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간호일지 4
-초로기치매
아침 여덟 시 경 출근을 하자마자
젊고 건장한 남자 응급실에 실려온다
한 움큼 햇살도 함께 구급차를 따라온다
“나는 소방관이다” 첫인사를 건넨다
그런가, 그런가 하고 그 말을 믿었는데
내 얼굴 대할 때마다 소방관이라 또 그런다
어느 일터에서 근무했던 사람일까
때때로 링거병을 소화기처럼 둘러메고
병상에 분사를 하는 진단명 초로기 치매
♧ 간호일지 6
-단풍
가을 타는 단풍은 치유하지 못하겠다
사랑한다, 그 말조차 깨끗이 떨군 저녁
허전한 나뭇가지에 링거병을 꽂고 싶다
♧ 간호일지 7
-허혈증
간호사의 하루하루 누가 간호해주나
환자들 욕지거리야 한쪽 귀로 흘리지만
밤새껏 아프단 소리 이젠 내가 더 아프다
시도 때도 없이 울려오는 응급벨
어느 쪽이 먼저인지 어느 쪽이 나중인지
벨 소리, 벨 소리 겹쳐 히어뜩한 허혈증
논문도 시 한 편도 직장 일도 심근경색
의사도 어머니도 처방전이 없는 날
하루쯤 날 받아놓고 심초음파 찍고 싶다
♧ 황색등
허겁지겁 출근길 5.16도로 들어서면
빨강과 초록 사이 멈춰 선 아버지의 시간
한사코 외면해가던 양지공원 봉안소
낼 모레가 제삿날 그냥 확 좌회전할까
아버지 바람기도 용서하고 싶은 가을날
돌담에 털머위마저 노란 낮달 피워낸다
* 정드리문학 제8집 『손말』 (다층, 2020)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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