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디카 일기

한로에 보는 쥐꼬리망초

김창집 2011. 10. 10. 00:14

 

아침에 조금 높은 지대에 가보면 들꽃과 잎에

찬이슬이 보얗게 맺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찬이슬이 내리면 못다 핀 여름 꽃들은 서둘러

꽃을 피우며 열매를 맺어 종족 보존은 꾀한다.

이때 꽃잎은 옅거나 짙게 나타나는데, 그 때

그 꽃이 어떻게나 달라 보이며, 아름다운지….

 

한로(寒露)는 10월 8일경인데, 음력으로는 9월,

태양의 황경이 195°이며, 찬 이슬이 맺히기 시작하여

농촌에서는 추수로 바쁜 시기이다. 예전에는 이때를

전후해 국화전을 지져 먹고, 국화술을 담갔으며,

수유(茱萸)를 머리에 꽂아 잡귀를 쫓았다.

 

쥐꼬리망초는 쥐꼬리망촛과의 한해살이풀로

높이는 30cm 정도이며, 잎은 마주나고 달걀 모양이다.

7~9월에 흰색 또는 연한 붉은색 꽃이 수상 꽃차례로 피고

열매는 긴 타원형의 삭과를 맺는다. 뿌리는 약용하고 야산에서

자라는데 우리나라, 일본, 대만, 중국 등지에 분포한다.

 

  

 

♧ 가을길 - 김종해

 

한로 지난 바람이 홀로 희다

뒷모습을 보이며 사라지는 가을

서오릉 언덕 너머

희고 슬픈 것이 길 위에 가득하다

굴참나무에서 내려온 가을산도

모자를 털고 있다

안녕, 잘 있거라

길을 지우고 세상을 지우고 제 그림자를 지우며

혼자 가는 가을길

 

  

 

♧ 나무에 물을 주며 - 도종환

 

책을 읽을까

며칠째 쌓여 있는 우편물을 뜯을까

생각하다

꽃나무에 물을 준다

오늘은 아침부터 바람이 심하게 불고

한로 지난 나뭇잎도 나도

스산하기 그지없다

많은 날 돌보지 않고 버려둔 잎들은

목마름 참다 참다

외로 틀어져 있고

나뭇가지보다 더 메마른

내 마음속 실뿌리는

어디 한군데 발 뻗을 곳 찾을 수 없다

신문을 펼칠까

던져둔 서류봉투를 열까 생각하다

파초잎과 동백나무에 물을 준다

세상사 다 나 혼자 짐져야 하는 듯

헤매고 다니다 지쳐 돌아와

오늘은 서늘한 물줄기에 발을 적신다

   

 

  

 

♧ 돌사람이 춤을 춘다

    달마는 왜 동쪽으로 왔는가 - 최동호

 

구멍 한로 드나드는

수천 망설임과

눈 붙이지 못하는 굴껍질 같은 밤, 가벼운

눈꺼풀이 꽃잎으로 피었다 진다

 

누구인가, 입술을 죽여

피리를 불어 꽃잎의 숨소리를 일깨운다

곰팡이가 홍역처럼 번진 낯바닥으로 웃고 있는

곱사등이 돌사람이

 

얼쑤 절쑤

나뭇가지를 붙들고 궁둥이를 흔들며

귀신을 부르는 저승사자춤을 춘다

 

  

 

♧ 寒露附近한로부근 - 이우걸

 

가을이다 모두는 一陣일진의 바람이다

지구의 한편에선 검붉은 낙엽이 지고

달빛은 벽에 기대어 차가운 손을 비빈다.

만나기 위하여 남기기 위하여

그 무엇도 아니었던 마지막 하늘 아래

뼈아픈 매를 맞으며

裸木나목들은 거리에 섰다.

 

  

 

♧ 수용 - 신동집(申瞳集)

 

들판을 출렁이는

황금의 나락 물결.

코스모스는 이리저리 길가에 나부끼고

 

이런 날의 고마운 이승 이 한때

천지는 두루 풋기를 가시고

높아 오른 하늘에

옥빛 도는 얼굴은 비친다.

 

한로도 갓 지난 오후 이 나절

나뭇잎은 마음 놓고 물들어 가고

더러는 댓잎

미리 알아 떨어도 지고

 

조금은 나도 이제 닮아 가는가,

나이 든 대지의 후눅한 내를

고개 숙여 맡아 본다.

나직이 마음 숙여 받아들인다.

 

  

 

♧ 가을 유혹 - 권오범

 

 

어정쩡한 보폭의 추분과 한로 사이

노라리 소슬바람 제세상 만나 객기 부리다

탱자나무 가시에 찔렸나보다

탱자가 푸르락누르락 기겁한 걸 보니

 

곁에서 살 떨리는 광경 목격했는지

석류는 피투성이가 되었고

대추도 알라꿍달라꿍

감 얼굴은 사색이 되었다

 

생화에 들숨 날숨 없어 퍼석해진 마음

역마살 도지도록

들썽하게 불 질러놓고

하늘은 어찌 저리도 멀쩡한 것이냐

 

자줏빛이던 맥문동 모가지엔 꼬치꼬치

옥구슬 목걸이 걸고 곤댓짓 하지요

코스모스는 시도 때도 없이 는실난실

허술한 감성을 잔인하게 꼬집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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