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김신자 시집 '난바르'의 시조(4)

김창집 2022. 9. 13. 01:55

 

 

실마리

 

  타고난 천성인가 아니면 습관인가

 

  듣도 보도 못하던 병, 코로나 팬데믹에 마스크로 입 틀어막은 사회적 거리두기가 빵집 하는 은숙이에게도 치명타를 남겼다 누군들 불안하고 무기력하지 않겠니 그래도 눈 뜨면 늘상 했던 일 맛있는 빵을 구워내야지 그러면서 밀가루 포대 매듭을 스르르 쉽게 푸는 거야 굳게 다문 매듭을 제대로 풀어본 적 없는 나는 그게 너무 신기해서 어떻게 얽히고설킨 실마리를 술술 푸냐고 물었지 다 방법이 있어 안 풀어진다고 조급해도 안 되고 박박 잡아당겨도 안 돼 아기 다루듯 살살 매듭 결 따라 풀다 보면 스르르 풀리는 거야 사람 관계도 다 그런 거지 당기고 조이고 풀어헤치고 그러다 느긋하게 때를 기다려야지 아, 매듭 하나 풀지 못해 그 시간을 기다리지 못해 아등바등하다

 

  가위로 싹둑 잘라버린 산산조각 인연들

 

 

 

고구마꽃 피다

 

 

그래도 저건 꽃인데 아깝지 않나요

아이고, 빨리 잘라 밭 구석에 버려라

그 꽃을 확 따 버려야 열매가 굵어진다

 

하늘을 쳐다보며 고구마꽃 나팔 분다

예쁘게 피어놔서 너무나 아깝네요

수많은 이 걱정의 꽃 어떡하면 좋을까

 

 

 

치매

 

 

언젠가 도두 바닷가

제 이름 자랑하던

키 크고 갸름한 얼굴

미소가 바다내음이던

그 시인 이름 뭐더라?

까마득히 잊었네

 

생각 속에 먹물 번지듯 하나둘 잊혀 가네

내 이름 내 고향은 당산봉처럼 번듯한데

기억은 어느 갈림길 헤매는 모양이네

 

울 엄마 올해 몇 살?

열아홉 먹었단다

어머니 오래 사세요

열아홉까지 살련다

울 엄마 열아홉이래요

나도 그리 될 건거?

 

 

 

하늘레기*

 

 

기억 저 끄트머리 옛 시간 펼쳐 본다

탐스런 열매마저 아낌없이 건네주고

액운을 막아주느라 애간장 타는 어머니

 

잎사귀 말라붙은 당신 떠난 빈자리

연기에 그을리며 대롱대롱 매달려

친정집 부엌 귀퉁이 총총별로 뜬다네

 

하늘에 가 계셔서 하늘레기 저 눈동자

자식들 내려 보며 품 안에 안으시고

오늘도 우리랑 함께 그렇지요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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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레기 : 하늘타리

 

 

 

종네기

 

 

양 무릎 수술해서 인공관절 박은 남편

칠순 넘어 주도권 꽉 잡은 아내로부터

저놈의 종네기가 되어 화살처럼 맞았네

 

이야기 하나 둘씩 오랜 비밀 뽀록날 때

할머니 옆에 있다 듣게 된 네 살 손주

말했네, 어린이집 가서 할아버진 종네기라고

 

그 말을 선생님께 전해들은 며느리는

시간이 날 적마다 불을 켜고 가르쳤네

아들아, 할아버지는 종네기가 아니란다

 

온가족 노력해서 종네기는 없어졌네

할머니 하는 욕은 까막눈도 뜨게 하는

곰삭아 한이 맺혔던, 웃음거리 그 말들

 

 

                                         *김신자 시집 난바르(좋은땅, 2022)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