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달새에게 - 임보
경經에 이르기를
기어綺語를 범한 자는
장차 상지옥上地獄에 떨어져
혀를 만 발이나 늘이게 된다고 하네
닫기도
열기도
힘든 이 문門
참 답답도 하네
맑은 소리로만 우는 종달새여
저 세상에서도 너는
우리들의 머리 위를
그렇게 날겠구나
♧ 화석정花石亭 - 이율곡(李栗谷)*
林亭秋已晩(임정추이만) : 숲 속의 정자에 가을이 벌써 깊어가니,
騷客意無窮(소객의무궁) : 시인의 생각이 끝없이 일어나네.
遠水連天碧(원수연천벽) : 멀리 보이는 저 물빛은 하늘에 잇닿아 푸르고
霜楓向日紅(상풍향일홍) : 서리 맞은 단풍은 햇볕을 받아 붉구나.
山吐孤輪月(산토고윤월) : 산은 외롭게 생긴 둥근 달을 토해 내고,
江含萬里風(강함만리풍) : 강은 만리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머금었네.
塞鴻何處去(새홍하처거) : 변방에서 날아오는 기러기는 어디로 가는가,
聲斷暮雲中(성단모운중) : 울고 가는 소리 석양의 구름으로 사라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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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자가 팔세 때 지은 시(八歲賦詩).
♧ 맹그로브나무들 - 박수화
붕따우에서 호치민으로 물길 거슬러 오른다
이 물길 메콩강 하구 삼각주 지구 온난화로
바닷물에 잘길 때 늪 나무들이
또 다시 죽게 된다고
강을 내달리는 쾌속선 뱃길이
나를 반기듯 알려주는데
30년 동안 고엽제 후유증 앓던 나무 나무들
그 맹그로브 정글이 되살아났다고
어린 맹그로브나무들 힘 차거라
해수면 위로 밀어 올린다, 땅심
땅 심지여, 사이공의 열창이여
지구의 우람한 숲을 다시금 꿈꾸는가
이 숲엔 젊은이들 기운이 활기차다
진초록 맹그로브 군락으로 피어나고 있다
♧ 풍뎅이의 가을 – 박여람
숲의 숨소리가 깊어졌다
발걸음이 불안하다
다리가 꼬여 쓰러진다
배를 하늘로 향하고
버둥대는 모습이 안쓰러워 세워줬다
서너 걸음 옮기더니
다시 쓰러진다
그렇게 쓰러지면
잠시 쉬어가는 것을 몰랐다
그가 어디를 찾는지 알 수 없지만
모두가 만나는 그곳으로 가리라
눈이 마주쳤다
그와 나의 가을이
♧ 65세 이후 – 오형근
일 년에 한 번
죽을 때까지 지급되는
연금 보험금이 입금되지 않아
전화를 했더니,
65세 이후에는 직접 본인이
전화를 해야 지급한다고!
속뜻을 알아차리고는
멋쩍게 웃고 말았네, 내가
본인이라고 말하면서
이번에도
또 전화를 해야 하는데,
어떤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
며칠째 전화를 못하고 있네
살아온 시간 내 삶이 부끄럽네
자꾸 부끄러워지네
이번에는 아예 웃지도 말고,
단도직입적으로 아직 살아있다고 말할까
그렇지만, 나는 전화를 하고 말았네
그 다음 날에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살아오면서 익힌 그대로,
천연덕스럽게 속마음을 잘도 숨겼네
* 『산림문학』 2022년 가을호(통권 47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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