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스승의 날, 학교는 휴교했고
제주도내 16개 사립중고등학교 선생님들끼리 유대를 공고히 하고자
체육대회를 열어 몸을 부비며 땀을 흘렸다.
이제는 백발이 제법 보기 좋은 반가운 얼굴들….
30여 년간 교단을 지켜온 동료 선생님들을
오랜만에 만나 그 동안 쌓아두었던 추억담을 나누었다.
우리 학교 선생님들은 남녀 윷놀이와 장기에 금메달, 바둑에 은메달을 따서
빛나는 축구 4강 동메달을 추가해 종합우승을 하였다.
지난 일요일 돌오름에 갔었다.
서영아리 숲길, 나인브릿지 골프장과 맞닿는 숲길로 들어가
가면서 2시간여, 오면서 2시간여, 숲에서 보낸 1시간까지
무려 대여섯 시간을 신록(新綠)과 녹음(綠陰)을 즐겼다.
참가한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 선생님은
천국에 온 기분이라고 했다.
눈을 씻어주는 푸른 색소의 나무들
허파를 청소해주는 맑은 공기, 그리고 정상에서 맞은 탁 트인 조망까지가.
♣ 녹음 - 오세영
먼들에서부터
차츰 연녹색 파도가 일기 시작하더니
갑자기 밀어닥친 해일,
산등성이를 넘어서
우뚝 버티고 선 능선의 절벽까지
단번에 후려갈긴다.
와르르
난파된 목선의 마스트마냥
고목 한 그루
간신히 비탈에 걸려 있는데
어느새 차올랐을까,
온 산 벙벙히 출렁대는
물.
♣ 신록 - 이의웅
너의 연둣빛 가슴이고 싶다
너무 싱그러워
연둣빛 바람 앞에 서면
폐선 같은 세월에도 갯냄새가 날까
욕망의 늪에 빠진 긴 뿌리
출렁이다가
멈칫거리다가
자국마다 입은 생체기 퍼런 가슴
연둣빛 바람에 씻겨지는
푸른 영혼이고 싶다
무던히 쏟아지는 햇살 아래
하늘거리는 나무 끝가지 위
버리고난 가벼운 몸짓으로
푸른 향기 머금고 살아가는
내 사랑이고 싶다
싱그러운 너의 잎 새 같이
♣ 신록 - 문정희
내 힘으로 여기까지 왔구나.
솔개처럼 푸드득 날고만 싶은
눈부신 신록, 예기치 못한 이 모습에
나는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지난겨울 깊이 박힌 얼음
위태로운 그리움의 싹이 돋아
울고만 싶던 봄날도 지나
살아 있는 목숨에
이렇듯 푸른 노래가 실릴 줄이야.
좁은 어깨를 맞대고 선 간판들
수수께끼처럼 꿰어 다니는
물고기 같은 차들도
따스한 피 돌아 눈물겨워 한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참고 기다린 것밖엔
나는 한 일이 없다.
아니, 지난 가을 갚잎 되어
스스로 떠난 것밖엔 없다.
떠나는 일 기다리는 일도
힘이 되는가.
박하 향내 온통 풍기며
세상에 눈부신 신록이 왔다.
♣ 녹음 - 오세영
뺨과
입술을
스스럼없이 부벼대는 저
물오른 나무들의
무성한 잎새들을 보아라.
여름산은
관능으로 달아오른 여인의
들뜬 육신이다.
허리를 감돌아
허벅지로 내리는 계곡의 물,
혹포다.
쾌락의 절정에서 터져 나오는
탄성,
누가 녹음을 서늘하다고 했던가,
타오르는 물,
녹음은 촉각으로 말하는
언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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