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정복언 시집 '내게 거는 주술'의 시(2)

김창집 2022. 10. 13. 00:27

 

제비꽃

 

 

내 생 초라하여라

목숨 한 번 걸어본 적도 없이

그저 밥이나 빌었으니

 

손발이 신음하며 생계야 꾸렸지만

야수처럼 불온하게 몸 던져 본 적 없으니

빵만으로 사는 게 아니라고

어떻게 감히 이야기하랴

 

무승부는 싱겁다고

구경꾼처럼 투덜대면서

이념의 전장엔 눈 감고

칼자루 한 번 쥔 적 없이

바스러지는 내 핏줄의 만가

 

오늘도 고개 숙여

멀어지는 말밥굽 소리

더듬다, 불쑥 일어서는 굴욕의 칼날

기어이 휘두루리라, 불꽃 튀던

한순간은 있었다 전하리니

 

 

 

낙화 6

 

 

쾌락의 비명을

한 줌 흙에 건네는

 

서늘한 이별식은

낯선 흙더미에서

의욕을 마름하다가

 

시절을 마저 채우려

떠나는 봄을 붙잡네

 

햇살 맑은 날

가젤처럼 통통 튀기도 했던

추억의 부스러기들

 

주름 접어 껴안는

씨앗의 둥지엔

봉긋한 통증이

이슬처럼 서리네

 

 

 

낮달

 

 

늙은 세월이

컹컹 목이 메는

막다른 골목

 

깨진 가슴으로

스며나는

침묵의 말을

움켜잡고

 

사랑의 유랑자

바람처럼 흘러온

한 줌의 생

 

밤의 어둠을 잃고

허공에 담긴 유언

겹겹으로 봉인하고

구름 뒤로

낙관처럼 눌러앉네

 

 

 

거미

 

 

허공으로 투망하는

노련한 흉계여

 

날아든 생을

한순간에 삼키고

 

바람 붙잡고 흔들리는

삶의 역설

 

생명, 사는 일이

먹는 일이라

 

오물거리는 입이

자꾸 클로즈업되는

 

 

 

갈구

 

 

불잉걸 위에

내 마음 올려놓으면

시벌건 한 줄 문장 태어날까

 

빙벽에 내 마음 걸쳐 놓으면

또랑또랑한 눈망울로

세상을 읊조릴 수 있을까

 

내 마음 날개 키워

파란 허공에 걸터앉으면

내 안의 내가 무수히 튀어나와

사막의 낙타도 타고

길 위의 길, 지워진 길을 걷고

 

알프스의 독수리 불러 모아

썩은 마음 다 뜯어 먹도록

주술도 부르고

그러다가 어둠으로 모여든

모든 나를 내 속에 집어넣고

냉수 한 잔 들이켤 수 있을까

 

아득히 작아진 내가

개미가 지나는 길 비켜서서

그저 바라보며 멍때릴 수 있을까

 

 

                       *정복언 제2시집 내게 거는 주술(정은출판, 2022)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