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디카 일기

봄꽃 환한 아침에

김창집 2018. 4. 18. 08:14



이제 완연한 봄날이 되어

주변은 꽃 세상이 되었다.

 

벚꽃이 진 나무는 벌써

초록 잎으로 가득한 아침,

 

내일 아프리카로 떠나기에 앞서

쓰고 가야 할 원고가 많아

 

찍어 두었던 꽃들만 꺼내 보며

산으로 가고 싶은 마음을 달랜다.


   

하늘매발톱꽃 - 김여정

 

  강원도 평창 자생식물원에서 모종으로 키우는 매발톱꽃 빛깔은 자주색이 주종으로 남색꽃은 드물다고 했는데 노르웨이 오따호텔 주변 동화속 마을로 이어지는 하얀길을 따라 걷다보면 온 산언덕을 뒤덮고 있는 남색 매발톱꽃과 만나게 된다 곳곳에서 밤낮으로 쏟아져내리는 빙하의 폭포수 소리에 항상 깨어 있어 저토록 파아란 빛깔을 뿜어낼 수 있을까, 매발톱꽃의 빛깔이 저러해서 폭포수 빛깔이 시리도록 맑은 비취빛일까, 꽃의 빛깔에 눈을 빼앗기고 걷는 동안에 동화의 마을 꿈의 작은 창문 앞에 선다 알프스의 소녀가 살았을 법한 창문가에도 예쁜 꽃들이 이방의 나에게 다정히 인사를 건넨다 그 순간부터 내 가슴속에도 하얀 외줄기 언덕길이 생기고 동화의 마을 작은 꿈의 창문이 열려 남색 매발톱꽃 언덕으로 달린다


 

 

금낭화 - 김정호(美石)


떠난 님 그리워 하다가

속살 툭하고 터져 버렸네

서러워 고개 들지 못해

그렁그렁 맺힌 눈물

소리내 울지 못하고

고운 자태 흐트러질까

옷고름으로 눈물 훔치네

커다란 눈물주머니에

남몰래 밤 새워

퍼 담은 붉은 바다

꽃잎을 스치는

작은 바람에도 파르르 떠는

저 처절하도록 맑은 영혼

너를 가두지 못한 것은

나의 죄

그것은 내 사랑

수줍은 초록 바람도 비껴가는

목숨보다 진한

꽃을 본다


 

 

각시붓꽃에게 - 양전형

 

너는 아무런 잘못이 없으면서

숲 속에 숨어

시골처녀처럼 고개 숙여 피었지만

나는 잘못이 많으면서도

엄숙한 태양의 면전에 고개 번쩍 쳐들고

건방지게 피어 있지

 

너는 결코 작은 게 아냐 내가 아무리 곱게 핀다 한들

너 한송이 자태만 못하지

내가 아무리 정열적으로 피어 세상을 사랑한다 한들

너 한송이, 그 열정과 색깔을 낼 수가 없어

 

너처럼 예쁜 눈도 없고

너처럼 조용조용 말도 못하지

너 앞에 서면 나는 정말 작아져

내 꽃잎 화르르, 단숨에 지고 말아

꽃이 안 되고 마는 거지

        

 

까치 숨결, 남해 보리암 - 김윤자

 

산모의 배앓이로

남해 바다는 뽀얗게 젖어 있다.

하나의 태양을 낳기 위해

한려해상공원 산과 바다는

죽음처럼 고요하다.

뜨거운 양수 헤집고

목을 내민 태양

금산 준령 서방님 큰 손으로

덩그러니 고산 봉우리에 올려지고

칠백 십 미터 산굽이 돌고 돌아

이승의 고통 사르고 오른

보리암 부처 석상은

이른 사월 새벽 갯바람 서늘해도

백작약 미소로 서서

너른 옷섶에 발가벗은 태양 품어 안는다.

자비의 빛, 환희의 빛

금산 상록수 위에 청정히 밝아올 때

사람들 익은 발걸음 생의 고독을 접고

까치 숨결로 파득이는 해오름 속에

잘박거리는 희망을 건진다    


 

 

라일락꽃을 보면서 - 박재삼

 

우리집 뜰에는

지금 라일락꽃이 한창이네.

작년에도 그 자리에서 피었건만

금년에도 야단스레 피어

그 향기가 사방에 퍼지고 있네.

 

그러나

작년 꽃과 금년 꽃은

한 나무에 피었건만

분명 똑같은 아름다움은 아니네.

그러고 보니

이 꽃과 나와는 잠시

시공(時空)을 같이한 것이

이 이상 고마울 것이 없고

미구(未久)에는 헤어져야 하니

오직 한번밖에 없는

절실한 반가움으로 잠시

한자리 머무는 것뿐이네.

, 그러고 보니

세상 일은 다

하늘에 흐르는 구름 같은 것이네.




'디카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바다가 있는 우도 풍경  (0) 2018.07.21
영실로 오른 한라산  (0) 2018.05.10
봄꽃들의 향연  (0) 2018.04.13
[4.3] 어머니께 드리는 글 - 이숙영  (0) 2018.04.09
소길댁이 전하는 시  (0) 2018.0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