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옥계곡의 도시 노보리베츠로 온 것을 환영하는 도깨비 캐릭터
* 지옥계곡에서 만난 온천
♧ 지옥계곡에서 만난 온천
우리는 생각보다 일찍 도착했기 때문에 내일 아침으로 예정되어 있는 지옥계곡(地獄溪谷)을 보기로 했다. 차에서 먼저 내린 일행은 그냥 계곡 입구로 갔고, 뒤에 내린 일행을 데리고 오른쪽 작은 길로 오유누마 전망대에 올랐다. 전망대라 해봐야 골짜기를 내다볼 수 있는 수준이지만 매캐한 유황 냄새를 맡으며, 연기가 피어오르는 모습을 보려니까 왜 옛날 사람들이 지옥을 이런 곳으로 생각했는지 감이 잡힌다.
흔히 지옥곡(地獄谷)이라 불리는 이곳은 약 1만 년에 분출하기 시작한 활화산의 흔적이라고 한다. 산골짜기를 따라 약 300여개나 되는 용출구에서 펄펄 끓어오르는 유황천과 골짜기를 가득 메운 매캐한 유황 냄새, 지하에서 뿜어 나오는 여러 가지 광물질과 유황성분이 쌓인 기괴한 모습의 골짜기, 식물이 자라지 못하는 환경, 어둑한 날씨의 음산한 분위기가 바로 지옥의 분위기와 흡사하다는 게 아닐까?
입구 조금 지난 곳에 조금 작은 약사여래를 모신 곳이 있어 들여다보고 나서 목책을 따라 들어가니, 펄펄 끓은 온천이 솟아나고 있다. 주위가 수증기로 가득 차서 그 모습을 찍기 힘들였으나 한참동안 지켜보다가 자리를 떴다. 시간이 없어 산책로 너머에 있는 다이쇼 지옥(大正地獄)과 천연족탕(天然足湯), 곰 목장, 도깨비 부자상 같은 것은 못 봤지만 돌아오는 길 석양에 비친 풍경은 아비규환의 지옥에서 나와 천당을 향하는 것처럼 마음이 가벼워진다.
* 지옥계곡 입구
* 지옥계곡 모습
* 노천온천에서의 기념 촬영
♧ 온천백화점 노보리베츠
노보리베츠는 ‘온천백화점’이라 불릴 만큼 유명하다. 이는 다양한 성분의 온천이 솟기 때문이라 한다. 지고쿠다니와 오오유누마 등의 원천(源泉)에서는 유황천, 심역천, 명반천, 망초천, 석고천, 논반천, 산성천, 철천 등 11가지의 온천수가 솟는데, 이런 경우는 세계적으로 드물단다. 하루에 45∼90도의 온천수 약 1만t이 솟아오르면, 그대로 계곡으로 흘려보내기도 하고, 관을 통해 온천장으로 보내기도 한다.
오늘밤 역시 온천욕이 예정되어 있어 일찍 저녁 식사를 하기로 하고, 방 배정을 마치고 호텔 뷔페식당으로 모였다. 게요리가 곁들여지긴 했지만 첫날 저녁 같은 경우가 아니고, 진열되어 있는 것을 마음대로 가져다 먹는 것이다. 식권을 나눠주면서 생맥주나 사케 한잔씩 바꿔 먹을 수 있는 티켓을 같이 줬기 때문에 술 안 마시는 사람들이 그걸 많이 모아줘서 따로 술 마시러 나가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일행 중 유황에 약한 사람이 있어 온천을 오래 하지 못하고 바람 부는 쪽으로 나와 맑은 공기를 쐬고 들어가도록 했다. 온천욕을 끝내고 방에 들어앉았는데, 아무래도 마지막 밤이 그냥 지나가는 것이 아쉬웠는지, 출국하며 가져온 반찬이나 주류를 갖고 모이라는 연락이 와서 여행사 사장 방에 베이스캠프를 차리고, 컵라면에 소주와 막걸리를 맛있게 마시며 마지막 밤을 보냈다.
* 우리가 묵었던 아정(미야비테이)
* 호텔 맞은 편 골목의 보살상
■ 2011년 2월 21일 월요일. 맑음
♧ 북해도의 아이누인
* 아이누민속촌을 지키는 꼬딴꼬꾸르상
* 전형적인 아이누인의 모습
아침에 시라오이로 이동하면서 아이누족에 대해 가이드의 설명이 있었다. 아이누인들은 옛날부터 일본 전역에 퍼져 살았으나 일본인들에 의해 수세기에 걸쳐 점차 북부로 밀려나게 되었다. 1923년 관동대지진 이후 집과 일터를 잃은 주민들을 북해도로 이주시키면서 이들과 마찰이 심하게 되자, 문화말살정책으로 일본어를 쓰게 하고 학교를 보내어 동화시켜버려, 현재 홋카이도의 약 2만 4천 명 정도가 아이누인이라고 여겨지고 있으나, 이들 중 순수혈통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들은 드물며, 특히 언어나 종교를 고수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는 실정이라 한다.
요즘에는 대부분 신체적으로 일본인들과 별 차이가 없이 되어버렸는데, 전통적인 아이누인들은 눈이 동그랗고 키가 작으며 살갗은 갈색이고 몽골인들에 비해서 몸과 얼굴에 털이 많다. 남자들은 턱수염을 기르고 여자들은 콧수염과 유사한 문신을 입언저리에 새겼다. 흔히 기하학적인 무늬를 새겨 넣은 나무껍질로 만든 옷이나 가죽으로 만든 늘어진 옷을 입고 다니며, 사냥을 하고 연어 같은 물고기를 잡거나 덫을 놓아 짐승을 잡는 생활을 하다가 이주해온 일본인들과 같이 정착해서 농사를 짓게 되었다.
아이누어는 일본 국회 내에서 공용어로 지정되어 있는데, 과거에 혼슈 북부, 홋카이도, 사할린 남부, 쿠릴 열도에서 사용되었으나, 현재의 사용 범위는 홋카이도로 한정되어 있다. 지금의 아이누어는 고전 아이누어와 현대 회화체 아이누어로 나눌 수 있으며, 고전 아이누어는 유카르를 비롯한 구전문학에서 쓰이는 언어로 회화체에 비해 보다 포합적이며 복잡한 문법 구조를 갖고 있는 특징이 있다.
* 민속촌 입구를 지키는 곰상
* 전시관에 있는 아이누인의 고기잡이 모습
♧ 시라오이 아이누족 민속촌
가이드의 설명을 듣는 사이 차는 어느덧 아이누민족박물관 앞 주차장에 도착하였다. 이곳 시라오이 포로토코탄은 홋카이도의 선주민인 아이누족이 살던 마을인 코탄을 포로토 호반에 복원한 박물관이라 한다. 정문안으로 들어서자 우뚝 서있는 높이 16m의 꼬딴꼬르꾸르상이 우리를 맞는다. 옆에 단체로 사진을 찍는 곳이 있어 모여 사진을 찍고 박물관으로 들어간다. 이곳은 아이누인의 문화재를 전시하고 학술적으로 조사, 연구하는 시설로 1984년에 개관하였다. 자료 5천 점, 북방소수민족 자료 약 2백점과 그림 자료 1백점, 도서 약 6천권을 소장 전시하고 있다.
부지 내에는 아이누인의 살았던 억새로 이은 전통가옥인 ‘치세’, 식료품 창고인 ‘푸’, 곰의 사육우리인 ‘헤페레셋’, 통나무배인 ‘치푸’ 등이 재현되어 있으며, 일본 내에서 가장 많은 아이누 유물들이 의식주 등 테마별로 상설 전시하고 있다. 체험관에서는 민족 악기인 묵크리의 연주와 중요무형민속문화재로 지정된 아이누의 고전무용을 감상할 수 있는데, 아이누족의 전통과 생활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국내외에서 연간 수십만 명 찾아온다고 했다.
전시장에서 나온 우리는 곰 우리에 갇힌 곰들에게 먹이를 사 먹여보기도 하고, 그들의 미련한 행동을 지켜보다가, 여러 곳에 복원해놓은 전통가옥 치세도 돌아보았다. 아쉬운 것은 북해도의 식물을 모아 심어놓은 곳이 있었는데, 때가 2월 하순이어서 그 실체를 볼 수 없는 점이 아쉬웠다. 소와신잔 전시관 그림에 나온 오랑캐꽃을 비롯하여 물봉선, 용담, 좀비비추, 큰앵초, 투구꽃, 현호색, 이삭여뀌 등 한라산의 식물과 비슷한 종들이 마른 채로 있다.
* 공연장 안을 장식하고 있는 연어 훈제
* 아이누인의 민속공연 모습
♧ 아이누 민속촌 민속공연 관람
공연을 시작한다는 연락이 와서 황급히 민속공연장으로 들어섰다. 오늘 모인 관객들은 대부분이 우리나라 사람들이어서 우리 가이드가 나서서 통역을 담당했다. 자신이 아이누 후예라는 40대로 보이는 한 남자가 나서서 반은 일본어로 또 우리말을 섞어가며 아주 익살스럽게 진행하는 모습이 얼마나 우리나라 관광객이 많이 드나들었는지 짐작이 갔다. 과거 일본 대다수 관광객이 우리 제주도에 올 적만 해도 일본인들이 우월감이 드러나 보였는데, 이제는 우리나라 사람 없이는 일본 관광업계가 휘청거린다니 완전히 입장이 바뀐 셈이다.
천정을 둘러가며 연어 훈제를 걸어놓고 사회자가 농담을 던진다. “이것 어디서 잡아온 것인지 아세요?” ‘강이다, 바다다.’라는 답을 듣고는 능청스럽게 대답한다. “시장에서 사왔다.”고…. 이곳에서는 아이누 옛춤과 아이누 민속악기인 뭇쿠리, 앉아 부르는 우포뽀, 칼춤인 엠시림세, 자장가인 이훈케, 학춤인 사로룬치카프림세, 등 홋카이도의 넒은 자연을 상상한 노래나 춤을 볼 수 있다. 시라오이 지방에서 전승된 옛무용은 1984년 중요무형민속문화재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10대인 듯 보이는 소녀가 웃지도 않고 차분히 사회를 보면서 공연이 이어진다. 어디서나 거의 그렇지만 마지막 순서는 관객과의 어울림이다. 돌아가면서 춤을 추는 내용인데, 희망자는 나오란다. 어제 에도시대 유녀 극에서 히트를 친 다음이어서 부담스러운지 아무도 나서지 않는다. 그래도 억지로 우리 일행 중 한 아줌마를 뽑아 올려 춤사위를 따라 하도록 했다. 그렇게 화기애애한 가운데 민속 공연이 끝났는데, 우리와 엇비슷해 하나도 낯설어 보이지 않았던 것은 무슨 까닭일까?
* 아이누민속촌에 재현해놓은 전통가옥인 치세
* 전시중인 아이누인의 전통의상
♧ 면세점의 기념품 구입
이곳 아이누족의 기념품점에서는 주로 그들이 사용했던 의류나 도구, 또는 식료품을 팔고 있었다. 그중에는 모피를 비롯한 아이누족 의상이 주류를 이루는 가운데, 연어 훈제, 특이한 향이 나는 나무로 깎아 만든 여러 가지 물품 등 이곳의 특색을 살리려 노력했다. 요즘 외국에 나갈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나가면 쇼핑점에 들르는 것은 공식화되어 있다. 사실 그곳에서 여행사나 가이드의 개인적인 이득을 노린다는 비판이 없는 것은 아니나 한두 차례 들르는 것은 관광객의 편이를 고려한 측면도 없지 않다.
모처럼 외국에 나간다고 하여 부모나 자식, 또는 직장 동료나 상사, 친지들에게서 촌지를 받았든지, 아니면 일을 대신 맡기고 온 경우 간단한 기념품으로 보답을 하는 것은 예의다. 누구나 그런 건 아니지만 은근히 기대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사는 사람도 충동구매를 해서는 안 되겠고, 주머니 사정을 고려해서 꼭 필요하고 기념이 될 만한 것을 사야 함은 물론이고, 사지 않을 사람은 눈요기를 하다가 쉬면서 차나 한 잔 얻어먹으면 고만이니까….
오다가 들른 면세점에서 사는 것은 우리보다 기술이 뛰어난 물품이거나 싼 것,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구하기 힘든 것 위주였다. 우선 보온이 잘된다고 보온병을 구입하는 사람도 있고, 세라믹으로 된 잘 들고 간편한 칼과 도마, 기능성 화장품류, 우리나라의 야보다 더 잘 듣고 싸다는 의약품류, 간편한 손톱깎이 등이다. 한 때 문구류와 전자제품이 유행한 적이 있으나 이제는 우리 제품도 뛰어나서 사는 사람이 적다.
* 지옥계곡
* 젊은 시절의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 구 북해도청사의 탄광 유물들
♧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우리는 3박4일의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여정을 마치고, 신치토세 공항을 통하여 다시 인천공항으로 가는 진에어 비행기에 올랐다. 끝나고 보면 여행은 아쉬움도 많고 미련이 남는 것. 돌아오면서 차분히 일정을 돌아보기도 하고, 즐거웠던 순간을 얘기하다 지치면 잠을 청하며 3시간 15분을 보냈다. 차창을 스쳤던 그 많은 눈과 한결같이 작은 컨테이너 같은 집들…. 전혀 새롭게 보는 풍경과 사물들….
홋카이도는 일본의 최북단(북위 43도)에 위치한 섬으로 우리나라보다 더 북쪽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여름은 짧고 겨울은 길다. 특히 삿포로를 비롯한 내륙지방은 6m가 넘는 엄청난 적설량을 보인다. 때문에 개발은 늦어졌지만 눈을 이용한 축제와 전 지역에 널려 있는 수많은 산과 호수, 활화산, 온천으로 대부분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고, 천혜의 휴양지로 각광받고 있다. 더욱이 교통 통신망이 발달된 요즘은 추위나 눈을 즐길 수 있는 매력이 넘쳐나는 곳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여행은 발상의 전환으로 단점을 어떻게 장점으로 바꿀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로 기억하고 싶다.
아버님께서 젊은 시절 고생했던 탄광의 막장은 가보지 못했지만, 구 북해도청사에 전시해 놓은 아버님이 사용했을지 모를 당시의 유물을 통해서 충분히 교감을 나누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특히 제주도의 오름을 좋아하며 오름에 대해 가르치고 있는 사람으로서 화산의 여러 가지 모습과 최근에 만들어진 화산체를 통해 그 형성 과정을 확인할 수 있어 앞으로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또 힘없는 아이누 족이 스러지는 것 또한 슬픈 일이었고, 아이누어와 문화가 사라질 것을 염려하면서 같은 운명의 제주어와 문화의 보전에 힘써야 하겠다는 다짐을 해본다.(완)
* 용감한 아이누인의 그림 앞에 선 필자
* 아이누민속촌 꼬꾸르구르상 앞에서 이번 여행자 일행의 기념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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