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디카 일기

으름은 익어 헤벌어지고

김창집 2011. 10. 7. 06:46

 

어제는 서귀포시 제주어 말하기대회에 다녀왔다.

초중학교 학생 18개 학교 팀이 발표하는 모습을 보며

왜 이 지경까지 이르렀는지 어른으로서 부끄러움이 앞선다.

하나같이 갈옷이나 촌로의 복장을 하고 나와서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사라져가는 언어와 미풍양속을 살리자는 내용으로

기염을 토하는 그들이 안쓰러워 남몰래 가슴을 쓸어내렸다.

특히 1학년 학생만으로 구성된 남원초교의 공연이 압권이었다.

 

지금 산에는 으름이 익고 있으나, 열매가 벌어지는 족족

새가 속을 쪼아먹어버려 정작 열매를 찾고 나면 텅 빈 경우가

많다. 지금 이것은 지난 일요일 산행에서 찍은 것으로

위에는 달콤하고 향긋한 다래가 있어, 미쳐 그 아래

그늘에 있는 좀 떫은 이 으름에는 아직 새의 부리가

이르지 않아 운 좋게 찍을 수 있었다.

 

으름덩굴은 으름덩굴과의 낙엽 활엽 덩굴나무로

길이 5m 정도이며, 잎은 잔잎 다섯 장이 둥글게 모여

어긋나거나 모여 나는데, 잔잎은 긴 타원형이고

잎 가장자리는 밋밋하다. 4~5월에 연한 자주색 단성화가

총상꽃차례로 잎겨드랑이에서 길게 드리워 피고,

열매는 타원형의 삭과로 식용하고 뿌리와 가지는 약용한다.

 

  

 

♧ 이런 가을이게 하소서 - 반기룡

 

으름처럼 쫙 벌어진 웃음을 띠며

그대에게 달려가 와락 안기어

지난날 다하지 못한 때깔 좋은 사랑을

이박삼일 나눌 수 있는 그런 가을이게 하소서

 

무밭을 오가며

쭉쭉빵빵처럼

잘 생긴 흰 색깔을 보며

그대의 다리가 아니고

오로지 희디 흰 얼굴만 생각할 수 있는

그런 사랑의 마음을 갖는 가을이게 하소서

 

 

추색을 그리워하며

떨어지는 단풍을 바라보며

시간이 가고 세월이 흐르면

자연에 순응해야 하는 것처럼

진인사대천명의 정신으로

우리의 삶도 최선을 다하여

열정의 꽃이 고샅고샅 만발하고

어떤 변화와 도전에도 결코

주눅들지 않는 가을이게 하소서

 

높은 하늘과

오곡백과가 무르익는 들녘을 바라보며

우리의 마음과 정신을 살찌울 수 있는

한 편의 시를 읽을 수 있고

만사에 허벙짚는 일 없이

보다 풍성한 내일을 기약하는

계획으로 가득찬 가을이게 하소서

 

  

 

♧ 으름덩굴(241) - 손정모

 

다섯 갈래

손바닥 닮은 잎새로

덩굴마다 손 내밀어

하늘 향해

가만히 귀 기울이다가

 

연보랏빛 우아한 맵시로

바람이 지나다니는 길목

민감한 레이더처럼 더듬더니

솔숲에서 훌쩍이는

가슴 잃은 산새

고독을 건져 올린다

 

산중의 정밀로

떨어져 내리는

개화의 설렘

마음껏 몸 태우며

음미하다가

휩쓸리는 바람결 타고

청아한 음률로 흩날린다.

 

  

 

♧ 가을볕 - 박종영

 

산 밑

으슥진 곳으로부터

하늘빛 바람이

사근사근 불어오고 있다

 

오랜만에 바람다운 색깔이다

그 냄새 가슴으로 안으니

숨결이 환해진다

 

가을볕이 참 쨍쨍하다

빛 내림의 순서를 기다리며

너끈한 기운을 깔고 있는가?

 

으름덩굴 뚝뚝 지던 날도

산비탈 결진골

짙푸른 산구절초 한 무리

한 타래 눈물 쏟고 있을 무렵,

 

아트막은 산은

그제야 유리알 같은 낮잠을 즐긴다.

 

  

 

♧ 인생길 - 안갑선

 

숲 길은 울창한 숲에 덮여 보이지 않다가도

낙엽 지고 앙상한 가을 지나

흰 백설 소담한 때, 길은 보인다네.

지하 통로를 따라간 숨은 길마저 훤히 보인다네.

 

물 깊어 시퍼런 채색된 물밑도 보이지 않다가도

해마다 가뭄 들면 물 빠지고 웅덩이 곳곳 뒹굴며

늪이 형성된 길이 보인다네.

얇고 맑은 물의 길처럼 훤히 보인다네.

 

사람은 죽어 숲이 아니면서 숲이고

물이 아니면서 물인데

어차피 살아가는 동안엔 활짝 열고 살아야 하건만

암흑 같이 길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네.

 

야산 중턱의 으름도 무르익으면

작지만 모든 속보여 주는데

하물며 들판의 이름없는 들꽃도

때 되면 모든 가슴 풀어헤쳐 보는데

 

땀 뻘뻘 흘리며 안개 낀 길에 화선지를 붙이고

질퍽한 거리의 색을 화이트로 지우며

험난한 인생길에 빛줄기 뽑아 이어 긋는 길

그래도 투명하지 않은 길이라네.

 

  

 

♧ 서진암 가는 길 - 권경업

 

산에 길 있네

시작은 나였지만 끝은 어디인지도 모를

 

허상(虛像)의 내가

허상뿐인 나를 찾아 헤매이던 길

 

잘게 분해된 시간

빛바랜 햇살로 증발하는 오후의

느릅나무 숲, 으름 덩굴 사이로 열려 있네

 

털어버려, 그냥

훌훌 털어버리라는 허허로운 바람의 길

 

시월이 멈추어 선 산자락

내 젊은 날이 중년(中年)의 내 어깨에 손 얹으면

야윈 오솔길은 제 혼자 두런거리며 간다

아득한 그리움 지나 더 아득한 그리움으로

산 넘어 산, 그 넘어 산으로

 

백장암 뒤란 대숲을 건너, 저 - 편

잊혀진 어느 가을의 모퉁이에서

하염없이 기다릴 사람아

만남과 이별,

어제와 내일이 윤회(輪廻)할 그 길 위

네 눈빛만큼이나 한없이 투명한 하늘

아쉬운 날들의 사랑같은 노을이 진다

 

........................

*서진암, 백장암 : 지리산 실상사 건너편에 있는 암자

 

  

 

♧ 산 같은 마음을 가지려면 - 정세일

 

산 같은 마음을 가지시려면

당신은 언제나

깊은 뿌리가 있는 생각을

당신의 마음에 심어서 숲이 우거지면

아침에 안개와 구름이 찾아와서

당신의 이름을 물어보아도

그저 고개만을 끄덕일 수 있는

산울림과 바람소리만을 가지십시오.

 

당신에게 찾아온 안개와 구름이

당신의 깊은 마음을 헤아릴 수 있다면

오늘은 산울림과 바람소리에서도

당신의 생각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산 같은 마음을 가지시려면

당신은 언제나

산 같은 깊은 생각으로

골짜기를 만들어서

골짜기 마다 물도 흐르게 하고

누구나 찾아오면 시원한 물도 마시고

물이 흐르는 곳에서 쉴 수 있도록

생각하는 마음과 졸졸졸 소리가 나는

노래를 골짜기에 가두어 주십시오.

 

당신이 생각처럼 노랫소리도 들리고

물이 흐르는 곳마다 초가집 같은 덤불이

우거진다면

그곳엔 머루도 달리고

다래도 달리고 입이 벌어지도록

단맛이 나는 으름도 달려서

누구든 물가에서 시원함을 맛보면서

당신의 산처럼 깊음을 알게 될 테니까요

당신이 새처럼 된 그때

그곳에는 이제 새들도 날아들고

토끼와 다람쥐도 당신의 그 골짜기에서

시냇물 소리들 들으면서

목마름도 다 해결할 수 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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