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오름 이야기

성불오름과 체오름(4월 1,5,15일 산행)

김창집 2002. 12. 17. 11:24
△ 성불오름을 향해 괴여 놓은 차례탑

동부산업도로 대천동 사거리 지나 3분 정도 달리면
오른쪽으로 꿩엿 공장이 나타나고 그 뒤로
둥싯하게 떠오른 오름.
승마장 어귀에서 바라보면
옥문형(玉門形) 골짜기가 민망한 곳.

하얀 남산제비 군락을 지난 곳에서
허리 굽은 할미꽃들이 모여 웃음꽃을 피우고
솜나물 꽃이 하얗게 부서질 때쯤이면
제비꽃도 질세라 보라색 맨살을 드러낸 채
끓어오르는 봄을 즐기고 있다.

해발 361.7m 서쪽 정상에 오르는 순간,
눈 앞에 층층이 괴어놓은 차례상의 제물들
바로 앞 감은이오름 지나 쳇망, 가문이, 구드리오름 나란하고
그 뒤로 붉은오름, 물찻, 말찻
오른쪽으로 부소악, 부대악, 거문오름, 거친오름, 체오름, 거슨세미, 안돌, 밧돌……

남쪽으로 돌아 넓은 벌판 너머로
이형사 목사의 '탐라순력도'에 나오는
소록산, 대록산 뒤로 여문영아리와 물영아리
왼쪽으로 모지악, 장자악, 따라비, 새끼오름 가족이 모였고
번널오름 병곳오름 그 뒤로 설오름과 갑선이……

동쪽 봉우리는 기암으로 되어 있어
바위틈에 자라는 나무와 어울려 절경을 이루는데
진달래가 벌써 두세 송이 피었구나.
노고지리 노래 소리 들으며 돌아서려는데
민오름, 돌이미, 개오름, 백약이, 동거미, 좌보미, 영주산이 저 보고 가라고 인사를 한다.

골짜기 둔덕엔 오래된 무덤 서너 기(基)
조그만 샘에는 생수가 졸졸 흘러
그 물을 의지하여 돌미나리가 자란다.
계곡에는 둥글레와 머위가 제 자리를 지키는데
사이사이엔 달래가 향기를 풍기고 있다.

성불천(成佛泉)은 옛날 정의현성 백성들의 급수원이었으나
지금은 지하수 때문에 수량이 줄고.
성불암(成佛庵)이 있었대서 그런 이름이 붙었는지
염불하는 모습의 바위가 있어 성불오름인지.
송당리 산266번지에 97m 묵직하니 솟은 오름.

▲ 4월 들어 세 번 오른 체오름

동부산업도로 대천동 사거리에서 왼쪽 송당으로,
송당 삼거리 서쪽 16번도로 1km쯤 왼쪽 시멘트 포장도로로 들어서면 보이는,
4월 들어 1일, 5일, 15일 세 번이나 오른 송당리 산66의 1번지
표고 382.2m, 비고 117m, 둘레 3,036m의 체오름은
지금 한창 봄꽃들이 잔치를 벌이고 있다.

먼저 민들레가 인사를 한다.
아직 잎도 완전히 자라지 않은 채
커다란 차양의 모자를 쓰고
밝게 비치는 햇빛을 받아
진노랑의 향연을 벌이고 있다.

다음은 산자고가 나타난다.
길쭉한 두 잎을 양쪽으로 뻗치고
그 사이로 꽃대를 밀어 올려
보안관 마크 닮은 다섯 장의 하얀 꽃잎을
사방으로 시원하게 펼쳐 놓았다.

보라색 제비꽃이 오랑캐 마냥
이곳저곳에서 불쑥불쑥 나타나더니,
그 뒤로 숨어 핀 남산제비꽃
작은 코스모스 잎을 달고
하얀 꽃잎을 수줍게 빛낸다.

봄의 화신 양지꽃도 앞다투어
보송보송 솜털이 돋아나는 줄기 끝에 별처럼 반짝인다.
그 옆 너무 키가 작고 앙증맞은 솜나물꽃이
아직은 추워서 고개를 못 들고
땅에 바짝 엎드린 채 인사를 한다.

그 외로도
눈 높이를 잘 맞추며 살펴보면
오줌 냄새처럼 진한 향기의 사스레피나무꽃,
고향의 꽃 진달래,
길가 지킴이 자주괴불주머니.

우아한 숙녀 목련,
부끄러워 볼을 살짝 붉힌 산복숭아...
저마다 제자리를 지키고 서서
봄의 교향악을 연주하며
한 바탕 꽃 잔치를 벌이고 있었다.

5일날 다시 간 체오름.
들어가는 입구에서 산자고를 찍으려다가
발견한 두릅, 꽤 많이 땄다.
진달래도 두견주 담글 정도로 피고
달래도 여기저기 향기를 풍긴다.

동백꽃 뚝뚝 떨어지고
개나리 노랑에서 초록색으로 변하면서
굼부리에는 자주괴불주머니와
현호색의 오묘한 무늬와 색에
정신을 빼앗긴 하루였다.

15일 답사 차 오름에 오른 30명중에는
70대 아저씨들을 몇 분 계셨는데
이 할아버지들 머리처럼 할미꽃은 허옇게 세었고
새로 각시붓꽃이 곳곳에 피어나
새롭게 오름을 장식하고 있었다.

송당리 상동에서 남서쪽 2km 지점
송당리와 덕천리의 경계에 걸쳐
북동쪽으로 벌어져 있는 말굽형 화구는
양쪽 등성이가 길게 뻗어 그 모습이 마치 키(箕) 모양으로 생겼다.
그래 제주말로 체오름(箕岳)이라고 부른다.

키 모양의 화구 바닥의 길이는
어귀에서 안쪽까지 500여m,
정상에서의 깊이는 90여m 급경사의 사면
화구 방향으로 암설류 3개의 알오름.
화구 중심으로부터 V자형 침식계곡이 시작된다.

이 계곡 일부를 막아 '아방궁'이라 일컬어지는
정원이 조성되었는데
커다란 굴 아가리 앞에 서느렇게 모여 앉아
음악회 열기에 알맞다고.
오름 하나를 집어 삼켰다는 마(魔)의 화신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