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게 그거 - 강덕환
하영 먹엉
훌그게 싸나
족영 먹엉
좀질게 싸나
그게 그거
시민 신냥
어시민 어신냥
조들지 말앙
살당 보민
살아지느녜
♧ 너를 만나기 위해 - 강봉수
우러러 봐야 한다
하늘에 피는 꽃을 만나기 위해
가까이 다가서야 한다
지상에 피는 꽃을 만나기 위해
기쁘게 다가서야 한다
눈을 마주쳐야 한다
꽃을 만나기 위해서는
보이지 않는 꽃들은 쉬이 발에 밟힌다
무릎을 꿇지 않기 때문이다
엎드리지 않기 때문이다
발아래 피는 꽃은
몸을 낮추지 않고서는 결코 만날 수 없다
너를 만나기 위해
나를 낮추어야만 보인다
♧ 잘린오름 - 김경훈
-제주제2공항이 들어서면
잘린은월봉
잘린대왕산
잘린대수산봉
잘린낭끼오름
잘린후곡악
잘린유건에오름
잘린나시리오름
잘린모구리오름
잘린통오름
잘린독자봉
잘린한라산
잘린제주섬
하늘길 열기 위해
허리 꺾이고 머리 잘린
땅의 목숨들
꺾이고
잘린 채
쫓겨나는 사람들
섬사람들
♧ 고독한 시인 - 김광렬
아내가 있는 나기철 시인은
아내가 없는 문무병 시인이
참 외로울 거라고
오늘 같은 무술년 첫날
여기저기 다리 절뚝거리다가
혼자 철새처럼 선술집을 찾아들어
막걸리잔 기울이고 있을 거라고
뿌연 막걸리에
보름달 같은 아내 얼굴 뜨면
어루만지려다
빠져 죽을지도 모른다고
막걸리를 목구멍에 벌컥, 벌컥
쏟아 붓고 있을 거라고
쏟아 부어도
쏟아 부어도
죽어지지 않는 목숨
살려 한 자 죽고
죽고자 한 자 산다는 말처럼
죽어지지 않는 목숨
끝내 죽어지지 않는 목숨
아, 오늘 같은 날은
뒤뜰 버려진 사금파리처럼
홀로 반짝반짝
서글픔 닦고 있을 거라고
눈두덩이 벌개졌을 거라고
눈가 촉촉이 젖어있을 거라고
♧ 젊은 시절, 겨울 - 김병택
정오쯤에 길을 잃었다.
옆에는 강하게 부는 바람과
쏟아지는 눈이 함께 있었다.
가끔 새들이 공중을 날아다녔다.
과거의 복잡한 일들이
길을 찾는 도중에도 자주
머리에 떠올랐다. 하지만
복잡한 일들을 해결할 묘책은
전혀 가지고 있지 않았다.
저쪽 숲에서 출발한 외침이
나에게 가까이 다가왔을 때
무엇보다도 시급한 것은
들판을 벗어나는 일이었다.
여전히 바람이 강하게 불었고
눈이 쏟아졌다. 거기엔 한 줌의
희망도 섞여 있지 않았다.
어둠이 깊어지면서
빠르게 밤이 찾아왔다.
젊은 시절은 내내 겨울이었다.
♧ 설중매 - 이윤승
푹푹 눈 쌓인 길 마다하지 않고
먼 길 처음처럼 찾아오신
정한 분홍 손님,
차가운 창밖에 모시고
♧ 봄 - 이종형
백일이 지나지 않은 외손녀의 잠 속에 스민 배냇짓 웃음 같은 것
은빛 모래톱에 다가와 찰랑이며 발등을 간지럼 태우는 잔물결 같은 것
섬사스레피 나무가 굽었던 허리를 피고
잠시 먼 북쪽을 바라보는 일 같은 것
첫 비 다녀가신 뒤 풍겨오는
흙의 냄새 같은 것
숲에 핀 복수초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
눈부신 오후 햇살 같은 것
♧ 조수리의 봄 - 현택훈
날 따뜻해지면 우리 결혼하자
너의 일기장을 훔쳐보고 싶어
내가 몰랐던 시절의 너를 다 알아내고 싶어
* 계간『제주작가』2018 봄호(통권 60호)의 시들
* 시간 관계상 짧은 작품 위주로 뽑아 올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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