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디카 일기

녹두꽃이 떨어지면

김창집 2011. 10. 6. 06:51

 

10월 셋째 주 일요일에 비양도에 답사 가기 위한

서신을 띄우기 위해 비양호 선장에게 전화를 했으나

받지 않아 낮을 넘기고 나서야 확인을 하고

계획을 세워 우체국에 가서 회원들에게 보냈다.

일요일이기 때문에 다른 곳에서도 많이 찾아

44명 정원의 도항선을 10시 반이 넘어야

순서가 돌아올 것 같다는데, 그거야 미리 다른 곳을

들러 가면 된다고 해서 일단 신청을 해 놓았다.

비양도에 처음 갈 때는 오분자기죽을 먹었었는데

요즘은 녹두 빛깔인 보말죽이 인가가 높다.

 

녹두(綠豆)는 콩과의 한해살이풀로 팥과 비슷한데

잎은 한 꼭지에 세 개씩 나고 겹잎이다.

8월에 노란 꽃이 총상(總狀) 꽃차례로 피고

열매는 둥글고 긴 꼬투리로 되었는데

익으면 검어지고 그 안의 씨는 팥보다 작고 녹색이다.

씨는 갈아 식용하며, 밭에 재배한다.

 

  

 

♧ 녹두꽃 - 구재기

 

날아도 날아도 벗어날 길 없는 세상일일 바에야

차라리 *노굿이는 녹두밭에 외로 서서 흔들리어라

 

지나온 길, 그 위에서 돌아보면

나의 길은 오늘도 자취가 없다

 

내게 보이는 것은 오늘이 아니고 내일이 아니고

언제나 어제의 그 얼굴일 뿐

 

눈을 감고 건너갈 수 있다며 다리에서 떨어진

순이는 지금 어디로 또다시 건널 수 있을까

 

기껏 높이로만 날아가는 새여

어쩌면 의미 잃고 세상을 버리고 간 새여

 

낯선 사람이라도 만나면 살갗으로 다가가서

첫사랑처럼 살고 싶구나, 알몸을 맞부비고 싶구나

  

아득한 길, 첫머리에서 꽃처럼 웃다가

괴로움을 계속하면 나의 길은 지체 없이 지나온 길

 

멀미처럼 쏟아지는 기도로써

밤을 새워 심장의 들어박힌 어둠을 쫓았지만

 

외로 선 그림자처럼 바람결에 흔들리고

東學의 아낙처럼 노굿지는 녹두밭에 떨어지는 슬픔

 

바람이여, 녹두밭 길 따라 부는 바람이여

자취를 남기려는 듯 돌아서 마냥 가는 바람이여

 

대낮에 보이쟎던 슬픔들이 몰려와, 나는

오늘밤 잠자리 어둠 속에서 잠 못 이루며 뒤채여야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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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굿일다 : 콩이나 팥 따위의 꽃이 피다

 

  

 

♧ 녹두밥 - 김용락

 

그날 녹두밥을 먹었습니다

재활원 식당은 늦가을인데도 파리가 있더군요

나는 그 파리들이 전혀 무섭지 않았습니다

그냥 장애도 아이고 겹장애라는

중증장애아를 살펴보다가

바로 전날 아침에 누군가가 버리고 가서

새로이 데려왔다는 그 아이의 얼굴을 보고

비틀어진 그 애의 손을 가까이 잡으며

나는 깜짝 놀랐습니다

어디선가 본 듯한 몹시 낯익은 얼굴이었습니다

그 맑고 투명한 눈망울에 어린

슬픔이랄까 묘한 표정이 그날 이후 오랫동안

나를 따라다녔습니다

돌아가신 지 이십년이 넘은 할아버지 옛모습 같기도

하고 어릴 적 내 모습 같기도 하고

아니, 전쟁통에 월남해 평생을 폐병쟁이들과 보낸

어쩐 사람의 아름다운 모습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산비탈의 재활원을 내려오면서

그날 새 식구다 되었다는

아이를 내내 생각했습니다

녹두밥 속에 비벼져 애 입속으로 무심히 들어간

후생의 내 모습을 생각했습니다

 

  

 

♧ 녹두꽃 - 안수환

 

일자무식인 고조할아버지가

일자무식인 증조할아버지를 낳았고

일자무식인 증조할아버지가

일자무식인 할아버지를 낳았다

녹두밭 곁에서 아버지는 가짜로 족보를 만들었지만

나는 그 족보를 태워버렸다

주자서절요보다도 먼저 나는 녹두꽃이었다

 

  

 

♧ 녹두꽃 - 김지하

 

빈손 가득히 움켜쥔

햇살에 살아

벽에도 쇠창살에도

노을로 붉게 살아

타네

불타네

깊은 밤 넋 속의 깊고

깊은 상처에 살아

모질수록 매질 아래 날이 갈수록

흡뜨는 거역의 눈동자에 핏발로 살아

열쇠 소리 사라져버린 밤은 끝없고

끝없이 혀는 짤리어 굳고 굳고

굳은 벽 속의 마지막

통곡으로 살아

타네

불타네

녹두꽃 타네

별 푸른 시구문 아래 목 베어 횃불 아래

횃불이여 그슬러라

하늘을 온 세상을

번뜩이는 총검 아래 비웃음 아래

너희, 나를 육시토록

끝끝내 살아.

 

  

 

♧ 녹두장군 전봉준 - 사강 정윤칠

 

자주, 자강, 만민평등 녹두꽃이 활짝 피는 날이 보고 싶었다.

나라를 팔아먹은 놈들의 후손이 총 대신 펜의 힘을 빌려

저희 민초의 가슴에 대못질을 합니다.

조국을 사랑한다며

조국을 사랑한다며

외세를 등에 업고 설쳐대는 꼴이라니

그때도 이랬겠지요.

청나라도 아니요

일본놈도 아니요

그들을 죽여 간 것은 우리 동포의 배반이었겠지요

경제파탄으로 노숙하는 서민의 등껍질에서 고혈을 채취하고

코 묻은 돈지갑에 침을 흘리며

달려드는 고부관아 조병갑의 권세 아래 환곡이 서민의 피를 탐했겠지요

무능한 관리들의 등살에 자살하는 많은 기업인과 악덕 사채업자의

목조임에 그들은 죽어갔습니다.

바다가 다 마르도록 저들의 포악한 학정은 모기보다 독하고

등기보다 악랄합니다.

아무리 땅을 파도 우물이 보이지 아니합니다.

녹두꽃은 무궁화로 바뀌어 오래입니다.

팔도가 한 목소리로 통곡하는데

구질구질한 흙만 구두에 붙어 떨어지지 않아요.

재벌 놈들이 자기 배터지는 소리를 냅니다.

서민의 밥그릇을 빼앗아 자기 곡간을 채웁니다.

별들이 나왔다면 제 뱃속 부른 것만 자랑하고

남 배고프고 추운사정은 경시하네요.

질척거리는 저들의 손아귀에 목덜미를 잡힌

노동자는 항상 슬펐습니다.

우리도 힘 있는 칼을 쥘 수는 없는 것입니까?

녹두꽃 피어나면 일어설 수 있을까요.

어르신을 응징해야할 시기는 오는데 어찌 해야 합니까?

저들의 만행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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