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창문과 지척(咫尺)의 거리에 있는 집 앞 근린공원에
때죽나무 꽃이 핀 것은 약 2주전이었다.
무엇이 바쁜지 옆에 두고도 낮에 시간이 안 나다 보니
먼저 핀 나무는 꽃잎을 다 떨구어 버렸다.
오늘 오후 6시경에 퇴근하다 햇빛이 조금 남아 있길래 들러보니
아주 빽빽하게 핀 나무 하나만 꽃이 남아있다.
보통 나무들은 종족 보존의 본능이 있어
영양상태가 부족하거나 좀 마르다 싶으면 이렇게 많이 핀다.
때죽나무는 때죽나무과에 속하는 낙엽교목으로
키가 10m까지 자라지만 좀 이상하다 싶으면 줄기 밑동에서 많은 가지가 나와
무리 지어 자람으로써 4∼5m 정도 되는 관목처럼 보이기도 한다.
꽃은 초롱처럼 생겼으며 흰색이고 잎겨드랑이에서 총상꽃차례를 이루어 핀다.
꽃부리는 5갈래로 깊게 갈라지며 수술은 10개이고
수술대의 아래쪽에는 흰색 털이 있으며. 열매는 9월에 녹백색의 삭과(果)로 익는다.
그늘이나 반 그늘진 곳에서 자라며 추위에도 잘 견디며
독이 있어 열매로 구더기를 방제하기도 하며, 꿀에도 약간 독이 있다.
♧ 때죽나무꽃 - 이광석
온갖 봄꽃 다 진 자리에
밥풀처럼 주렁주렁 매달린
때죽나무꽃
외할머니는 저 희디흰 꽃잎으로
하이얀 쌀밥을 지어 내셨다
새들이 휘파람으로 불러모은
5월의 푸른 들판에
거짓말처럼 내린
설화(雪花)
외할머니 옥양목 치맛자락
때죽나무 가지마다
눈부시다
♧ 때죽나무 꽃 - 남유정(南宥汀)
하나 둘 사라져간 것들
모두 한 자리에 모여
발돋움하며
별이 돋는 밤
가지런히 모은 발끝을 내려다보며
때죽나무 하얀 꽃은 피어
가는 봄날이 마침내 저승길처럼 밝다
내 어린 날 가슴 졸이며 지나던
그늘진 상여 자리의
물소리에도 때죽나무 꽃은
저토록 순하게 희어
♧ 때죽나무 - 구순희
한 나무의 중심을 벗어난 이파리는
어긋난 이파리의 중심에 닿지 못한다
섭섭함이 쌓여 품은 독 등뒤에 숨기고
벼랑에 선, 시퍼렇게 벼린 칼 한 자루
둥글고 파란 시절 한가운데를 작파한다
신뢰의 낯익은 겨드랑이에 흐르는 시간
무성한 한 때, 절정을 향해 넋 놓았다
꽃 지고 열매 맺으면 눈물 한 방울에도
남빛 물감 드는 추억의 고개 넘어가던
상심이 익어 터진 껍데기를 보아라
꽁꽁 싸맨 독 비로소 몸 푸는 때가 왔다
물고기 자유로운 냇물에 독을 뿌린다
사철 함께 했던 새에게 일용할 씨를 준다
잎 다 떨군 나무는 쪼개고 다듬어져
사람의 집으로 가서 붙박힌다
독 안에 든 열매는 목걸이가 되는……
한 몸에서 떨어져 나온 일생이 잘 얽힌다
애증도 섭섭함의 중심도 한 시절 다 흘러갔다.
♧ 때죽나무꽃 -- 안재동
봄이 한창 무르익어 갈 즈음
때죽나무에 활짝 핀 무수한 하이얀 꽃들이
그 순백의 꽃들이 하나같이
땅바닥만 바라보며 웃고 있다
따사로운 햇살을 한 점이라도 더 받으려는 양
어쩌면 세상에서 제멋만이 최고인 양
그도 아니면
푸른 하늘에 앞다투어 얼싸 안기려는 양
가지가지 색깔과 양태로 요란하게 분단장한
세상의 여느 꽃들과는 딴판이다
때죽나무꽃에 그 연유를 물었더니
단 한 순간도 땅에서 시선을 떼지 않으려
애쓰면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가로등에 물어보라고만 한다
때죽나무꽃의 주문을 헤아리려
땅거미가 온 거리를 삼킨 뒤의 저녁 무렵
가로등에 바짝 다가섰으나
고개를 쳐들고 바라만 보고 섰다가 조용히
돌아서고 말았다
그렇게, 사람은 가로등을 만들지만
고장 나기 전까진 그 존재를 까맣게
잊고 산다
어쩌면 때죽나무꽃과 가로등의 심정으로
지금 나를 바라보는 존재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가끔
땅을 바라보며 걷는 것이 즐거울 때 있다
세상 모든 꽃들이 하늘만 바라보는데
때죽나무꽃이 아니라면
어느 꽃이 맨땅에 눈길 한번 줄 것인가
제 얼굴의 아름다움도
땅에 의지하고 있는 제 뿌리 때문임을
꽃들은 알기나 할까?
땅은 때죽나무꽃더러 이른다
세상 그 어느 꽃보다 수더분한 이름이여
그 어느 꽃도 비할 수 없는 참빛의 얼굴이여
갈수기의 단비처럼 고마운 존재여
순박의 사랑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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