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전날, 일요일임에도 불구하고 오름에 못 가서
무료하게 있다 보니까, 오랫동안 가지 못한 한라생태숲이
궁금해 햇볕이 잠깐 비치길래 차를 몰고 산천단까지 갔는데,
안개가 몰려오기 시작한다. 이왕 내친걸음인데, 조금 걷기라도
하려고 차를 세우고 비가 막 내리칠 것 같은 생태 숲에서
두어 시간을 보냈다. 햇빛이 한두 시간 비쳐야 활짝 피는
누린내풀은 겨울 몇 송이 찍고 한 바퀴 도는데, 이 참회나무
열매가 벌어진 것이 보였다. 잎도 붉게 물들고 역광으로 찍어야
예쁜데, 그런대로 볼만하여 내보낸다.
참회나무는 노박덩굴과의 낙엽 활엽 관목 또는 소교목으로
잎은 마주나고 달걀 모양인데 가장자리에 톱니가 있다.
5~6월에 자주색 또는 흰색을 띤 녹색 꽃이 취산꽃차례로 피고
열매는 삭과로 10월에 익는다. 정원수로도 심으며 줄기는 장기짝을
만들고, 나무껍질은 새끼의 대용으로 쓴다. 산 중턱이나 골짜기에서
자라는데, 우리나라, 일본, 중국 북부 등지에 분포한다.
♧ 추석 - 엄원용
꼭 제사를 지내야만 추석이더냐
퍼내도 퍼내도 부족함이 없는 저 밝은 달을 그릇마다 담아
형님 아우님 만나는 기쁨을 상마다 푸짐하게 차려놓고,
아들 손자 며느리 한 자리에 모여앉아
조상님 고마운 생각에, 대신 살아계신 부모님 정성껏 모시고
올해도 잘 익은 과일들처럼 자식들
무럭무럭 자라게 하시고, 향기 품어내게 하시고
우리 집 잘되고, 이웃이 잘되고, 이 나라 잘되라고 빌고 빌면,
그제야 오늘이 진정 추석날이지.
♧ 추석 명절에는 - 유상철
추석 명절에는 좀
뒤로 느긋이 물러앉아 보자
지나가는 바람에 손짓하고
앞서는 자동차를 웃음으로 보내주자
추석 명절에는 좀
눈을 길게 뜨고 둘러보자
조카놈들 키 큰 것도 보고
담 너머 과부댁과도 눈 한번 맞춰 보자
추석 명절에는 좀
얼큰하게 취해도 보자
주식으로 날린 돈은 잊어버리고
쥑일 놈도 살려주기로 마음먹자
그래서 추석 명절에는 좀
눈물을 쏟아 보자
텔레비전 전원을 뽑아내고
아버지 빛바랜 사진 앞에서 꺼억 꺽
울음 예배를 드리자.
♧ 추석맞이 산행 - 김길남
며칠 전에 흠뻑 내린
비 덕분에 흙길을 밟는
기분이 좋았다
길 양옆으로는
이름 모를 벌레들이 울고 있다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온다
바람 속에 들 꽃 향기가 들어 있었다
바람이 불어오는 쪽을 바라본다
밤은 고요하고
길에는 휘영청 밝은 달빛이
사금파리 조각처럼 하얗게 깔려있다
달은 낮인것 처럼 밝아서
희다 못해 푸른 달 빛이
온 누리에 가득하여
산을 오르는데 불편하지 않게
도움을 주고 있었다
♧ 추석 - 박인걸
어머니 안 계신 고향을
고향이라 하지마오.
어머니 향취도 사라진 집을
찾은들 무엇이리오.
맨발로 달려 나와
가슴으로 맞아주던
어머니 없는 뜰 안에
찬바람만 불 텐데
가슴 깊이 절어 든 추억이
아름다운 동화 같아도
어머니 그림자도 없으니
달이 떠도 그믐일 텐데
고향으로 가지 않겠소.
무덤으로 가려오.
어머니 좋아 하던
국화 한 송이 들고서.
♧ 아버지의 자본론 - 김명기
목침이나 가끔 마른 기침소릴 내는 구형 선풍기의 바람이
오히려 장남보다 위안인 아버지의 등골을 본다.
이른 봄 개두릅나무로부터 시작하여
이따금 산림감시원의 눈을 피해
주목나무를 퍼오기도 하고
여름 내내 온 집안을 가득 채우는
산 도라지의 향은
장날표 만 원짜리 등산화 다 헤진 값
바람이 바뀌는 중추절 전후로 송이 산막의 밤샘이 철거된 후에야
비로써 산술이 되는 무디디 무딘 아버지의 자본론
작물에 더는 희망이 없다는 건 이제 겨우 텃밭에서 엄마의
심심풀이 노동이 된 토마토나 가지 그리고 노랗게 꽃이 필 때까지 자란
늙은 상추가 내게 알려준 사실이다.
육법전서, 마르크스 자본론의 겉표지조차 본 적 없는 아버지 백태 낀 눈은
차라리 그래서 구체적인지도 모른다.
예순하고도 일곱 해를 등골이 등꼴이 되도록 조직도 없이 오로지 혼자 살아낸
아버지의 자본론은 스스로 자본가이기도 노동자이기도한 역사적 비판을 굳이
찾을 필요 없는 이를테면 스스로 수요와 공급을 조정해낸 독자적 시장성
하필이면 종일 비가 오는 날 돌아누운 아버지의 서글픈 등골을 보았을까?
뼈 빠지게 뼈 빠지게 되물어오는 나의 시린 눈으로 곤히 잠든 아버지의
자본론을 가슴 아프게 읽어야하는 날
'디카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꽃며느리밥풀, 여름을 넘기며 (0) | 2011.09.17 |
---|---|
뚱딴지 꽃, 가을바람에 (0) | 2011.09.14 |
백로에 보내는 흰진범 (0) | 2011.09.08 |
송장풀은 억울한가 (0) | 2011.09.06 |
코스모스를 노래함 (0) | 2011.09.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