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큰오색딱따구리
숲을 수리 중인지 망치 소리 한창이다
그래도 속수무책
기어드는 눈 몇 송이 온
몸이 망치가 되어 따-악 딱 못질한다
♧ 섬, 신구간新舊間
신神인들 별 수 있나 먹고는 살아야지
대한과 소한 사이, 이레 혹은 여드레쯤
저마다 일자리 찾아 섬을 비운
만팔천 신
그 틈새 놓칠세라
사람들은 사람들대로
눈치 볼 일 하나 없이 이삿짐을 꾸린다
섰다판 끗발 안 나면 서로 자리 바꾸듯
이번엔 어떤 신이 또 나를 간섭할까
이왕에 만날 거면
청춘 한 때 목련 같은
그 허기 그 세월이면 동티나도 좋아라
♧ 들병이
둥그런 산수국에도
너울너울 사랑이 있다
올렛길 섬 한 바퀴
장맛비로 돌아들면
들병이, 들병이같이
날 홀리는 헛꽃이 있다
♧ 꿔엉 꿩
오일장 할망들도
본숭만숭 한다는
손 시린 천 원짜리 그마저 털린 봄아
그런 날
오름에 올라
공갈 한 번 치고 간다
♧ 푸른 그늘
땅속엔 재밌는 일 그리 많지 않나보다
한 여름 머귀나무 기어오른 매미가
한 목청 세상에 대고 푸른 그늘 날리며 운다
모천에 회유하는 남대천 연어처럼
제 씨앗 퍼뜨리려 세상에 나온 것들
기꺼이 목숨을 걸듯 접을 붙는 것이다
땅속엔 재밌는 일 그리 많지 않나 보다
그렇다면 이승이란 게 봄 저녁 허기 같아도
내 아직 살아있을 때 한 눈이나 팔까 보다
*오승철 시집『사람보다 서귀포가 그리울 때가 있다』(황금알, 2022)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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