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소록도에 뜨는 달 - 이재부

김창집 2018. 3. 12. 19:14



소록도에 뜨는 달 - 이재부

 

  소록도에 뜨는 달은 환한 얼굴을 해무海霧로 가리고 지나간다. 하늘길이 춥고, 험해서가 아니라, 절망을 되새기는 나병 환자들의 가련한 모습에 마음이 아파서 그러하리라. 꿈꾸던 소망이 산산이 부서져 서릿발 같이 식었는데, 눈물로 녹여내는 체념의 통한을 어떻게 바로 보겠는가. 헐어서 무너지는 육체의 비명을, 그리움에 떨고 있는 고독의 절규를, 자유를 박탈당한 구속의 고통을, 바로 볼 수는 없었으리라. 구름에 얼굴 묻고, 굳어진 표정으로 언-, 언뜻 지나던 소록도의 달이 내 마음의 저편으로 기운다. 신음소리로 밤을 지새우는 환자의 아픈 모습을 가슴에 그리면서 월벽月壁에 그려진 잔상殘像을 더듬어본다. 달은 동서고금의 고통의 현상을 다 보았을 테니까.


  강제수용 되어, 온갖 고통을 다 감수해야했던 한센인의 삶의 흔적을 돌아보면서 만 가지 생각이 뇌리에 스친다. 보호받으며 치료받는 환자를 생각했었다. 질병과 싸우는 심신의 통증만 생각해도 마음이 아팠는데. 짐승 취급도 못 받고 악귀로 여겼던 비극의 현장이다. 또한 천사 같은 마음으로 봉사했던 사람들의 선행의 장소이기도 하다. 머릿속에 쌓인 내 관념의 체계가 허물어지고, 선과 악의 진폭에서 울리는 천둥소리를 듣는다. 선행이나, 악행은 사람에 의해 이루어지지만 그 심도와 폭은 바다보다 깊고, 넓다는 생각을 하며 파란만장한 삶의 흔적을 확인한다.



  악행을 악인 줄도 모르고 사는 사람을 소록도에 와서 발견한다. 1933년 일제는 소록도를 매수하여 1935조선나병 예방령을 근거로 1940년에 개원하였다. 전국 한센병 환자들은 의사의 검사도 없이 강제 송치되었단다. 원장에겐 징계 검속권을 주어 감식減食, 감금을 마음 대로하였다니 인권의 사각지대요, 횡포의 무법지대다. 공훈의 실적을 쌓기 위해, 공익共益을 내세워 악행과 비리의 강도를 높이다가 분노의 칼끝에 죽은 일인 소장은 어떤 일을 했을까.


 달빛도 찾아올 수 없는 동굴 같은 감금실엔 감금당했던 김정균의 시 한편이 지금도 걸려 있다. “아무 죄가 없어도/ 불문곡직하고 가두어 놓고/ 왜 말까지 못하게 하고/ 어찌하여 밥도 안 주느냐/ 억울한 호소를 들을 자가 없으니/ 무릎을 꿇고 주께 호소하기를.” 다 읽을 수 없다. 죽어간 원혼들의 통곡 소리가 들리는 듯. 감금된 사람은 출감할 때 단종수술(정관 수술)을 강제로 시켰다니, 삶의 소망을 남김없이 박탈당하는 그들의 처참한 형상이 눈에 어린다. 몸을 결박하고, 수술을 자행하던 원시의 수술대에서 피비린내가 나는 것 같다.

 


  아름다운 공원도 강제 노동으로 만들었다니, 저 울창한 수목 사이를 지나는 바닷바람 소리가 범상히 들리지 않는다. 기념 조형물 앞에서 설명문을 읽다가 쿵! 하는 내 가슴 뛰는 소리가 들린다. 한센인의 원혼의 함성이 파도로 밀려온다. 처우개선을 요구하다가 원생 84명이 죽었단다. 비문은 그 아픔을 후세인에게 고발하고 있다. 내방객의 가슴을 두드리는 글이다. 가는 곳마다 고통의 흔적이요, 인권이 짓밟힌 통한의 현장이다.

 

  똑같은 일인日人이면서도, 정성을 다해 감동감화로 환자를 돌본 소장도 있었단다. 한센인들이 배를 줄이면서, 좁쌀 한 홉씩을 모으고, 모아 정성의 공덕비를 세웠다 하니, 지옥과 천국이 다르게 보이지 않는다.

살기 험한 이곳 소록도에 와서 끝없는 봉사로 일생을 채우면서도 아름다운 선행을 숨기고 떠나간 외국 수녀님들을 생각하면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일생을 살면서 어떤 흔적을 남겨야 할까. 증오와 고통의 흔적으로 점철된 소록도에서 진혼鎭魂의 파도소리가 들린다. 고혼孤魂을 달래던 달빛, 달을 바라보며 신을 부르던 그 흐느낌이 가슴을 적시는 물결 소리로도 들린다. , 달님은 한마디 위로도 하지 못했을까. 지상의 희노애락을 다 보고 가면서도, 흔적도 남기지 않는 달빛! 외로운 사람에겐 자기를 비추고 위로 받는 거울일 텐데. 무심한 달이라고, 원망했을까.


  고통으로 살아간 사람들, 봉사로 일생을 살다간 선인들, 악행으로 양심을 버린 이들……. - 꿈을 꾸다가 고개를 드니, 소록대교가 시야에 들어온다. 감금도 열리고, 마음도 통하는, 왕래의 자유가 보장되는 육지를 잊는 무지개다리다. 소록도 사람들 꿈을 펼칠 희망의 관문이리라. 환한 달빛 미소가 걸친 듯, 육중한 교각이 청년의 나신裸身으로 보인다. 소록도 사람들에게 희망의 노래를 불러줄 우렁찬 남성합창단이리라. 달아! 밝은 달아! 소록도 사람들 생활 무대에 환한 조명으로 그들의 웃음을 비춰다오.

 

 

* 2009523일 청주문인협회 시민과 함께 하는 문학기행에서

* 월간 우리’ 3월호(통권 제357) 일곡 이재부 시인 추모 특집에 실림

* 사진 : 2017년 5월 17일 소록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