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세상

정드리문학 제8집 '손말'의 좋은 시조(2)

김창집 2020. 5. 23. 11:02

철새는 날아가고 - 양희영

 

어느새란 철새

섣달 초하루 날아와

 

열두 달 나뭇가지 있는 대로 흔들며

 

도대체

왜 이러고 있니

가슴 콕콕 쪼아댄다

 

이럴 걸 저럴 걸

또 그럴 걸 중얼대며

 

하나라도 이룰까, 기를 쓰고 울다가

 

그믐날

새해를 향해

날아간다, 어느새

 

       --<정음시조> (2019, 창간호)

 

9회 말 투아웃 2사 만루 - 용창선

 

직구로만 승부하던 눈빛은 무뎌졌고

방어율이 낮았던 청춘도 시들었다

가슴의 흉터 같은 실밥

꼭 쥐고 서있다.

 

커브처럼 휘어지는 골목길의 불안과

포크볼로 떨어지는 목덜미의 빗방울이

외로움 쌓인 세상에

내던져져 있었다.

 

내 손을 떠난 공이 타석으로 날아간다.

화살을 떠나보낸 활시위가 떠는 순간

! 하는 소리와 함께

타구가 날아간다.

 

           --<공시사> (201812)

 

돌의 맥박 우은숙

 

삼랑진 만어사에는 바다에서 헤엄쳐 온

고기들이 돌 되어 층층이 누워 있다

 

그들의 이천 년 전 맥박 두 손으로 만져본다

 

지느러미 찾으려 집어 든 돌 속엔

검푸른 입술마다 새겨진 언어들이

 

떠돌던 마음의 부표 화석으로 증언한다

 

비늘과 꼬리는 시간 속에 감췄지만

원시의 경전으로 읽어내는 이 시간

 

굳어진 가슴팍에선 바다 냄새 아직 난다

 

              --<문학청춘> (2019, 여름호)

 

붉은오름 - 이숙경

 

사나흘 괴어 있다 은연히 스며들어

감감한 어둠 속에서 울음을 매만진다

마음이 쏟아져 버릴까 온몸을 웅크린다

 

긴 관을 타고 오는 굵직한 떨림이

두세 번 끊어졌다 부풀어 가는 동안

그에게 가까워질수록 징소리가 들린다

 

슬픔을 아우르는 넉넉한 소리 품새

나 대신 흐느끼고 소멸하는 사려니 숲

갈앉아 피붙이처럼 삼나무로 서 있다

 

         --<시조미학> (2019, 여름호)

 

사막풀 정수자

 

둥글게 몸을 말며 결전에 든 건기의 풀들

 

칼바람 칠 때마다 날을 물고 구른다

 

필생의 맞장을 뜨듯 위리圍籬로 먹을 갈듯

 

멀리서도 살을 찢는 잉걸불의 혓바닥들

 

오라, 같이 울 만한 사막의 권속이여

 

가시도 오리 씹으면 비백飛白으로 솟을지니

 

       --<다층> (20018, 겨울호)

 

 

                      * 정드리문학 제8손말(다층현대시조시인선 006)

                                  정드리 창에 비친 좋은 시조에서

              * 사진 : 물영아리오름 물보라길에서 찍은 떡윤노리’(2020. 5.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