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월간 '우리詩' 2022년 3월 405호의 시(2)

김창집 2022. 3. 13. 00:11

 

사과꽃 치과 김은옥

 

아기 손톱 닮은 작은 꽃잎들 반짝입니다

연분홍 종소리에 매달려

하얀 이빨 드러내며 자랑합니다

오늘은 과수원 적화검진 있는 날

물뿌리개 든 여우비가 이빨 하나하나마다 다녀가십니다

햇살도 고루고루 지나갑니다

아직 돋지 않은 큰 어금니

밤새 시큰시큰 심장 소리

첫 월경 빛 종소리

첫사랑이 우지끈 태풍에 뽑히기도 합니다

그 많던 사랑니 뽑힌 자리마다 열매가 열렸어요

피 묻은 사랑니 다 어디로 갔나요

사과 밭마다 빛나던 꽃들의 아우성은

 

 

 

2월의 해방 김종옥

 

새들의 온기를 찾으러 돌아온다

바람을 가득 받을 때마다

날개 밑에 고인 체온

차가운 감옥 속에서 얼마나 구속당했기에

저렇게 뚝뚝 핏빛으로 따뜻해지고

꽃잎과 함께 흩날렸던 기억이 돌아온다

봄이 다가올수록 각도가 예리해지는

초록을 되찾기 위해 숲은

시간을 넘어 내달리는 빛의 몸을 끌어안는다

감당할 수 없는 빛의 속도에

온몸에 푸른 멍이 들어도

 

 

 

폭우 조성례

 

빗금을 그으며 온다

혓바닥으로

솜털의 수맥 사이로

 

정수리에서

또르르 뚜르르

뺨을 타고 온다

돋보기안경 속에서

주름진 미간으로 흘러

윗입술과 아랫입술 사이에 고여 있던 그의 혓바닥이

마침내 내 혓바닥에 닿는다

 

완전무장 우비를 입고 장화를 신어도

그는, 그것은, 온 세상을 울음으로 물들인다

 

늙은 남편의 검버섯 속에서

씨감자 작은 홈 앞에서 파르르

애련리 기차 다리에 매달려 운다

온통 세상이 울음소리로 그득하다

 

남편과 마주 앉아 삼겹살을 굽는다

자글자글 빗물을 뒤집는다

 

 

 

첫눈 내린 길 위에서 나영애

 

날뛰는 바람 따라 낙엽 떼들

이리저리 몰려다니며 우우 함성 지르더니

대지를 덮은 솜털 눈에

자취를 감추었다

 

마지막 분신을 떠나보낸

나목들도

눈 이불 속에 입 앙다물었다

 

온 세상

유채색 눈물을 흘리던 가을 이별이

그래도 따뜻하였나 보다

 

끝나버린 사랑이 고요하듯

침잠해가는

흑과 백의 세상

 

그 세상에 동반하여

꺼져가던 감성

어쩌면 그대로 갇힐 것만 같아,

나선 길 위

 

햇살이 도로 위에 활짝 피었다

목적지를 향해 내달리는 차들

저들의 앞날은 탄탄대로일까

 

하산 길

잿빛 바람 부는 내게도

희망의 햇살 하나 생성된다면

 

 

 

갈대와 바람 여국현

 

바람이

갈대를

흔드는 것이 아니다

 

갈대가

춤추며

바람을 부르는 것

 

바람이

노래하며

바람을 얼싸안는 것

 

갈대와

바람이

서로 안고 한세상 어울리는 것

 

 

 

전어 떼 - 손창기

 

미끈한 목질로 헤엄쳐 가는 흰 근육들

본다, 해질녘 격렬히 산란하는 나무들

떼를 지어 몰려와 여남 바다 끝자락에서

전어와 동시에 방사하는 이팝나무를

나무에서 물고기를 찾는 늙은 어부는

어스름 정겹게 핀 꽃차례가 뿌연 정액처럼 보인다

가슴 짜릿해지는 꽃구경이다

배 안에다 물을 채워 둔다

노인이 몸에 가득 채우고 싶은 건

오래전에 피어난 꽃냄새란다

십 남매도 모자라 늦둥이 줄줄이 낳고 싶은 거란다

전어와 나무, 몸이 잇닿아 있는 동안은 출항이다

힘 다 쏟아내는 분분낙화, 회유하는 때가 온 거란다

노을빛 등지느러미 지닌 전어 떼,

어둠을 잠시 밀어낸다

나무에서 보랏빛 도는 알이 부화한다

태어나는 순간,

전어는 생이전의 냄새를 등에 지고 다닌다

 

 

                                           * 월간 우리20223405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