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산림문학' 2022년 가을호의 시(3)

김창집 2022. 10. 3. 00:43

*사진 : 카페 '여행등산야생화 사진' 상 록수님의 바위종달새

 

종달새에게 - 임보

 

 

에 이르기를

기어綺語를 범한 자는

장차 상지옥上地獄에 떨어져

혀를 만 발이나 늘이게 된다고 하네

닫기도

열기도

힘든 이 문

참 답답도 하네

맑은 소리로만 우는 종달새여

저 세상에서도 너는

우리들의 머리 위를

그렇게 날겠구나

 

 

 

화석정花石亭 - 이율곡(李栗谷)*

 

 

林亭秋已晩(임정추이만) : 숲 속의 정자에 가을이 벌써 깊어가니,

騷客意無窮(소객의무궁) : 시인의 생각이 끝없이 일어나네.

遠水連天碧(원수연천벽) : 멀리 보이는 저 물빛은 하늘에 잇닿아 푸르고

霜楓向日紅(상풍향일홍) : 서리 맞은 단풍은 햇볕을 받아 붉구나.

山吐孤輪月(산토고윤월) : 산은 외롭게 생긴 둥근 달을 토해 내고,

江含萬里風(강함만리풍) : 강은 만리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머금었네.

塞鴻何處去(새홍하처거) : 변방에서 날아오는 기러기는 어디로 가는가,

聲斷暮雲中(성단모운중) : 울고 가는 소리 석양의 구름으로 사라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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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자가 팔세 때 지은 시(八歲賦詩).

 

 

  

맹그로브나무들 - 박수화

 

 

붕따우에서 호치민으로 물길 거슬러 오른다

이 물길 메콩강 하구 삼각주 지구 온난화로

바닷물에 잘길 때 늪 나무들이

또 다시 죽게 된다고

강을 내달리는 쾌속선 뱃길이

나를 반기듯 알려주는데

 

30년 동안 고엽제 후유증 앓던 나무 나무들

그 맹그로브 정글이 되살아났다고

어린 맹그로브나무들 힘 차거라

해수면 위로 밀어 올린다, 땅심

땅 심지여, 사이공의 열창이여

 

지구의 우람한 숲을 다시금 꿈꾸는가

이 숲엔 젊은이들 기운이 활기차다

진초록 맹그로브 군락으로 피어나고 있다

 

 

 

풍뎅이의 가을 박여람

 

 

숲의 숨소리가 깊어졌다

 

발걸음이 불안하다

다리가 꼬여 쓰러진다

 

배를 하늘로 향하고

버둥대는 모습이 안쓰러워 세워줬다

서너 걸음 옮기더니

다시 쓰러진다

그렇게 쓰러지면

잠시 쉬어가는 것을 몰랐다

 

그가 어디를 찾는지 알 수 없지만

모두가 만나는 그곳으로 가리라

 

눈이 마주쳤다

그와 나의 가을이

 

 

 

65세 이후 오형근

 

 

일 년에 한 번

죽을 때까지 지급되는

연금 보험금이 입금되지 않아

전화를 했더니,

65세 이후에는 직접 본인이

전화를 해야 지급한다고!

 

속뜻을 알아차리고는

멋쩍게 웃고 말았네, 내가

본인이라고 말하면서

 

이번에도

또 전화를 해야 하는데,

어떤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

며칠째 전화를 못하고 있네

 

살아온 시간 내 삶이 부끄럽네

자꾸 부끄러워지네

 

이번에는 아예 웃지도 말고,

단도직입적으로 아직 살아있다고 말할까

 

그렇지만, 나는 전화를 하고 말았네

그 다음 날에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살아오면서 익힌 그대로,

천연덕스럽게 속마음을 잘도 숨겼네

 

 

                              * 산림문학2022년 가을호(통권 47)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