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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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경업 시집 '자작숲 움틀 무렵' 봄 시편(2)

김창집 2022. 2. 27. 00:02

 

참꽃 1 - 권경업

   

조개골, 저 낭자한 선혈은

누구의 피랴

 

외팔이 하 씨네

흙내음 매캐한 토담방

 

긴 겨울 내내

가래 끓이던 문풍지

 

, 흰머리메 가지 못한

가슴앓이 각혈

 

 

참꽃 2

    --고 배종순

 

꽃놀이 화전(花煎)이라니

아름답다, 희희낙락할

시간 없다

 

남겨 두어 무엇하겠느냐

보아 주지도

보아 줄 이도 없는 생()

 

쏟아 내어라 한 번에

삶은 짧을수록

아름답느니

 

 

보리밭

 

머리끄덩이 휘어 잡혀

비틀대는 보리밭 이랑

 

이년 이 화냥년

봄바람에 바람난 년

 

옛날 일이다 케케묵은

 

약초 캐는 민 씨 여편내

개골짝 흐드러진 함박꽃 내음에

몸이 달아, 끝내

대처에서 온 거간꾼과

육덕(肉德) 좋은 배 맞추다 달아났다

당귀(當歸) 쌓아둔 고방문(庫房門) 열어둔 채

 

없다, 이제는 어디에도

그런 보리밭

 

봄이 가고 봄이 와도

길고 긴 신밭골

외톨이 뻐꾸기울음만

 

 

청명(淸明)

 

숲이 되고 싶으세요?

 

써레봉 자락 새순 돋을 즈음

장당골 아직 아린 내[]

둥둥 맨 종아리로 건너보세요

누구라도 금방

무성한 숲 될 거에요

 

겨우내 얼어붙었던 탄성

절로 풀리며

 

 

침낭(寢囊)

 

한 줄기, ! 한 줄기

백두대간

 

새 날 새 아침

수천수만의 무리 진

아름다운 나비의 자유

완전한 유영(遊泳)을 꿈꾸는

 

우리는 밤마다

번데기가 되는

 

 

 

달 뜨지 않으면 별 쏟아지는

작은 비탈 흙담을 쌓아

자작나무 군불 처댄 아랫목

동치미 서걱서걱, 토장국 구수한 개다리소반

저녁을 물리면 수줍은 아내는

바느질 당세기* 무명실 같은 이야기

도란도란 풀어대다가

어느새 아이를 서넛쯤 가지겠지

그러다 부엉이 울음 하봉을 내려와

골골에 눈 내리고 소복이 밤은 깊어

무명 홑청 솜이불 아래

, 눈부신 속살

 

생강나무 꽃 필 때 따라 피는 진달래

때죽나무 함박꽃 피었다 지는 날

자지러지는 두견이 울음

조개골 깊숙이 새끼 친 멧돼지

두릅나무 가시 드세어져 쑥밭재를 넘는

가진 것 없으면 어떠랴, 그저

보글보글 정 끓이며 살고 싶은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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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세기 - 광주리의 경상도 방언.

*하봉 지리산 천왕봉의 북쪽 연봉, 중봉 아래에 있다.

 

 

                          *권경업 시집 자작 숲 움틀 무렵- 지리산 치밭목(명상, 1999)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