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오승철 시집 '사람보다 서귀포가 그리울 때가 있다'

김창집 2022. 8. 24. 02:41

 

큰오색딱따구리

 

 

숲을 수리 중인지 망치 소리 한창이다

 

그래도 속수무책

기어드는 눈 몇 송이 온

 

몸이 망치가 되어 따-악 딱 못질한다

 

 

 

, 신구간新舊間

 

 

인들 별 수 있나 먹고는 살아야지

대한과 소한 사이, 이레 혹은 여드레쯤

저마다 일자리 찾아 섬을 비운

만팔천 신

 

그 틈새 놓칠세라

사람들은 사람들대로

눈치 볼 일 하나 없이 이삿짐을 꾸린다

섰다판 끗발 안 나면 서로 자리 바꾸듯

 

이번엔 어떤 신이 또 나를 간섭할까

이왕에 만날 거면

청춘 한 때 목련 같은

그 허기 그 세월이면 동티나도 좋아라

 

 

 

들병이

 

 

둥그런 산수국에도

너울너울 사랑이 있다

 

올렛길 섬 한 바퀴

장맛비로 돌아들면

 

들병이, 들병이같이

날 홀리는 헛꽃이 있다

 

 

 

꿔엉 꿩

 

 

오일장 할망들도

본숭만숭 한다는

 

손 시린 천 원짜리 그마저 털린 봄아

 

그런 날

오름에 올라

공갈 한 번 치고 간다

 

 

 

푸른 그늘

 

 

땅속엔 재밌는 일 그리 많지 않나보다

한 여름 머귀나무 기어오른 매미가

한 목청 세상에 대고 푸른 그늘 날리며 운다

 

모천에 회유하는 남대천 연어처럼

제 씨앗 퍼뜨리려 세상에 나온 것들

기꺼이 목숨을 걸듯 접을 붙는 것이다

 

땅속엔 재밌는 일 그리 많지 않나 보다

그렇다면 이승이란 게 봄 저녁 허기 같아도

내 아직 살아있을 때 한 눈이나 팔까 보다

 

 

              *오승철 시집사람보다 서귀포가 그리울 때가 있다(황금알, 2022)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