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머니께 드리는 글 - 이숙영
사무치는 그리움으로 늘 제 가슴 속에 살아계신 어머니,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온 아픈 계절 4월에 하늘에서 내려다 봣수가?
굳은 신념과 열정으로 교육에 헌신하던 아버지가 4.3사건으로 끌려가 사라봉 기슭에서 소나무에 묶여 총살당하시던 날 산등성이에 맴돌던 까마귀 구슬픈 울음소리를 저 하늘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착한 사람을 왜 학살했는지 밝혀 달라’ 누구에게도 물어볼 수 없는 마흔네 살 어머니는 시부모 모시랴 어린 것들 키우랴 울 틈 없어 안으로 불러든 울분을 밤이 되면 쏟아내는 흐느낌
‘어머니 밤에 무사 울언?’ 이 한 마디를 묻지 못하고 여섯 살 막내는 서러움으로 철이 들며 자랐습니다.
제주도 최초로 한악대를 창간하며 음악교육에 앞장선 큰 오빠가 예비검속에 끌려가 수장되었다는 소식이 전 해지던 날 ‘아이고 집안에 주춧돌이 무너졌다. 우리 어떻게 살아갈고’ 땅을 치던 어머니의 애끓는 통곡을 저 바다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짧은 운명 대신하여 오빠의 비석 옆에 어머니가 심어놓은 무궁화는 시대의 아픔을 잠재우며 해마다 피어나는 오빠의 영혼
4.3사건, 예비검속, 행방불명 그리고 연좌제 이 아픈 단어들을 가슴에 새긴 채 숨죽이며 살아온 70년. 이제 밝혀지는 4.3의 진실! 바로 세워지는 4.3의 역사 앞에 설움을 씻어내며 부르게 될 우리들의 희망찬 노래
죄 없이 가신님들이시여, 이 땅에 진정한 평화가 찾아오는 날 긴 세월 마디마디 맺힌 한을 풀어놓으시고 편히 잠드십시오.
* 4.3 70주년 추념식에서 유족대표가 낭독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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