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애월문학' 제10호의 시들(1)

김창집 2019. 10. 2. 12:11



수국 김옥순

 

인생여정처럼

대처의 한 수

나툼*으로 다양하게 그려간다.

 

카멜레온처럼

화려한 가화의 분장은

예쁘게 더 예쁘게

숲의 요정으로 산다.

 

삶의 경쟁은 숲에도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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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툼 : 명백히 모습이 드러나거나 드러냄.

    

 

 

번데기 663 김종호

 

주름 한 겹 한 겹

채워놓고 있습니다.

 

죽을 듯이 슬펐고

죽을 듯이 기뻤던 사랑

 

낱낱이 헤쳐서

포근한 햇살에 뒤채며

 

밖으로 내달리던 나를

안으로 채우고 있습니다.

 

어둠 속에서

한 겹 한 겹

기름칠하며 있습니다.

 

어느 순간을 위하여

날개 한 쌍 직조하고 있습니다.

 

 


김태호

 

누군가 그립고 아쉬워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는 날이면

함석지붕 위에 올라앉아

밤하늘 별들의 합창을 듣는다.

 

하나, 둘 별을 새노라면 눈이 부시다.

이제 더는 볼 수 없지만

저 별이 내 눈동자에 쏟아져

산을 이루고 강물이 되는 까닭에

 

누구의 이름이 그립고 가슴에 사무칠 때

낡은 지붕 위에 오르는 꿈을 꾼다.

    

 

 

추억 - 문경훈


참외 노란 꽃 피는 봄날

하얀 고무신 신고

장에 가시던 어머니

잊지 말고 돼지 먹이 주라고

바람 불면 고내봉 소나무

솔잎 냄새 싱그러워

과자 사고 오실 어머니

손꼽아 기다렸지

그 세월 흐르고 흘러

어머니 돌아가시고

오두막집도 헐리고

연립주택이 들어섰지

 

고내봉 기슭에 운무가 덮이면

참외밭엔 옛날 노란 꽃이 피고

어머니 모습은 마음에 계시는데

꿈길에선 초저녁별만 반짝거린다.

    

 

군자란이 옷고름 풀 때 - 양상민

 

파아란 달빛이

베란다에 교교히 내려와

군자란 화분을 살포시 품는다.

금실푼사 한 고비

영글어 부푸는 저 몸짓을

어이 눈치 챘을까

이제

둘이서만 속삭이는 밀어

온몸에 도도히 젖어드는

연분홍 가슴 몽실 봉오리

, 저들 약속은

밤하늘 밀사의 비밀

꽃잎 옷고름

한 올 한 올 열어

은밀한 신음 향기 토할 때

파르르 두 몸 하나 되는 정점

이 한밤

고요마저 애가 탄다.

    

 

 

파리 잡기 - 임애월


파리채의 단말마

 

한 목숨을 결정짓는

의 판결

 

흔적 없이 사라지는

또 하나의 연대기

 

장마는 여전히 지루하고

죄의식은 없었다

    

 

 

환절기 - 김영란

 

시간의 문턱을

해직자들 건너가고

 

삶은 늘 그렇게

어깃장 놓으며 오듯

 

가을과

겨울 그 사이

홀로 지는

감국

 

 

               *애월문학2019년 제10호에서

               * 사진 : 표선 제주민속촌(9.29)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