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디카 일기

이제야 올리는 방울꽃

김창집 2011. 10. 5. 01:26

 

제3회 제주특별자치도지사기 읍면동 대항

제주어 말하기 대회 준비를 위한 이사회에

참석을 해서 여러 가지 일을 처리하고 왔다.

일을 처리하면서 제주어의 위상과 도민의

관심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어떡하다가

이 지경까지 와버렸는지 한심스러울 따름이다.

편한 것만 찾고, 옳은 길이 아니라도

대중의 힘에 이끌려버리는 요즘의 세태를

누가 그르다고 할 것인가?

 

방울꽃은 쥐꼬리망초과의 여러해살이풀로

높이는 30~60cm이고 원줄기는 네모꼴이다.

잎은 마주나며 넓은 달걀 모양으로 끝이 뾰족하고

양면에 털이 있다. 9월에 연한 자주색 꽃이 피는데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시든다. 물가 그늘에서 자라는데,

제주도에 분포한다. 올리기엔 좀 늦었지만 아직도

꽃이 남아 있기에 그 동안 찍어둔 것을 올린다.

 

  

 

♧ 방울꽃 - 권오범

 

앞집 옥상에서 요염하게 던지는 장미꽃 추파

넋 놓고 받다보니

창밖 바짝 가로지른 유선방송 선에서

무엇이 자꾸 아른거려 집중을 이간질 한다

 

장미에게서 눈 초점 끌어당긴 순간

하, 고것들 봐라

물방울들이 뒤란 풍경 아롱다롱 눌러 담아

봄나들이 갈 줄이야

 

햇볕이 쨍쨍한데 어인 일일까,

목을 밖으로 빼 비틀어 본 하늘

거미인간 둘이서

외벽 타일 때 미는 중이다

 

창틀에 턱 올려놓고 날 세우고 보니

방울방울 만삭인 무지개

출산이 임박한 듯 죽자 사자 꼬리를 무는

저 위태롭기 짝이 없는 달음박질

 

새치기하다 몸 섞어 무거워지면

추락한다는 걸, 아는지

서로서로 질서 지켜

창틀 모퉁이 돌아 소풍가는 귀여운 것들

 

  

 

♧ 물방울 하나가 매달려있다 - 신지혜

 

무색의 둥그런 선 안에 갇힌

물의 무게를 나는 짐작할 수 없다 그러나

그렇게 작은 살 속에도 피가 흐르고 뼈가 있어

세상으로 닿는 길목, 씨 하나를 심는다

 

겹겹의 눈빛 사이로 만상이 스러지고

찬바람의 손바닥에 얻어맞아도 해체되지 않는

그 팽팽한 표면장력,

서릿발 치는 하늘 몇 장이 젖은 몸 안으로 들고

둥글게 부풀어 오른 정적이 잠시 숨이 멎는다

 

그 어느 날,

쩍쩍 입 마른 벌판의 살갗 속으로

지분지분 스며들면서 천지간

푸르러지는 여름 江,

마침내 실로폰 소리처럼 튕겨 오르는

경쾌한 웃음소리가

꼬깃꼬깃한 시간의 주름살을 팽팽히 다려놓는다

 

나도 그렇게 작은 물방울 하나로

기스락 끝에 매달려있다

투명한 씨방 속, 무수한 뿌리를 늘인다

 

둥그런 씨앗 하나가 시방 탱탱이 영글고 있다

 

  

 

♧ 방울새 소리 듣고 싶은 날 - 최진연

 

방울새 소리를 들으면

지병이 나을 것 같습니다.

찔레꽃 하얗게 핀 들녘 바람

폐부까지 녹색 물이 배어드는 숲 속

석간수 벌꺽벌꺽 한참 들이키면

괴어 썩는 내 가슴의 웅덩이도

말갛게 씻어질 듯합니다.

 

이 도시의 울타리 안에 갇혀서

참 오랫동안 보지 못한

꽁지 까딱거리며 포물선을 긋는

박새 콩새 할미새도 좀 보았으면.

풀밭에 누워 하얀 구름 카누

하늘을 가르며 가는 것을

풀 향기에 취해 바라보노라면

서늘한 골짝 소(沼)처럼 말갛게

지끈거리는 두통도 가라앉을 게고,

나는 한 마리 새가 된 춤꾼

하늘을 무대로 춤추겠습니다.

    

 

집 안에서 듣는 노래보다

집 안에서 부르는 노래보다

산과 들에서 새들이 부르는 노래

골짝 물과 바다가 부르는 노래를 듣고

저들과 함께 어울려 노래하고 싶습니다.

 

당신의 말씀을 가르치는 일에 있어서도

내가 때때로 갈망하는 것은

사람들을 산과 들, 바닷가로 데리시며

막히고 갇힘이 없는 자연 속에 베푸신

당신의 자유 그것입니다.

 

방울새 소리를 들으면

방울새 소리 나는 시를 쓸 듯합니다.

문명의 울안에 갇혀 사는 사람들에게

산과 들, 꽃과 바람

숲 속 새가 되고 물이 되는

하늘과 구름, 아이들이 뒹굴 풀밭이 있는

싱싱한 시를 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빗방울 화석 - 황동규

 

창녕 우포늪에 가서 만났지

뻘빛 번진 진회색 판에

점점점 찍혀있는 빗방울 화석

혹시 어느 저녁 외로운 공룡이 뻘에 퍼질러 앉아

홑뿌린 눈물 자국?

 

감춘 눈물 방울들이

채 굳지 않은 마음 만나면

흔적 남기지 않고 가기 어려우리.

길섶 쑥부쟁이 얼룩진 얼굴 몇 점

사라지지 않고 맴도는 가을 저녁 안개

몰래 내쉬는 인간의 숨도

삶의 육필(肉筆)로 남으리

채 굳지 않은 마음 만나면.

 

화석이 두근대기 시작한다.

 

   

 

♧ 물방울(153) - 손정모

 

소스라치게 깨어나는

의미가 있다면

비상은 언제나

꿈속에 서려 있다

 

낱낱이 부서져도

만나는 날엔

기꺼이 하나가 되는

연대감으로 행복하다

 

물줄기로 흐르다가도

장애물을 만나면

실오라기처럼 가는 몸매로

승천하여 길을 연다

 

이정표 없는 길이어도

허공에 흩어졌어도

통하면 열리는 마음이어서

구름으로 노닐다가 하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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