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오승철 시집 '오키나와의 화살표'에서 2

김창집 2019. 7. 6. 09:34


천지간

 

당신이 돌아오듯 시월은 돌아와서

어느 절집 49

꽃향유나 피우다가

이승 끝 올린 뒷돈도 본숭만숭 그러네

 

당신이 떠나가듯

시월은 떠나가서

베갯머리송사같이 자늑자늑 빗소리

천지간 날 세워놓고 본숭만숭 그러네    


 

  

해녀의 섬, 우도

 

기껏 우도의 밤은

쐬주 한 병

세워놓고

갈치가 갈치 꼬리 뜯듯

집어등이 집어등 뜯듯

신새벽 상처 난 바다

순비기꽃 피운다

 

여름과 가을 사이

일출봉과 우도봉 사이

여기가 어디라고 저 미친 고추잠자리

허공에 섬자락 끌고 태왁처럼 떠서 돈다

 

썰물에 남은 이름 밀물에 붕붕 뜬다

사랑이란 세상에 있을 때나 하는 거다

내 가슴 빨간 우체통

숨비소리 터지겠다    


 

 

으아리꽃

 

푸르다 두르다 못해

살짝 한 풀 꺾인 들녘

 

이때다 이때다 싶어

숨죽이던 것들이

 

일시에 벌촛길 따라

떠도는

저 밀잠자리 떼

    

 

 

그래봤자

 

그래봤자 장끼도 한 철

고사리장마도 한 철

길 없는 쳇망오름 날아든 박쥐나무

매조록

철없이 내민

꽃술머리 너도 한 철    


 

 

쓸데없이

 

쓸데없이

, 쓸데없이

봄볕에나 겨워서

 

녹슨 양철문이

삐걱이는 수산리

 

왕벚꽃

혼자 타는 걸

쓸데없이 바라보네


   

본전

 

모처럼 세상에 와 혼자만 다 털렸다고?

 

복채 따라 펄럭이는

오일장 보살집처럼

 

인생은 벌어도 본전

밑져봐야 그도 본전 



   

선흘리 먼물깍

 

그나저나 동백동산 그 너먼 가지 마라

 

4 · 3땅 곶자왈 길 물허벅 넘던 그 길

 

아직도

 

출렁거리는

 

내 등짝의 먼물깍    


 

  

어떤 연애질

 

근데, 근데 말야

이건 정말 비밀이거든

제주성 밖 양 귀퉁이

동미륵과 서미륵

천년의 눈빛 그대로 연애질 하는 거라

 

한눈 한 번 팔지 않는 그런 생도 있으랴

그러거나 말거나 저렇게 마주 서서

소원을 듣는 일조차

건성건성 하는 거라

 

그런 거라

세상에 우린 외로워서 온 거라

어느 봄밤 북두칠성 본을 뜬 칠성통 길

밤마다 반보기 하듯

돌아들곤 하는 거라


               * 오승철 시집 ''오키나와의 화살표''(황금알 시인선 194, 2019)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