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계간 '제주작가' 여름호의 시(2)

김창집 2022. 7. 30. 00:15

 

우리들의 전언* 허영선

 

여기에 인간이 있었다 삶이 있었다

우리는 죽은 자들, 죽었으나 죽지 않았다

우리는 캄캄한 굴속 연기에 갇혀 연기에 떠도는 자들

사라지지 않는 자들이다

 

우리는 다만 살기 위해 깊이 들었을 뿐

마지막 숨이 막힐 때까지 서로를 놓지 않았다

엄마는 한 줄기 숨을 아이에게 주었고,

연기의 소리가 인간에게 닿기를 기다렸다

 

부디, 우리를 기억해주기 바란다

우리의 그날이 당신들의 존엄이기를

희망이기를, 평화이기를 바란다

당신의 그 자리, 서럽도록 아름다운 다랑쉬의 명예를

지켜주기 바란다

 

이제 우리는 두려움 없는 파도가 되었다

당신들은 우리가 그토록 찾던 봄이다

그대, 그러니 더 이상 슬퍼하지 말기를

이것이 우리들의 전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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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랑쉬굴 방사탑의 비문.

 

 

 

다랑쉬굴 강덕환

 

얼마나 많은 필설이

그대의 형용을 가능케 하랴

썩어 문드러진 육신 틈새로

숨죽여 지내온 세월이 무심히 흐를 때

뼈마디에 스민 한()

차곡차곡 채워두었다가

말보다 진한 침묵으로 다가서던

저 울림

 

다랑쉬오름 햇빛 피한 선수머셋굴

종달리에서 상하도리에서

이름 다르고 나이 달라도

언 손 품속에서 녹여주던

순경, 순환, 두만, 봉관, 명입, 태원, 달룡이

그리고 석순, 성만, 순녀 아지망과

이름 석 자 매달아 주지 못한 그 아들

 

무자년 동짓달 열 여드렛날

움직이는 것은 모두 죽여라

빗질작전이 삶터에 들이닥쳐

짚불 연기 스멀스멀 지펴놓을 때

입속으로 콧속으로 눈 속으로 스며들어

온몸은 파르르 경련에 떨고

살려줍서 살려줍서, 울부짖을 새도 없이

저것 봐라 동굴 바닥

한 귀퉁이에 새겨놓아 전하고자 했던

역사증언의 몸부림

 

 

마흔네 해였다네

술 한 잔 흩뿌리며 찾아 나설 때

어둠 속에 용해되지 않고

끝끝내 마그마로 흐르다가

눈을 찌르며 달려와

화산으로 분출하던

열한 구의 주검들

 

웅얼웅얼 주며 받고 있었다

옆 사람이 그 옆 사람에게

신발이 혁대에게

숟가락이 솥에게

서로의 이름을 부르다 보면

어느새 다랑쉬오름

굼부리만큼 넓은 마음 나눠 갖던 날들

 

동토의 공화국에 탯줄 받고 자란 탓에

바람 쓸리는 곳 피한

칠흑의 동굴 속

웅크린 만큼

바깥세상 그리는 꿈도 버리지 않았다

 

살 맛 나는 시절 오기만 해봐라

일곱 살배기 어린 것 앞장세우고

덜래덜래 고향집 찾아갈 거다

울담으로 식게 떡 나눠 먹던

이웃들도 만나볼 거다

 

아하, 제상 받아 앉은 자리에서

산담 두른 봉분에서

목줄 돋워 당당하게 말하자던

악독한 시절의 못다 한 이야긴

한 줌 재도 추스르지 못해

제주바다 푸른 물살에

혼백으로 떠다니더니

 

기어코 붙잡아 오르는구나

탄탄한 밧줄 질끈 잡고

분단조국을 넘는

구름으로 바람으로 솟구치는구나

썩어 밑거름 자양분 삼아

뿌리를 뻗고 가지를 드리워

너 나 없는 세상의 빛살로

이제야 뚜벅뚜벅 걸어오는구나

 

 

 

다랑쉬굴에서 부는 바람 강봉수

 

큰다랑쉬 밑 아기다랑쉬에 올라서면

손에 잡힐 듯 바라다 보이는 종달바당

바람이 불면 흔들리는 초가집

파도 물결이 코에 맺히고 이마에 젖는다

 

난리 통에 떠나온 집

두고 온 어멍 아방

재수랑 동갑내기 동생도 잘 있는지

바람이 부는 날이면 대숲이 운다

 

불 칸 마을 사람들 모두 떠나 없는데

바람만 불면 대숲에선 사람 소리 술렁이네

차르르 휘 휘 셔,

대나무가 어깨를 걸고 말을 전하네

 

용눈이가 보았네

손지도 보았네

달품은 오름도 다 보았네

궤 소곱에 불 짇엉 열한 사름 목숨 좀은 일을

 

아기다랑쉬에 올라서면 보이네

그리운 고향바당 초가집이

큰다랑쉬에 걸린 어멍 얼굴도

다랑쉬굴에서 얼굴 내밀면

 

 

                                                       *계간 제주작가2022년 여름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