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김진숙 시집 '눈물이 참 싱겁다'와 황근

김창집 2019. 7. 18. 18:56



시인의 말

 

너무 애쓰지 마라

눈물을 이길 수 없다

 

이길 수 없다면

그냥 견디는 것이다

 

밤의 문장을 건너

아침이 온다

 

                20196

                      김진숙    


 

 

겸손이라는 손

 

꽃이 뭔지

바람이 뭔지

예까지 나를 끌고 온

 

공갈빵 같은 시만 쓰다가

노을 앞에 마주서면

 

불현듯 혼자된 손이

주머니 속에 숨는다

 

타인의 더딘 손목을 잡아준 적 없었고

먹장구름 짙은 살결을 어루만져준 적 없었고

결단코 오래 참은 적 없는 나의 불온한 손이여

 

손과 손 마주 잡아야 기도는 완성되나

왼손이 어제 한 일을 오른손이 반성해야

냉정을 견딜 수 있나

무너지는 저물녘    


 

 

산란기

 

정직한 시가 못된 건

나 혼자뿐이더군

 

시를 낳고

연애를 낳고

꽃도

바람도

치열하게

 

맹꽁이

저 화끈한 사랑

슬어놓은

장맛비

        

 

 

눈물이라는 장르

 

  봄 오는 길목에 이따금 갇히곤 한다

 

  두부 같은 날들이 책상 위에 물렁하다 다 식은 커피 잔 읽지 못한 시집까지 쌓아둔 구름 조각들 두서없이 축축하고 수도꼭지 잠그는 걸 금세 또 잊었는지 행운을 꿀꺽, 삼켜버린 부엉이가 한눈팔지도 않고 무슨 주문을 외우는지 거실 밖 이월 바람이 자꾸 창을 두드려 꽁꽁 얼려두었던 내 안의 세포들은 옛집 슬레이트 처마 끝에 매달려 싱겁고 싱거워진 계절을 훌쩍이다가 사진 속 넉넉한 아버지가 두 스푼 된장을 풀어 끓여낸 아침의 시를 맛있다, 연신 드시는 목소리를 듣곤 해

 

  첫 음을 항상 놓치는

  눈물이 참 싱겁다    



 

푸른 모과

 

열여덟 꽃의 힘으로

 

열매가 되기까지

 

 

바람에 불쑥, 떨어져 멍든 시간

 

 

단단히 마음 붙들고

 

살아보라 하신다    


 

 

섭지코지

 

1.

 

밤하늘 훔쳐보다

입 안에 침이 고였다

 

한 입 크게 베어 물던 보름달카스테라

 

초가을 덜컥 받아든

그것도

팔월

보름

 

2.

 

피 묻은 칼을 물고

투신하는 풀벌레에게

 

배 한 척 띄우지 못한

벼랑 끝 파도에게

 

부재중

문자메시지

혼자라도 괜찮아    


 

 

아코디언 상상

 

길 위에 악기가 되리

내 심장은 아직 뛴다

혼자 걸어가기엔 햇살이 너무 좋아

찔레꽃 낮게 핀 언덕

지붕 없는 집엘 갔지

 

동백꽃 무덤 지나 보리밭 푸른 건반

무릎께 풀잎 소리 아삭거리는 바람 소리

오월은 세상을 향해 저렇듯 노래하지

 

바다가 반쯤 내걸린 들녘의 내 아버지

오래된 그 집에 누워

하늘 한 번

바다 한 번

둥글게 가슴을 여는

아코디언 한 소절

 

성산포 고향 바다 당겼다가 풀었다가

삼나무 가지 끝

휘파람새 흥 돋우는

트로트 아버지의 집은 유랑극단

, 봄날    


 


 

엉또폭포 

 

오래도록 참았네

멈추어 선 저 울음

말을 아끼던 어머니

타들어간 속내인 양

흐리고 쓰린 날에도

쏟아내지 못하네

무심히 동백 지는

절벽에 기대어서

엉엉 또 울어야

펑펑 다 쏟아내야

그 겨울 견딜 것 같은

막내딸을 보았네   

    

 

푸른 상영관

 

물고기가 운다는 그런 설정은

진부하다

 

영자포자 수조관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켜켜이 유리에 맺힌 눈망울을 관람한다

 

윙크 한 번 날린 적 없고

눈감을 수 없으니

그토록 슬픈 눈을 나는 본 적이 없다고

무심코 읽어 내려간 자막은

분명 오류다

 

벵에돔 돌돔 우럭, 다금바리 대역까지

한번 문 낚싯바늘을 끝끝내 놓지 않아

늦저녁 초장에 찍은 대사들은

치열하다

 

뜯겨져 너덜너덜해진 우리 삶의 지느러미

함부로 놓지 못하는 오늘처럼 내일처럼

아파트 뒷골목에서

사람들은 숨을 쉰다

 

 

      * 김진숙 시집 눈물이 참 싱겁다(문학의전당 시인선 0307, 2019)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