 

  어지럽다 타래난초 때문이다 안간힘으로 비틀어야만 꽃을 피울 수 있는가 비틀린 것만이 타래난초인가 어떤 힘이 타래난초를 저토록 가두었을까 무엇이 타래난초를 저렇게도

 

  타래난초에 갇혔다 저 진분홍의 유혹 같은 비틀림에 그 춤에 사로잡혔다 늪이다 맴돈다 저건 타래난초의 정체가 아니다 참을 수 없는 욕망이 아니다 삶이 이처럼 비틀린 채 내몰릴 수 있다니 비틀린 것들도 언젠가는 꽃을 피울 수 있는가 몸은 자꾸 낡은 수나사처럼 제자리를 헛돈다 이것은 나의 정체가 아니다 한 번도 단단하게 뿌리박혀보지 못한 발부리 끝이 갈 곳 없이 허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