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타래난초 - 홍해리(洪海里)
천상으로 오르는
원형 계단
잔잔한
배경 음악
분홍빛
카피트
가만가만 오르는
소복의 여인
바르르 바르르
떨리는 숨결.
♧ 타래란 - 김내식
장마철 뒷산의 할머니 무덤가에
웃자란 잔디사이로 타래타래
핏빛 한을 꼬아 올리며
귀 열고 사방을 둘러본다.
신혼의 단꿈을 깨고
일본군 총알받이로 끌려간 임
6.25전장에서 소식 없는 유복자
죽어서도 기다린다.
이른 봄엔 할미꽃이
백발을 휘날리며 위로해주고
참꽃이 이산 저산 붉게도 피어나면
두견이 피 토하며 울어주나
밤마다 실타래 감아가며
한숨과 눈물로 삭이던 한을
저승가도 풀지 못해
빗속에 울고 있다
♧ 타래난초 - 이명윤
중학생 또래나 되었을까
가늘고 앳된 연변 소녀들
서로를 묶은 채 허공에 길을 내고 있다
한 사람의 어깨 위에
한 사람의 발이 놓이고
또 다시 발이 올라타며
아슬아슬 허공을 오르고 있다
허공에 오르는 일은
하나 둘 믿음을 쌓아 올리는 일
누구 하나 허공에 발을 빠뜨려서는 안된다
중심이 흔들릴 때면
서로의 눈빛을 실타래처럼 묶는다
공연은 하루에 세 차례
그녀들에게 몸이란 유일한 돈벌이 수단
한번이라도 실수를 의심해선
피울 수 없는 꿈
모두들 투구(鬪具)를 쓴 채 하루하루
서로의 꿈을 잇는다
얼마나 올라가야
저 멀리 고향의 집들이 보일까
꽃과 꽃이 층계를 쌓아
마침내 하늘 길이 완성되자
순간, 소녀들 새처럼 날아
한 바퀴 공중을 돈다
그리움이 안전하게 착지한다
관객들의 박수소리
꽃잎처럼 우수수 진다.
♧ 타래난초 - 김승기(夕塘)
어여쁜 꽃을 달고서도
무슨 심사가 뒤틀려 온몸이 꼬였느냐고
수군덕거리지들 말거라
지구가 자전 공전을 하며 허공을 맴도는
이 땅에 뿌리 내린 몸이니라
몇몇 치매에 걸린 사람들이 흔들어 대는
광란의 몸짓
그 현란한 춤사위에
세상이 미쳐 돌아가는데
보잘것없는 몸뚱이 하나로 버티는 삶이
어찌 꼬이지 않을 수 있겠느냐
지금은 세월이 어지러운 땅이니라
삐딱하게 기울어진 지구 축이
바로 서는 날
배배 비틀린 이 몸도
말끔하게 풀릴 것이니라
그래도 몸은 꼬였을망정 뿌리까지는 뒤틀리지 않았느니라
♧ 타래난초와 한판 붙다 - 박남준
어지럽다 타래난초 때문이다 안간힘으로 비틀어야만 꽃을 피울 수 있는가 비틀린 것만이 타래난초인가 어떤 힘이 타래난초를 저토록 가두었을까 무엇이 타래난초를 저렇게도
타래난초에 갇혔다 저 진분홍의 유혹 같은 비틀림에 그 춤에 사로잡혔다 늪이다 맴돈다 저건 타래난초의 정체가 아니다 참을 수 없는 욕망이 아니다 삶이 이처럼 비틀린 채 내몰릴 수 있다니 비틀린 것들도 언젠가는 꽃을 피울 수 있는가 몸은 자꾸 낡은 수나사처럼 제자리를 헛돈다 이것은 나의 정체가 아니다 한 번도 단단하게 뿌리박혀보지 못한 발부리 끝이 갈 곳 없이 허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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