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수야 이재수야 – 문충성
이재수야 이재수야
눈물로 시작한 사랑
눈물로 저물고 어둑어둑
청파동
그 어디쯤
그대 버혀진 머리
바람에 흔들리며
이재수야 이재수야
시퍼런 하늘 새로 열
날벼락 꿈꾸지만
백년이 다 되도록
찬비 맞을 뿐
이재수야 이재수야
♧ 어머니가 운다 – 김수열
모슬봉 동북 자락
대정 칠리 공동묘역 한참 걸어 외진 곳
재수 어미 송씨
옥색치마에 양단저고리 곱게 차려 입고
쪽진 머리 바람에 날리며 빗돌처럼 앉아
산방산 내려다본다
허접한 제주목사 비석은 골골마다 넘치건만
도탄에 빠진 섬 백성 원을 풀고 인정 바로잡은
내 아들 비석은 어찌하여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는고
재수야 어디에 있느냐
살았느냐 죽었느냐
내 죽어 황천 가면 만날 수 있는 것이냐
어허, 세상 사람들아
무죄한 내 아들 어디로 보내어 남의 애를 끊는고
옛 바람이 다시 불어온다
난바다 건너 떼구름이 몰려온다
산방산 머리 위로 우렁우렁 우레가 운다
모슬봉 마른 억새가 살아 오른다
재수야 어디에 있느냐
살았느냐 죽었느냐
♧ 여아대如我待 - 강덕환
내게도 맘대로 세상을 넘나들 수 있는
저런 패스포트 한 장 있었다면
개항 압력에 굴복한 고종이
프랑스 신부들에게 줬다는, 저 증표
목에 걸까, 허리춤에 찰까
아니지, 윗주머니에 간직했다가
‘나 이런 사람이요’하고, 짠
내밀면 포교와 세금포탈
폭행과 약탈도 눈감아줬던
무소불위 치외법권의 완장
‘나를 모시듯 대접하라’
신축항쟁을 낳고
이재수를 참수하며
종말을 고하던 대한제국의
슬픈 허우대
♧ 이재수 – 김규중
제국주의 칼날에 잘린
한라산 백록담에서
뜨거운 피가 분출하여
너의 목에서
용암이 솟구치고
너의 근육은 오름되어
벌판을 뻗쳐 달린다
너의 손과 발은
오늘도 거친 파도를 거부한다
♧ 먼 훗날 - 김석교
-李在守에게
제주의 눈은 가로로 내립니다
콧등에 향기롭고 찬 키스로 스치는 게 아니라
한라산 구상나무를
희디흰 생선뼈로 만들었다가
솜양지꽃 자궁 속에
슬몃 내려앉기도 합니다
한 뼘도 안 되는 땅에서
복수초의 잠을 깨우다가
앞바다 너른 들을 난장으로 일구어 버립니다
서북벽에 부딪혀 쏜살같이
마을로 내리꽂히다
북서풍 앞에 무릎 꿇고
성질 사납게 돌아섭니다
귤향에 젖은 서귀포 버리고
성산포로 모슬포로 고산으로 흩어져
마침내 제주시 성 밖에 운집합니다
바람의 군사와 눈구름의
군사가 대치하는 제주땅에
어느 날 일출봉을 쪼개며
해 떠올라 사방을 비추자
싸움은 끝났습니다 민중의 눈물처럼
봄을 재촉하는 그리운 비가 옵니다
그 날이 언제였습니까
그 날이 또 언제 옵니까
♧ 이재수에게 묻다 - 김성주
대정골 이재수 생가, 골목 빠져나온다
큰도로변 카페, 쇄빙기 소리 날카롭다
빙산이 무너진다
푹푹 눈이 내려 설산을 이룬다
설산 위에 십자가 꽂힌다
설탕에 버무려진 핏빛 팥물이 설산을 허문다
붉은 해수면이 무섭게 차오른다
십자가도 북극곰도 펭귄도 허우적거린다
나는 해수면 아래 잠겨버린 먼 옛날 신축년
그날의 함성을 찾아 종이배에 오른다
뼈대 있는 자리들과 매운 마늘 맛의 항로를 따라 섬 찾아간다
신평리 본향당
일뤠할망 앞에 엎드린 장두
-한 목숨 바쳐 백성을 옭아매고 고혈을 빠는 무리를 처단케 하여주소서-
한 맺힌 절규에 묶여 지박령이 돼버린 이재수
-이딘 나 일뤠할망이 지키커메 늘랑 느 실 디로 가라-
종이배에 동승하는 이재수
저기 물에 잠기지 않은 바위 하나
濟州英雄李在守母宋氏墓
安仁보 三里 一同 謹立
-어머님 이제 극락으로 갑서-
-그디 안 가키여. 느 보난 한 풀었져마는 난 이디를 지키키여.
느도 느 실 디 셔야 ᄒᆞᆫ다-
종이배는 명월진성 돌아 신평리향사터 관덕정 황사평을 둘러보고
삼의사비에 닻을 내린다
-니가 실 디는 이디여. 오대현 강우백 두 성님들광 두 눈 부릅떵 이디를 지켜사 뒈키여-
-장두님신디 물으쿠다. 무사 뻔히 지엉 다 죽을 줄 알멍 경ᄒᆞᆸ디가?-
-바당 곳디 강 자리 빼도 씹어보곡 매운 마농에 술 ᄒᆞᆫ잔 ᄒᆞ멍 생각ᄒᆞ여보라-
* 신축항쟁 120주년 기념작품집 『장두狀頭』 (도서출판 각, 2021)에서
* 사진 : 신축항쟁 현장답사(2021. 6. 14.)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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