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는 곳마다 우릴 반겨줬던 노란만병초
△ 절벽에서 내려 한허계곡으로
천천히 절벽지대를 통과하며 끝없이 펼쳐진 천지를 조망하고 눈을 씻는다. 어디서 바라봐도 천지풍경은 압권이지만 이제는 그 풍경을 뒤로 하고 한참 아래로 내려가 그 중 제일 나지막한 곳에서 백운봉 능선으로 올라서야 한다. 아래로 넓게 펼쳐진 초원이 나오고 여기저기 노랑만병초가 꽃무더기를 이룬다. 잠시 쉬는 사이 접사렌즈로 갈아 끼고 그토록 원하던 만병초를 찍는다. 꽃모습은 진달래인데, 그 색은 달맞이꽃을 닮았다.
이곳 해발고도 2,000m 이상은 키가 작은 관목류와 초본들이 자라는 고산대가 되는데, 산악툰드라지대이다. 이곳에 자라는 야생화 중 지금 핀 것들은 개감채, 두메자운, 담자리꽃나무, 좀참꽃, 바위돌꽃, 노란만병초 등이다. 이 지대는 특히 꽃이 피고 씨가 만들어지는 기간이 짧아서 6~8월에 꽃들이 한꺼번에 피어서 아름다운 꽃밭을 이룬다. 이제야 눈이 녹은 곳에는 햇볕을 받지 못한 채 노랗게 솟아오른 박새순이 보인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직 꽃이 덜 핀 화살곰취, 구름꽃다지, 돌꽃, 두메냉이, 구름국화, 개머위, 콩버들, 들쭉 등이 보인다. 지난번에 왔을 때는 8월초여서 박새는 남아 있는 것이 거의 없고, 산미나리아재비, 민박쥐나물, 당잔대, 금매화, 들쭉나무, 꽃쥐손이풀, 꽃고비, 바위구절초, 두메분취, 그늘용담, 비로용담, 호범의꼬리, 물매화 자주꽃방망이, 구름송이풀 등이 보였었다. 이제 와서 보면, 수많은 특산식물들이 짧은 석 달 동안 차이를 보이며 산을 장식하고 있는 셈이다.
* 백운봉에서 한허계곡으로 흘러내리는 물
* 능선으로 오르다 본 백운봉(왼쪽)과 우리가 지나왔던 청석봉(오른쪽)
△ 백운봉 능선을 오르며
백운봉은 중국지경에 위치한 봉우리 중 가장 높은 2,691m로 천지의 서북쪽에 위치한다. 앞으로 우리가 갈 북쪽의 녹명봉과는 1,260여m 떨어져 있고 남으로는 옥주봉과 면해 있다. 둥그스럼하게 생겼는데, 산세가 험준하고 가파르다. 그러기 때문에 맑은 날씨에 많은 봉우리들이 그 모습을 드러낼 때에도 이 백운봉만은 종일토록 흰구름이 벗겨지지 않아 그 이름이 백운봉이라 한 것으로 보인다. 정상 부위는 회백색, 담황색, 유백색의 부석들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중국지경에서 제일 높은 봉우리는 천문봉 너머 백암봉으로 해발 2,741m이다.
한허계곡으로 흐르는 물줄기는 두 개인데, 하나는 백운봉에서 2단 폭포를 이루며 흘러내리는 것이고 하나는 백운봉 남쪽 기슭에 쌓여 있던 눈이 녹으면서 흘러내리는 물줄기다. 인천에서 온 등산객들 중 일부는 세수를 하고, 더러는 양말까지 벗고 발을 씻는다. 우리는 능선에서 이미 쉬었기 때문에 돌이 깔려 있는 길을 올라가야만 했다. 아침에 음식을 잘못 먹고 탈이 나 가이드와 같이 걷던 아줌마도 힘들어 했고, 평소에 운동량이 적은 여회원들이 발목에 무리가 가서 응급조치를 하며 오르지 않으면 안 되었다.
잘 아다시피 백두산의 중심부에는 천지가 있고, 그 주변에는 이중화산의 외륜에 해당하는 해발 2,500m 이상 되는 봉우리가 16개가 천지를 둘러싸는 형태다. 그중 북한 경내에 6개, 중국 경내에 7개, 경계에 3개가 위치한다. 제일 높은 것은 북한 경내에 있는 장군봉으로 2,749m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백두산이 2,744m로 기록되어 있는데, 해방 후 다시 측정한 결과 5m가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나 중국의 모든 지도나 책에는 모두 2,749m로 기록되어 있다. 우리나라 사전에도 어떤 곳에는 2,750m로 되어 있어, 공식적인 산의 높이가 들쑥날쑥 하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 백운봉 능선을 오르다 맞은편 언덕으로 바라보니
* 능선에서 다시 정상으로 오르는 현무암길
△ 백운산 정상에서 먹은 도시락
능선에 이르러서도 봉우리까지 돌길은 까마득하다. 이곳 백운봉의 돌들은 백두산 생성 제3기말에 이루어진 경사 현무암 고원에 속한다. 백두산은 그 암석의 구성과 지질구조에 따라 크게 5부문의 수직구조로 파악한다. 밑바닥을 이루는 선캄브리아기의 화강편마암류는 평안북도에서 함경북도에까지 걸쳐있는 육괴(陸塊)로 백두산의 지표에서는 극히 일부분의 침식산지를 빼고는 노출되어 있지 않다. 제3기에 들어서 지표로부터 60~70㎞ 깊이의 지하에서 상부 맨틀을 구성하는 암석 가운데 방사능원소들이 붕괴되면서 열점이 만들어졌고, 그 영향으로 당시의 지표암석인 화강편마암류에 수직방향의 쪼개진 틈이 이루어진 것이다.
아침에 가이드가 말하기를, “아침 일찍 출발하였기 때문에 중간에 점심을 먹고 싶더라도 참고 꼭 백운봉에 오른 후에 먹어라. 그 전에 먹고 백운봉을 오르려면 너무 힘들다.”라고 했는데, 이해가 갔다. 그래도 중간에 오이랑 토마토 같은 간식을 먹었기 때문에 견딜 수 있었다. 자갈길을 다 올라 능선에 다다랐을 때, 남서쪽으로 조금 기울어진 풀밭이 있어 먼저 도착한 사람들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이번 산행은 산이 산인만큼 예전과 달리 아무데서나 음주는 삼가야 하겠다고 엊저녁도 원정 산행 사상 처음으로 일찍 잤고, 정상에 가서 마실 것을 배낭에 지고서도 그냥 있었는데, 꺼내 마시려고 보니, 몇 사람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오름에서 막걸리를 즐겨 마시는 3명의 전사들은 테이핑과 간단한 응급조치를 배워 이번 산행에서 대단한 활동을 했다. 그들을 기다려 모두 무사히 도착했을 때, 잔을 나누며 자축했다.
* 백운봉 정상이 보이는 풀밭, 우리가 점심을 먹었던 곳
* 백운산에서 능선을 따라 내리는 길에서 본 천지
△ 녹명봉을 통해 내려가는 길
이제는 좀 길기는 하지만 대부분이 내려가는 길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쉬울 것이라고 했다. 눈밭을 건너 능선에 올라 길을 따라 내려가는데, 커다란 바위가 솟아 있다. 마모가 되지 않은 상태여서 험하게 보였는데, 가만히 보면 작은 바위가 번들거리는 것이 광물질이 많이 포함되어 있는 것 같다. 백두산 중국 쪽의 사면은 완만한 현무암고원인데, 이것은 제3기말에서 제4기초의 제2차 염기성 용암의 분출로 만들어진 녹회색의 현무암이다.
그보다 높은 곳 해발 2,500m까지는 급경사의 종 모양 화산을 나타낸다. 이는 우리 제주도의 형성과정 중 화산활동의 전성기인 50만년에서 30만년전 사이와 비슷한 제4기에 3회에 걸쳐 터진 잘 흐르지 않으며 점성이 큰 산성 용암이 분출하여 만들어진 조면암이기 때문이다. 그 위 해발 2,500m 이상의 정상 지표면은 회백색 부석으로 덮여 있는데, 이는 가스가 많고 폭발력이 큰, 화산에서의 분출 마지막 시기에 나타난 공중 분출물이 덮인 것이다.
부석(浮石)은 고온의 마그마가 지상에 분출됨에 따라서 이에 용해되어 있었던 휘발성분과 수증기 등의 가스가 증발되어 바위 부스러기에 구멍이 많이 생기게 된 것으로 가벼워서 물에 뜬다. 천지 주변의 부석은 백두산 화산활동의 최후시기를 나타내며, 그 형성과정과 시기를 알 수 있는 증거가 된다. 부석에 묻힌 탄화된 나무는 탄소 동위원소 연대측정 결과, 지금의 천지를 만든 화산대폭발은 1천년 전후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고려초기로 제주도의 비양도 폭발과 비슷한 시기이다. 조선왕조실록에는 1597년(선조30), 1668년(현종9), 1702년(숙종28), 세 차례의 분화가 기록되어 있다.
* 천지의 화구벽을 타고 굽이굽이 걷는 길
* 온산은 모두 노란만병초, 천지빛깔
△ 눈밭을 지나 꽃밭으로
비스듬히 뻗은 녹명봉에서 눈을 밟으며 지나 용문봉을 향해 내려 가다가 왼쪽으로 내려가니, 아주 희미한 교차로가 보인다. 동쪽방향으로 더 내려가 달문에서 터널을 지나 장백폭포로 내려가는 길과 왼쪽 길로 그냥 내려가는 코스다. 1박2일에 나왔던 달문에서 장백폭포로 내려가는 터널은 위험하다고 폐쇄되어 있어, 그곳으로 가지 못하고 바로 내려가는 코스를 택했다.
칼데라 호수인 천지(天池)에 내려가 물을 마셔보려던 꿈은 깨지고 말았다. 쑹화강(松花江), 두만강, 압록강의 발원지로 둘레가 14.4km에 이르며, 평균수심이 213.3m, 가장 깊은 곳은 무려 384m에 이른다는 천지(天池). 그 시리도록 찬 물을 벌컥벌컥 한껏 마셔 10년 묵은 체증(滯症)을 내려 보려던 꿈은 나중에 장백폭포로 흘러내린 물을 마시는 걸로 대신했다.
이제는 긴 내리막길을 내려가기만 하면 된다. 작은 철쭉 같은 분홍빛의 좀참꽃과 암매(巖梅)와 같은 샛노란 담자리꽃이 대세다. 물매화를 닮은 개감채와 달맞이꽃을 닮은 노랑만병초는 상대적으로 드물어지고, 가끔 두메자운이 나타난다. 능선이 끝나고 계곡에 들어가기 전에 사스레나무가 꽃대를 늘어뜨린 것을 보았고, 거기서 계곡까지는 경사가 심하고 먼 대신, 백두산의 꽃은 다 모였다. 아래에서는 그린 버스가 끊어진다고 빨리 내려오라는데, 꽃은 너무 많고, 모기는 떼로 달려들어 버스가 세워진 정류장까지 번민이 많았다.
* 녹명봉에서 내려오다 본 천지
* 용문봉과 철벽봉 사이 장백폭포 쪽으로 터진 화구벽이 있는 곳
△ 지난번엔 장백폭포 들렀는데
우리가 처음 기획할 때는 코스가 그렇게 오래 걸리는 줄은 모르고 장백폭포에 들를 생각을 했었다. 장백폭포를 우리는 비룡폭포(飛龍瀑布)라 하는데, 천지에서 달문을 통해 흘러나온 물이 천문봉과 용문봉 사이의 골짜기를 따라 1km 정도 흘러내려 가다가 낙차 68m의 폭포를 이루며, 우리나라에서는 그 모습이 마치 ‘용이 하늘로 나는 모습과 같다.’ 하여 비룡폭포라 부른다. 중국에서는 창바이산(長白山)에서 흘러나오는 폭포라 하여 으례 ‘창바이푸부(長白瀑布)’라고 하겠지만서도.
동북지방에서 가장 큰 규모인 이 폭포는 수량이 매초 2.15톤에 달하며 눈이 녹는 시기에 가장 수량이 풍부하다고 한다. 그 물은 이도백하(二道白河)를 통하여 송화강으로 유입된다. 이름이 백하(白河)라서 그런지 장백폭포에서 바라보면 물 흐름이 빠르고 돌이 많아 그런지 물줄기가 유난히 희어 보인다. 아무려면 어쩌랴! 다리를 통해 걸어 나와 차가 있는 곳으로 가다 말고 배낭을 진 채로 다리 아래로 내려가 물을 마셔본다. 20년 전에는 바로 장백폭포를 바라보며 실컷 마시고 생수병에 길어 이튿날 연변을 돌며 하루 종일 마셨는데….
그나저나 이번엔 시간에 쫓겨 백두산온천 한 번 못해보고 갈 판이다. 20년전 장백폭포에서 내려올 때는 몸을 데며 20분간 온천욕을 하고, 온천물에 삶은 계란을 사먹었었다. 그리고 노천온천 물웅덩이에 손을 넣어보다가 필름도 떨어뜨리고. 여기 온천은 용의 무리가 물을 뿜어내는 것 같다 하여 이름이 취룡온천(聚龍溫泉)이다. 또, 물을 건너기 전에 ‘소천지로 가는 곳’이란 팻말이 있는데, 그곳에서 얼마 안 떨어진 곳에 있다. 소천지(小天地)는 장백호(長白湖), 은환호(銀環湖)라고도 불리며, 울창한 숲에 둘러싸여 있는 고요하고 온화한 호수다.
* 황홀했던 담자리꽃나무
* 내려오는 길을 붉게 물들인 좀참꽃
△ 그린 버스를 타고 가 북파산문을 나서면서
운행시간 20분 늦었다고 자꾸 가버리려는 차를 세워놓고, 일행 중 뒤쳐진 아줌마를 기다렸다. 성한 사람도 허덕이는데, 아침에 구토와 설사로 속을 비우고 죽기 살기로 내려온 아줌마에게, 늦었다고 채근 당하며 내려온 마지막 코스는 정말 죽을 맛이었을 것이다. 차에 오르는 순간 드디어 참았던 울음이 터졌다. 마침 옆자리에 앉았기 때문에 쓰러지지 않게 부축하며 “정말 고생이 많았다고, 당신은 정말 장한 일을 해냈다고, 앞으로 어떠한 일도 해낼 수 있을 거라고….” 하며 진정시켰다.
더 나이 들기 전에, 다리가 성했을 때 다녀와야 한다고, 작년 지리산 종주, 금년 이 백두산 종주에 나선 나는, 더 관심을 기울여주지 못한 이 아줌마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였다. 그린 버스를 타고 40여분이 흐르는 사이에는 잎갈나무, 가문비나무, 자작나무와 사스레나무 숲이고, 길옆에 간간이 심어놓은 마가목은 지금 꽃등을 밝히며 존재를 과시하고, 길섶엔 노란 하늘매발톱 꽃이 한창이다.
북파산문에 도착해 차에서 내려보니, 20년 전에 만났던 것과 똑 같은 산문이 남아 있었다. 빨리 오라는 걸, 이제는 우리 차에 탈 것이니까 괜찮다고 뻐기며 마지막 단체 사진을 찍었다. 전에는 이곳에서 잤는데, 연변에 가서 자게 되어 기(氣)를 더 못 받는 것이 섭섭했다. 돌아오는 차에서 다시 한 번 여기 올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다른 갈 곳도 많기 때문에 못 올 것 같다. 만약 백두산이 북쪽으로 자유롭게 길이 열려 삼지연을 통해 동파산문으로 올 기회가 주어진다면 몰라도…. 그 어려운 길, 큰 사고 없이 내려와 준 식구들, 몸을 아끼지 않고 봉사하며 기분 좋은 등산을 할 수 있게 해준 일행들에게 감사 드린다. (끝)
* 녹다만 눈 속으로 흐르는 옥벽폭포.
*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흐르는 장백폭포 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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