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정온유의 '몸의 기도' 외 5편

김창집 2019. 9. 28. 12:12


몸의 기도 - 정온유

   -부활절에

 

내 몸이 한 번 뒤척일 때마다

생각이 뒤척이고 마음이 뒤척이고 세상이 뒤척입니다.

 

어수선한 마음들이 정리 되는 시간,

핏값으로 물든 내 삶을

보듬으며 새벽을 걷습니다.

 

예배당 오르는 계단엔

부활의 아침을 찬양하는 작은 꽃들이

봄빛을 털어내며 온몸으로 기도합니다.

 

내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어 움직이고

내 과거와 미래가 함께 움직이고

이 모든 것을 끌어안고 내 영혼이 움직입니다.

 

당신께 가까이 가기 위해 온몸으로 뒤척입니다.

 

내가.

    

 

 

비 냄새를 만지는 일

 

새벽,

찬비가 내립니다

나는 오래도록 창가에 서서

그대를 생각합니다.

 

창밖으로 손을 내밀면

빗물은 차갑게 내려앉고

 

우주를 닮은 둥근 생각들이

몽글몽글 고입니다.

 

차가운 뿌리들이 내 몸 속으로 길을 내고

나는 세상이 들려주는 소리에

생각을 맡기고

마음은 딴 데 가 있습니다.

 

비 냄새를 만지는 일은,

당신의 마음을 만지는 일,

뭉근한 그리움을 더듬어 보는 일입니다.

    

 

 

 

길을 떠나도 길이 내게 다시 옵니다.

길은 말이 없습니다.

다만 보여 줄 뿐입니다.

길은 언제나 길에서 만나 길로 흐르기에

길을 잃어도 무섭거나 두렵지 않습니다.

 

길이 길을 만들어 갑니다.

 

길은 내 안으로 들어와 당신에게로 흐르고

다시 길 속으로 이어집니다.

나는 길 위에 있고 길은 내 위에 있습니다.

내 안에서 뿌리를 내리며 고요한 길을 만들어 갑니다.

단단하고 견고한 길은 내 몸 속으로 심어져

마음과 생각과 시간 속으로 길을 냅니다.

 

당신이 나를 만들어 갑니다.

    

 

 

먼 길

 

당신의 마음속을 걷다 보면

외롭지만 두렵지 않습니다.

한 걸음 한 걸음 걸을 때마다

길은 더 넓어지고

당신의 숨소리는 가까이에서

들리기 때문입니다.

 

나는 정성스럽게 당신을 걸어갑니다.

당신을 걷다보면

순례자의 마음처럼

선잠 끝에 오는 아련함이

노을처럼 번집니다.

 

외롭지만 두렵지 않은,

내가 당신을 걷는 이유입니다

 

길게 늘인 내 그림자가

당신께 흐르고 당신은 다시 내게 흘러와

나를 감싸고 돕니다.

 

오늘도 나는 당신의 마음길을 걷습니다.

    

 

 

언어의 몸집

 

밤새

잠과 생각이 서로 얽혀 뒤척였다.

정신은 잠과 생각 사이를 오가느라 얕았다.

새벽이 되어서야 생각의 정체를 붙잡았다.

그러니 정신이 깊어졌다.

깊은 내 속을 고요히 들여다보고 나서야

 

얽혔던 잠과 생각이 가지런해졌다.

덕분에 맑은 하루를 보냈다.

 

마음을 고요하게 하고,

깊고 깊은 내 속으로 들어가 보면

언어의 몸집들이 보인다.

불편하게 부풀린 언어들을 다독이고 이해하고 나면

어느새 언어는 단단하고 야무져 있다.

 

결국 언어를 단단하게 키우기 위해서는

나 자신을 다독이고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자신을 이해하고 긍정하게 될 때

생각의 언어는 저절로 단단해지고

정신은 평온해진다.

    

 

 

길에 대한 단상

 

십년 만에 연락이 닿은 친구에게 가는 길

다 가서 헤매어 다른 길로 들어섰다.

 

플라타너스 터널로 쭉-뻗은 한 여름,

굵직한 햇살들이 이파리에 매달려

폭죽처럼 터지던 여름 햇살.

 

목적지를 못 찾아도 좋다고 생각했다.

 

친구 생각은 잊고

한 동안 그 길에 머무르며

나도 같이 길이 되어

무르익은 햇살을 온몸으로 받았다.

 

애당초 길이란 정해진 것도 아니고

길은 길로 다시 만나고 이어지니

잘 못 든 길이라고 돌아설 일 아니다.

 

생애의 길 또한 그러하지 않을까?

내 삶에 길을 만들어 가는 동안

사계절이 바뀌고 나 또한 바뀌고

실수와 실패와 속에서

나를 더 단단하게 키우며

나만의 길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러면 어느 날 시나브로

선물 같은 햇살과

꽃잎들이 내려와 반길 것이다.

 

애써 걸음을 재촉하지 말고 가자.

 

하루의 옆모습인 평온한 빛 그림자 아래서

잠시, 쉬었다 가자.

 

 

       * 월간우리20198374호 '신작소시집'에서

       * 사진 : 2019225일 충남 태안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