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섬과 섬 사이 3
-다려도
파도가 넘나드는
아담한 섬 다려도
밭둑도 없는 섬에
원두막만 졸고 있다.
이따금 낚시꾼 배가
섬 해안을 가른다.
다려도를 보노라면
순이삼촌* 생각난다.
4․3의 대학살* 때
희생된 가족들로,
평생에 트라우마를
못 벗어난 옴팡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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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이삼춘 : 작가 현기영 소설 ‘순이삼촌’의 주인공.
*4․3의 대학살 : 대학살터 너븐숭이에는 ‘너븐숭이 4․3기념관’이 있음.
*옴팡밭 : ‘순이삼촌 문학비’가 있는 곳.
♧ 섬과 섬 사이 4
-토끼섬
하도리 해변에서
손에 잡힐 듯 가까운 곳.
썰물 땐 걸어서도
갈 수 있는 작은 섬.
이 곳이 국내유일의
문주란 꽃 자생지라.
해마다 7, 8월엔
토끼섬에 가 보아라!
문주란 꽃으로만
온 섬이 덮였으니,
죽어서 관 없이 묻혀도
덜 서러울 토끼섬…
♧ 섬과 섬 사이 9
-썩은섬
조이통물 개울에서
서건도를 찾노라면,
너븐물 밀어내며
성터 하나 보이는데,
그 이름 썩은 것도 아닌
섬 속의 섬 썩은섬.
소문으로 유명해진
한국판 모세의 기적
진도 모도, 여수 사도,
무창포 해수욕장,
그리고 강정항 썩은섬이
갈라지는 바닷길….
♧ 섬과 섬 사이 11
-가파도加波島
가오리 가파도엔
파도가 네 가지다.
봄에는 보리파도
한여름엔 구름파도…
가을엔 억새파도 너머
수평선엔 구름파도…
가파도의 4월은
청보리 축제의 달,
먹거리 즐길거리
흥겨운 시골축제,
청보리 파도길 걷다 보면
마라도도 끼어든다.
♧ 섬과 섬 사이 12
-마라도馬羅島
고구마 마라도엔
나무도 없고 꽃도 없다.
내 고작 요걸 보러
삼천리를 달려왔나?
우뚝 선 ‘국토최남단비’만
태평양을 등에 졌다.
한 맺힌 업저지가
머리 풀고 울고 있는
마라도 할망당은
비바리가 할망*이라.
억울한 희생본풀이에
억장이 다 무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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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망 : 할머니의 제주어
*정인수 시집 『섬과 섬 사이』 (고요아침, 2017)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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