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디카 일기

어디에 선들 어떠랴, 우리는 이미 승리자

김창집 2002. 6. 26. 12:25
▲ 어디에 선들 어떠랴

어디에 선들 어떠랴
엄동설한 살얼음 녹인
그대와 나의 불씨
그 불씨 다시 살아
부끄럼 없는 하나가 되었는데
어둠을 헤치는 불꽃 크나큰 사랑인데
어디에 선들 어떠랴
험하디 험한 산골짝
기름때 묻은 단칸방
어화둥둥 내 사랑인데
어디에 선들 어떠랴
그대 내 위함이
풋풋한 사랑으로 영글어가듯
내 그대 그리워함이
활활 타오르는 불이 된다면
어디에서라도 좋아라
파도 휘몰아치는 외딴 방파제에서
사랑으로 뱃길 인도하는 등대로 살아도 좋아라
생선 비린내 나는 시장 골목
모질디 모진 빌레 위에서라도
그대와 맞잡은 손이라면
어우러져 이렇게 하나 된다면
어디에서라도 좋아라
어디에서라도 좋아라

---김수열 <축가> 전문


▲ 목표 300% 초과 달성한 우리는 모두가 승리자

우리 축구가 어느 수준이었는가? 세계 수준의 한 단계 아래인 아시아의 맹주라고 우월감에 젖어 있는 동안 일본을 비롯한 주변국들이 축구에 과감히 투자를 하여 선두의 자리에 위협을 느껴왔다. 정말 우리는 1승에 목말라 했었다. 이번 한일 월드컵에서도 어떻게 1승1무1패를 거둬 개최국으로서 16강에 올라 체면을 지켰으면 좋겠다고 내심 바라왔었다. 그러나, 경기가 진행되면서 무패의 기록으로 조1위로 16강에 오르고, 생각만 해도 가슴 벅찬 유럽의 강호를 차례로 집으로 돌려보내며, 8강을 넘어 4강의 신화를 이룩했다.

신이 났다. 거듭되는 승전보에 모두가 입을 다물지 못하고 붉은 옷을 입고 거리로 나섰다. 광화문 네거리에도 시청 앞에도, 전국 곳곳에서 진달래꽃이 한꺼번에 왕창 피어나듯 "대∼한민국!"의 함성 속에 응원이 만개했다. 언제 우리가 이렇게 감동적인 장면을 연출한 적이 있었는가? 건국이래 언제 이렇게 남녀노소, 지역을 타파하고 하나가 되어 애국심에 불타오른 적이 있었는가? 선수들의 몸 동작 하나 하나에 따라 숨을 고르고 호흡을 맞췄다.

지난 대회 우승팀인 FIFA 랭킹 1위 프랑스가 16강에 탈락하여 눈물을 흘리며 짐을 싸고, 아르헨티나, 포루트칼, 이탈리아, 스페인, 잉글랜드를 비롯한 랭킹 상위의 전통 강국들이 속속 떨어져 나가는 가운데서도 선수들의 패기와 자신감, 히딩크 감독의 용병술, 그리고 '붉은 악마'를 주축으로 12번을 단 국민들의 성원 등 3위 일체를 이룬 우리는 승승장구하여 월드컵 4강이라는 신화를 창조하였다. 세계는 우리의 선전에 놀라워하면서 박수를 보내고 우리는 승리의 기쁨을 만끽했다.

그 동안 신나는 일이 없어 잠잠했던 우리 민족의 '신바람'은 폴란드를 이긴 부산에서부터 서서히 일어나, 대구를 거쳐 인천, 대전에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는 힘이 되어 마침내 민주화의 성지 광주에서는 꿈의 4강을 이루었다. 축구는 축구 그 이상의 의미가 되어 일찍이 없었던 국민 단합을 가져다주고, 우리가 힘을 모으면 무엇이든 못 이룰 것이 없다는 자신감을 가져다주었다. 그래 우리는 모처럼 국운상승의 길로 가는 기회를 맞게 되었다. 비록 결승에는 진출하지 못했지만 우리는 목표 300% 초과 달성한 승리자이다.

▲ 여기에서 머물러서는 안 된다

안타까운 탈락이었다. 그러나, 선수들은 잘 싸웠다. 여러 차례 우승과 준우승을 차지한 적이 있는 전차군단 독일 팀을 맞아 조금도 굴하지 않고 당당히 맞서 마지막 힘까지 활활 태웠다. 힘을 바탕으로 계속 밀어붙이던 우리 선수들은 계속되는 경기로 말미암아 힘이 소진되었고, 그 강점을 잃고도 마지막 투혼을 불살라 아쉬움만큼이나 큰 감동을 세계인에게 선사했다. 지구촌 곳곳에 "대한민국"을 선명히 각인시키며, 월드컵 4강의 신기원, 4천7백만 국민의 열광적 응원은 용광로처럼 펄펄 끓는 "코리아의 에너지"를 발산하였다.

여기서 머물러서는 안 된다. 이번에 우리는 승리가 얼마나 달콤한 것인가를 온몸으로 느꼈다. 이 시점에서 내가 우리 축구 발전을 위해 어떤 일을 했던가 스스로 반성을 해 보아야 한다. 그저 큰 경기가 열릴 때마다 중계나 보고 이기면 좋아하고, 지면 선수나 감독을 나무라는 일을 계속하고 있지나 않았는지? "우리 수준은 어쩔 수 없어!" 하면서 스스로를 비하시키고 체념하고 잊어버리기를 반복해 오지 않았는지? 축구를 좋아하는 아들에게 꼭 공부를 해야만 살 수 있다고 만류하지 않았는지?

우리를 이긴 축구 강국 독일 노동자들은 월요일 아침이면 축구 얘기로 시작해 다음 경기를 기다리며 한 주를 보낸다고 한다. 독일인들에게 축구는 국기(國技)이자 '신앙'이나 다름없다. 독일은 1974년에 이어 32년 만인 2006년에 다시 월드컵을 유치했다. 시골 구석구석까지 잔디 구장이 있고 유소년 축구 인구도 엄청나다. 1963년 서독에서 시작된 프로 축구가 근간이 된 분데스리가에 36개 프로축구팀이 축구 열기를 달군다. 아마추어 클럽만 2만1천 개가 넘고 등록된 선수만 470만 명에 달한다니 우리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다.

여기서 우리가 앞으로 할 일이 무엇인가가 드러난다 우선은 우리 모두 축구를 사랑하는 일이다. 축구를 좋아하는 어린이들에게 마음껏 축구를 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해줘야 한다. 지역마다 축구팀을 만들어 그들을 도와주고 관심을 가져 경기가 있는 날이면 경기장을 찾아 이번처럼 축제를 펼치자. 평상시 축구에 관심을 가져 좋아하는 선수와 팀을 후원하고 마음껏 축구에 전념할 수 있도록 도와 주자. 그렇게 되면 앞으로도 이런 감동과 기쁨을 두고두고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던 좌절과 자포자기의 기운은 깨끗이 사라졌다. 대신 우리도 할 수 있다는 분명한 자신감이 그 자리에 싹텄다. 언제 우리가 대한민국에 태어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 적이 있었는가? 이번에 월드컵을 공동 주최한 우리는 7백만 명이 모여 뜨거운 응원을 펼치고, 그 자리를 깨끗이 치우고 떠나는 "열정과 질서"를 세계인의 가슴속에 심어주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월드컵을 통해 15조원 이상의 경제적 효과를 창출한 것으로 추정했다. 앞으로 이 힘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결집시킬지도 생각해보아야 한다.

이번 토요일 대구에서 열리는 3∼4위전은 승패를 떠나서 주최국 국민으로서 마음껏 즐기자. 그리고, 7월1일 모처럼 만든 공휴일에는 다음 월드컵을 위해서 모두 출사표를 쓰자.

태국 전사 여러분! 국민 여러분! 수고 많았습니다.
끝까지 최선을 다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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