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세상

윤행순 시조 '간호일지'와 백합

김창집 2020. 6. 16. 10:41

 

간호일지 4

   -초로기치매

 

아침 여덟 시 경 출근을 하자마자

젊고 건장한 남자 응급실에 실려온다

한 움큼 햇살도 함께 구급차를 따라온다

 

나는 소방관이다첫인사를 건넨다

그런가, 그런가 하고 그 말을 믿었는데

내 얼굴 대할 때마다 소방관이라 또 그런다

 

어느 일터에서 근무했던 사람일까

때때로 링거병을 소화기처럼 둘러메고

병상에 분사를 하는 진단명 초로기 치매

 

 

간호일지 6

    -단풍

 

가을 타는 단풍은 치유하지 못하겠다

 

사랑한다, 그 말조차 깨끗이 떨군 저녁

 

허전한 나뭇가지에 링거병을 꽂고 싶다

 

 

간호일지 7

    -허혈증

 

간호사의 하루하루 누가 간호해주나

환자들 욕지거리야 한쪽 귀로 흘리지만

밤새껏 아프단 소리 이젠 내가 더 아프다

 

시도 때도 없이 울려오는 응급벨

어느 쪽이 먼저인지 어느 쪽이 나중인지

벨 소리, 벨 소리 겹쳐 히어뜩한 허혈증

 

논문도 시 한 편도 직장 일도 심근경색

의사도 어머니도 처방전이 없는 날

하루쯤 날 받아놓고 심초음파 찍고 싶다

 

 

황색등

 

허겁지겁 출근길 5.16도로 들어서면

빨강과 초록 사이 멈춰 선 아버지의 시간

한사코 외면해가던 양지공원 봉안소

 

낼 모레가 제삿날 그냥 확 좌회전할까

아버지 바람기도 용서하고 싶은 가을날

돌담에 털머위마저 노란 낮달 피워낸다

 

 

                                       * 정드리문학 제8손말(다층, 2020)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