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똥구리가 있는 풍경 2
품삯 없는 내 행위는
어쩌면 고집이다
온종일 부역 끝에
남는 게 똥덩이라니
밑바닥
십여 년쯤에
그
뜻을
알 것
같다
등어리 씻겨주는 밤이슬도
고맙지만
습성처럼 떨어지는
별똥을 바라보면
하늘은
품위보다도
깨어 있음이
아
름
답
다
♧ 이어도, 낮은 불빛은 타오르고
바다를 곁에 두고 살아본 사람들은
수평선이 발행한 주식을 할당받아
이따금 어시장에서 시세를 가늠한다
주가가 낮으면 낮은 대로 견디어 온
흉어의 자맥질에 불안한 물새들아
섬 하나 젖은 꿈자리 미리 찍어 두었다
성산포 해가 뜨면 이어도에 달이 뜨고
한림항에 바람 일면 이어도는 출어하네
누구냐 시장 개입해 상한가를 들먹이는
매각한 이 없어라 반딧불만한 생각 하나
시원의 물결 따라 떠 흐르는 섬이여
까치놀 낮은 불빛이 난바다에 가득하다
♧ 들국화
빙점 향한 어느 순간
내 의식은 깨어난다
늦은 나비 흩트리는 아침 안개 틈새로 조금은 슬픈 눈빛 이 세상에 던지며 짐짓 비탈에 낮게 사는 들꽃이여
간간이
뼈를 울리는
섬바람도 섭섭하다
♧ 가을 밤나무 숲
생밤 쩍쩍 벌어지는 밤나무 숲에 서면
집단 무의식이 환장스런 오르가즘
배란기 야생 밤꽃이 환장케 부풀더니
수액 빨던 잎맥이며 번들거리는 이파리도
가을새 한 마리가 끌고 온 바람 타고
불혹에 새치를 뽑듯 초록물을 빼고 있다
♧ 어느 혜성을 위하여
맨 처음
그것은 한 떨기 그리움이었다
늦사월 왕벚꽃이
제 꽃잎 놓아주듯
무중력
풀린 별 하나
먼 하늘의 여인이여
하쿠타케* 그 사람은
밤이 좋아 별이 됐지
못내 풀지 못한
속내 이야기야
때 되면 별똥 내리듯
숯으로야 남겠지만
백제 금강 곰나루를
물결 따라 떠난 이는
역류의 물소리로 섬 머리를 때리며
어긋난
사랑 하나를
궤도에 띄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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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아마추어 천문학자 하쿠타케에 의해 발견된 혜성.
*홍성운 시집 『숨은 꽃을 찾아서』 (푸른숲, 1998)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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