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엔 이름 때문에 웃고 우는 사람이 적지 않다.
들꽃도 그 이름이 싫지만 억울한 소리 한 마디 못하고
끙끙 앓은 소리를 바람결에 들은 것도 같다.
시어미 시샘에 휴지 대용이 돼버린 며느리밑씻개나
진짜 같아 보이긴 하지만 짓궂은 장난의 희생물 같은
개불알풀, 미치광이풀이나 개도둑놈의갈고리도 썩 점잖치는 못하다.
언제나 보면서 이름이 못 마땅해보이는 송장풀도 한 가지일 것이다.
송장풀은 꿀풀과의 여러해살이풀로 높이는 1m 정도이며,
잎은 마주나고 달걀 모양 또는 피침 모양이다. 8월에
연한 붉은색 꽃부리가 입술 모양인 꽃이 윗부분의 잎겨
드랑이에 피고 열매는 수과(瘦果)를 맺는다. 전체를 약
용하고 산이나 들에 나는데, 동아시아에 분포한다.
♧ 들꽃사랑 - 공석진
이름 없는 것들이
세상에 있을까마는
소홀하여 불러주지 못한
미안함이 더욱 야속하다
기억되지 못한다는 것
동화 속 예쁜 공주가
한 순간 바람에 떠밀려
무참히 짓밟히는 자존심
추하다 모른 척 마라
투박하다 밀어내지마라
눈물이 강이되어
치열하게 살아왔을 뿐이다
애초에 간이역에 피는 꽃
소외된 외로움에
그리움마저 상실하였으나
그대 이름을 불러줌으로
먼 길 다시 돌아와
등 뒤에서 포옹하는 사랑은
끝이 보이지 않는
종착역으로 향한다
♧ 추억의 책장을 넘기며 - 김설하
모파상의 여자의 일생이며 펄벅의 대지 같은 닳도록 읽고 또 읽던 문학 전집이 세월 속에
졸고 있다. 모든 것이 늙고 병들고 잊혀가기 마련인데 꿋꿋이 거실 한쪽에 버티고 있는 한
나절, 사반세기를 훌쩍 넘기고도 십여 년의 나이를 더 먹은 유난히 손때 묻은 노트에 이끌
리듯 눈길이 꽂힌다. 좀체 손길이 닿지 않아 먼지가 쌓여 있는 건 두말할 필요가 없고 적벽
돌 빛깔의 촌발 날리는 양장본 겉표지는 늘 가시권에서 벗어나 있곤 했다. 월남전에 참전한
이력의 소유자인 오촌 당숙에게서 받은 만년필 때문인지 파이로트 잉크 때문인지, 사반세기
를 훌쩍 넘기고도 십여 년의 나이는 뺄셈의 세월 같다. 삽화까지 그려 넣은 수줍은 시절들을
넘길 때마다 문학 전집의 가슴 울리던 구절들, 뜻을 다 이해하지 못했던 난해한 명시들의 진
득한 냄새가 새삼 가슴에 파고든다. 오래 잊혔던 추억을 한 장씩 넘기며 등을 댄 책장 속으
로 깊숙이 침잠한다. 인생이란 사람들이 생각하듯 그렇게 행복하지도 또 불행하지도 않다는
여자의 일생 마지막 구절이 뇌리 속에 뒤척이며 인생이란! 행복하지도 불행하지도 라고.
♧ 9월의 느낌 - 최홍윤
철 지난 바닷가
파도의 음률 차갑고,
이별을 준비하던 마음도 쓸쓸하다.
고요한 호수에
반짝이는 물비늘, 물비늘에 잠수하고 마는
황혼녘에 물고기들,
단지 빈틈없는 나무숲이
느슨하게 볕을 들이고 파닥이는 작은 새에게
따가운 가을을 내준다.
고향언덕에
핏줄의 영혼이 깨어나면
5월에 흐드러지던 밤꽃이 붉은 밤알이 되고
토실한 대추알도 수줍어 할 거다.
9월에는 모두가 제자리를 찾는다
살가운 물소리로 기억을 더듬고
사랑방 옛 주인님 곤히 주무시는 산자락에는
천지사방 흩어진 손들이 모여 들고
길 떠나간 외기러기도
안부를 전해 오리라!
그리고는
아무도 없는 곳에서
파도의 운율로 가슴이 따끈,
따끈한 詩를 써봐야겠다.
♧ 가을이 오면 - 靑山 손병흥
점차 포근해진 햇살 홀로 서러워 살랑거리는 바람
높고 푸르른 하늘 가득히 한들거리는 코스모스 물결
향기로운 숨결 더욱 멀어지는 나목 싱그러운 이 계절
아직도 그 고운 미소 옛 노래 울려 퍼지는 시간 속
흘러가버린 추억이 되살아나는 저 하늘 구름 피어나
한껏 물든 가을의 정취에 물씬 취해 젖어버린 눈망울
세월이 흘러가도 문득 떠올라 다시금 슬퍼지는 가을날
단풍들고 낙엽 되어 떨어져가는 가을의 절정 옛 추억
부드럽고 싱그러운 햇살에 비쳐진 쓸쓸한 저 풍경처럼
따사로운 햇볕 알록달록 곱게 물들어가는 비단 빛 산야
가끔씩 떠올려보는 그 얼굴 미소 붉게 물들어가는 시절
쓸쓸함 고독조차도 빨간 능금 되어 영글어가는 작은 영혼
오랜 시간 지나가도록 잊지 못하는 상념어린 내 마음 발길
♧ 살다보면 - 오경옥
때로는 질풍노도에 넘어져 다치기도 하는 것
다친 생채기 바라보고 치유하는 법 알아가는 것
때로는 지름길이 눈앞에 보이지만
먼 길 돌아서 가야할 때도 있는 것
살다보면 삶과 사람 사이에서
무거운 짐 머리에 이고 지고
먼 곳까지 걸어가야 할 때가 있는 것
그 무게 같은 뻐근한 고개와 등
기대고 싶은,
마음 속 느티나무 한 그루 그리워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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