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오름 이야기

정물오름과 당오름에서[2001. 5. 6.]

김창집 2002. 12. 17. 11:34
△ 비 때문에 못 오른 구드리오름

너무 서쪽에 있는 오름만 간다는 회원들의 볼멘 소리에,
그러면 오늘은
정석비행장 옆에 있는 구드리오름에 가서
새우난초 꽃이나 감상하자고,
동부산업도로를 따라가는데
아무래도 비가 심상치 않았네.

그래
대천동 사거리에서 우회전하여
산굼부리 방향으로 오르다
정석 비행장 입구 새로 빼 놓은 길에 차를 세우고는.
의논 끝에
오늘 비가 너무 와서
구드리 가면 물에 빠진 쥐 꼴이 되겠다고
서쪽으로 가보자고 했네.

교래리 → 5.16도로 → 산천단 → 산록도로를 통하여
제2횡단도로 가다 한밝저수지에서 다시 산록도로
입구에 모여 의논한 결과
정물오름과 당산봉엘 오르자는 결론에 도달,
산록도로를 따라가다 원동, 서부산업도로를 거쳐
이시돌 목장을 통하여 정물오름 입구에 도착했네.

▲ 지금 정물오름은 샛노란 들꽃들의 잔치

봄 가뭄이 심한데도 정물오름의 샘은 맑았고
날씨는 그런 대로 좋았네.
안온하게 펼쳐진 U자형 굼부리
등성이로 한 바퀴 둘러 있는 길을 오르는데
처음으로 눈에 띄는 꽃은
노랗게 반짝이는 미나리아재비와
이제 막 피기 시작한 개민들레,
거기다 줄기에 솜털이 보송보송한 솜방망이꽃도 가세
오름 하나 가득 노랑으로 넘쳐나네.

자세히 들여다보니 자줏빛 등심붓꽃과 구슬붕이가
작지만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거리는데
그 중에 가끔 하얀 씀바귀 꽃도 섞이고.
곳곳에 보리수나무가 왁자지껄 꽃을 매달고 있어
올 가을 볼래가 많이 달릴 것 같은 조짐을 보이는데
고사리는 가물어서 별로 못 보겠네.

정상에 오르니, 가슴 가득 넘쳐나는 바람
너무 세어 앉아 쉴 곳도 없었네.
그런 대로 사방을 조명하고는
내려오다 잔디밭을 골라
옹기종기 모여 앉아
차 한잔씩 나누며 맑은 공기를 만끽하네.
'이 순간은 누구도 부럽지 않다.'고
하늘로 날아오르는 종달새에게 말했네.

△ 당오름에서 다시 느끼는 외세(外勢) 바람

다음 오른 그 남쪽의 당오름.
이웃해 있지만 정물오름은 북제주군 한림읍이고,
이곳 당오름은 남제주군 안덕면이다.
가물었지만 찔레 숲 속에 고사리가 있어
모두 한 줌씩 꺾어 저녁 반찬거리로 마련하고.
가파른 곳을 택해 정통으로 오름엘 오르는데
이건 개민들레가 온통 뒤덮여 하늘거리는 꼴이라니.
너는 어이 목초 씨앗에 묻어와서
오랑캐처럼 제주 땅을 뒤덮으려느냐.

중턱을 넘어서면서부터는 짧은 잔디밭에
왠 구술붕이가 그렇게 많은지.
진짜 맑은 밤하늘에 무수히 반짝거리는 별을 보는 듯.
때맞춰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콧노래를 이끌어 내는구나.
'바람부는 날이면 언덕에 올라/ 넓은 들을 바라보며
그 여인의 마지막 그 말 한 마디/ 생각하며 웃음짓네.
랄라 라랄라랄라 랄랄 라라라라 .........'

몇 년 전 겨울
오후 늦게 이곳에 올랐는데
크단 독수리가 정상에 앉아 있어
머리칼을 곤두세우고 다가서자
슬며시 자리를 내주데.
고분을 관찰하고 돌아서려는 찰나
오름 속에서 웬 연기와 김이 솟아올라
화산의 징존가 하여 깜짝 놀라 살펴보니
일제 말 일본군이
안팎으로 네 개씩 파놓은
땅굴에서 나오는 수증기였네.

이곳에는 예로부터 신령스런 신당(神堂)이 있어
산북에서 당오름으로 유명했는데
지금은 외세에 이렇게 유린당해
커다란 아가리를 벌린 채로
정신 나간 사람처럼 서 있네.
더 이상은 두고 볼 수 없어
한 바퀴 돌고 내려왔네.
너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
이렇게 형벌을 받고 서 있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