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4․3 추념시집 '거기, 꽃 피었습니까'의 시(3)

김창집 2022. 4. 11. 00:13

 

무명천 할머니의 봄 - 양순진

 

하얗게 그을린 슬픔 감싸안은 채

살려고 하지도 못하고

죽으려 하지도 못하고

한 방에 날아가 버린 턱은

한 방에 날아가 버린 봄꿈처럼

풍랑 이는 월령 바다 떠돌다가

 

어둠이 가득찬 집으로

들어가지도 못하고

바람이 떠밀면

바람의 중력에 못 이겨 콕 박혀

또 몇 밤 떨면서 나오지 못하던

한립읍 월령리 집터

 

지우려고 지우려고 애쓰던

찢겨진 시간

덮으려고 덮으려고

둘러맨 몇 겹 무명천

저 빈 집 울타리

노란 선인장으로 피었네

온 몸 가시로 투항하며 버티던

슬픈 생애

알알이 붉은 열매로 맺혔네

 

모래기 할망

진아영 할망으로 불리다가

역사의 증인으로 방방곡곡

노란 물 붉은 물 들이는

우리의 무명천 할머니

눈 감아도 귀 막아도

봄이 와도 잊혀지지 않는다

 

 

 

아기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는 말 양영길

 

아기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는 말

느네가 어떵 아느니

ᄉᆞ태 때 아기 아방

아척마다 불려강

꿇어앉앙 매맞곡 ᄇᆞᆲ히곡 ᄒᆞᆯ 때

나 ᄇᆞᆨᄇᆞᆨ 털어가민 아긴 울젠 ᄒᆞ곡

아기 울민 큰일 나카부덴 입 막아불민

아긴 숨 막히언 기절허여 불곡

 

경ᄒᆞ영 집이 오민 아긴 젖 ᄈᆞᆯ지 아니ᄒᆞ곡

어떵어떵 달래영 아기가 젖 ᄈᆞᆯ젠 ᄒᆞ민

어멍 젖 안 나오곡

 

아기도 울곡

어멍도 울곡

 

그 아기 나 손으로 죽인 거여

그 아기 어떵 땅에 묻을 말고

어멍 잘못 만나 죽은 아기

어떵 땅에 묻을 말고

어디 강 묻을 말고

 

어떵 묻을 말고

어떵 묻을 말고

 

 

 

키 커부난 - 오승국

 

청춘의 나이가 죄가 되어

한시 하루 죽음의 두려움에 떨었네

 

물찻 말찻 산란이오름 골짝 골짜기에

짐승처럼 숨어살다 봄 햇살이 들 때쯤

하얀 천 깃발 들고 눈물로 하산했주

젊은 청년들 잡아들여 주정공장 가둬두고

별별 고생 다 시킨 후

열여덟 살 이상 한 줄로 집합시키난

영식이 삼춘은 그 나이가 되어도

키가 한 발밖에 안 되언

열일곱이엔 허연 살아났고

앞동네 춘식이 형은 열일곱이라도

홀쭉허게 커부난 폭도질 했댄 허영

육지감옥소로 실러부렀주

 

까마귀 울음소리 가득한

사멸의 시적이었네

사람 목숨이 파리 목숨이던

, 피바람 선연한 43북새통 그때

 

 

 

금자삼촌 이애자

 

젖먹이 들쳐 업고 북촌을 향한 걸음

넋 나간 어머니의 손힘에 이끌린

여섯 살 그 어린 것이 울 수조차 없었다

 

얼떨결 외삼촌 따라 경찰이 된 아버지

목에 닻이 감기고 팔다리 묵인 채

바다에 수장 됐다가 보름만에 떠올라

 

새파란 나이 데려가기 안 되었을까

봄 햇살 한 벌로 따뜻이 염을 끝내고

하얗게 이승을 지우는 광목천 한 겹

 

독해져야 산다는 외할머니 채근에도

딸의 입학통지서를 보고서야 번쩍 정신 든

어머니 바느질 하나로 써 내려간 마흔 해

 

폭도니 토벌대니 방화니 학살이니

섬을 함구하던 사월의 어휘들이 풀려도

가슴에 피는 동백꽃은 왜 뜨겁고 시릴까

 

 

 

두 소년 이종형

 

그러니까 이것은 질문들

아직 죽지 않고 다만

그해 겨울에 사라져 투명해져 버린 질문들

 

이름이 같은 두 소년이 있었다

같은 이름이 두 번 호명된

무자년 그 겨울에

투명 망토를 입은 듯 집을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다

 

누가 가슴에 총구를 겨눴나

왜 잡아갔고

왜 돌려보내지 않았나

살았나 죽었나

그러니까 이것은 끊임없이 반복되는 질문들

 

명림로 430번지 행방불명인 묘역에 가면

고작 열다섯, 열일곱이었던

같은 이름을 새긴 두 소년의 비석이 서 있고

나는 계절마다 같은 안부를 두 번씩 묻는다

 

강보환 그리고

강보환

소년인 채로 늙어가는 너는 지금 어디에 있나

그러니까 이것은 질문들

끊임없이 이어지는 질문들

 

쉬잇, 네가 아니면 대답할 수 없는

쉬잇, 너 말고는 아무도 모르는

쉬잇, 1948년 그 겨울에

 

 

 

달그락, - 장영춘

 

기다린 당신의 봄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 겨울 골목길에 발소리도 낮추며

살아서 돌아오리라 등 떠밀던 아버지

 

발목 빠진 계절 앞에

당신은 오지 않고

 

무작정 찾아든 숲, 생과 사 경계에서

풀뿌리 근성으로 견딘 발자국이 뜨겁다

 

꽁꽁 언 낮과 밤

봉인된 시간을 풀며

 

달그락 숟가락 소리, 얼음장 녹는 소리

드디어 재회를 꿈꾸는 얼음새꽃 떨리는 손

 

 

                  * 제주43 73주년 추념시집 거기, 꽃 피었습니까(한그루, 2021)에서

      * 사진 : 찾아가는 현장 예술제 '봉인' 중  국악연희단 하나아트의 연기(2022. 4. 9. 다랑쉬굴 주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