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참꽃 1 - 권경업
조개골, 저 낭자한 선혈은
누구의 피랴
외팔이 하 씨네
흙내음 매캐한 토담방
긴 겨울 내내
가래 끓이던 문풍지
아, 흰머리메 가지 못한
가슴앓이 각혈
♧ 참꽃 2
--고 배종순
꽃놀이 화전(花煎)이라니
아름답다, 희희낙락할
시간 없다
남겨 두어 무엇하겠느냐
보아 주지도
보아 줄 이도 없는 생(生)을
쏟아 내어라 한 번에
삶은 짧을수록
아름답느니
♧ 보리밭
머리끄덩이 휘어 잡혀
비틀대는 보리밭 이랑
이년 이 화냥년
봄바람에 바람난 년
옛날 일이다 케케묵은
약초 캐는 민 씨 여편내
개골짝 흐드러진 함박꽃 내음에
몸이 달아, 끝내
대처에서 온 거간꾼과
육덕(肉德) 좋은 배 맞추다 달아났다
당귀(當歸) 쌓아둔 고방문(庫房門) 열어둔 채
없다, 이제는 어디에도
그런 보리밭
봄이 가고 봄이 와도
길고 긴 신밭골
외톨이 뻐꾸기울음만
♧ 청명(淸明)
숲이 되고 싶으세요?
써레봉 자락 새순 돋을 즈음
장당골 아직 아린 내[川]를
둥둥 맨 종아리로 건너보세요
누구라도 금방
무성한 숲 될 거에요
겨우내 얼어붙었던 탄성
절로 풀리며
♧ 침낭(寢囊)
한 줄기, 아! 한 줄기
백두대간
새 날 새 아침
수천수만의 무리 진
아름다운 나비의 자유
완전한 유영(遊泳)을 꿈꾸는
우리는 밤마다
번데기가 되는
♧ 꿈
달 뜨지 않으면 별 쏟아지는
작은 비탈 흙담을 쌓아
자작나무 군불 처댄 아랫목
동치미 서걱서걱, 토장국 구수한 개다리소반
저녁을 물리면 수줍은 아내는
바느질 당세기* 무명실 같은 이야기
도란도란 풀어대다가
어느새 아이를 서넛쯤 가지겠지
그러다 부엉이 울음 하봉을 내려와
골골에 눈 내리고 소복이 밤은 깊어
무명 홑청 솜이불 아래
아, 눈부신 속살
생강나무 꽃 필 때 따라 피는 진달래
때죽나무 함박꽃 피었다 지는 날
자지러지는 두견이 울음
조개골 깊숙이 새끼 친 멧돼지
두릅나무 가시 드세어져 쑥밭재를 넘는
가진 것 없으면 어떠랴, 그저
보글보글 정 끓이며 살고 싶은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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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세기 - 광주리의 경상도 방언.
*하봉 – 지리산 천왕봉의 북쪽 연봉, 중봉 아래에 있다.
*권경업 시집 『자작 숲 움틀 무렵』 - 지리산 치밭목(명상, 1999)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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