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우리詩 10월호의 시와 가막살

김창집 2011. 10. 14. 08:25

 

10월이 되어

모든 나무가 가을 색을 띠어간다.

그 중 가막살나무도 한 가지…

빨간 보석들을 매달고 섰다.

 

가막살나무는 인동과의 낙엽 활엽 관목으로

높이 3m까지 자라며, 잎은 마주나고 톱니가 있다.

초여름에 작고 흰 꽃이 가지 끝에 피고,

열매는 달걀 모양으로 가을에 익는다.

울타리로 이용하고 관상용으로 재배한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우리詩 10월호의

‘신작시 25인 선’ 중에서 8편을 골라

예쁜 열매와 함께 내보낸다.

 

 

♧ 소나기 - 장혜승

 

오늘도 나는

내가 사랑해야할 사람을 모두 사랑했다

 

그들이

나를 사랑하지 않았을 뿐이다

 

나보다 더 사랑했던 그대들이

장대비 들이치는 이 오밤중에

 

칼날 같은 외로움 위에

벌거숭이 나를 뉘어 놓고 차례차례 밟고 지나간다

 

내가 끝까지 사랑해야 될

그 사람들이

 

  

 

♧ 그 여름의 뼈들 - 정하해

 

사람의 목덜미를 빠져나와

멀어지고 있는, 행렬

그것 서럽지 않게 지상에는

점점, 붉음, 얼마나 애절한 미련인가

그럴듯하게 섰는 나무들

잎들과 주고받는

필담이 이제야 알 것 같은

어제는 도반에게서

말이 엉켜 글이 덥다고 했다

아직은 준비 없는 마음 때문이리라

요즘 손발이 뜨뜻미지근한

이 징후야 말로

불혹의 낌새이거나 해서

좋게 표기해야겠다는 생각이고

당신 힘이 늘 그렇듯

제 몸을 누고나온 열매의 눈들이

이맘때면 크고 사나워진

범 같아 나는 조심을 하게 된다

하여, 모든 것의 태도가 좀더 다가서기에는

서로 피땀이 깊다는 걸 아무도

말해 주지 않아 번번이

한통속 되지 못한 나는, 무진장

다른 뼈 같아

 

  

 

♧ 숙부 제삿날 - 민문자

 

청록의 계절 기분 좋게 나선 길

자동차 뒷좌석에서

“저리 가지 왜 이리 가느냐”

불같이 화를 뿜어내지만 운전수는

‘처삼촌 벌초하듯 한다’ 라는 말 떠올라

그저 놀란 심장을 지그시 누른다

 

일찍 세상 하직한 아버지 대신

그 역할 다 해 주셨던 작은아버지

수박 한 덩이 고기 한 근이라도 사 들고

늘 사촌들과 함께하는 우리 부부

기일(忌日)은 물론 산소에도 기꺼이 40년을

동행해 주는 마음이 고마워 끽소리도 못한다

 

  

 

♧ 장마 - 최윤경

 

어디 네 가슴만 그렇게 쌓인 것이 많던가

며칠 동안 퍼내어도 비 그치지 않아

우두커니 먹빛 하늘 바라보면

거무스름한 멍 그대로 스며들어 번진다

수묵화 한 점 그려 놓으려는지

과묵하게 파인 도로의 아스팔트는

골 깊은 서러움을 토해내고

바퀴에 짓눌려 튕겨져 나오는 빗물

그 사이에 버려진 시간들이 뛰어나오면

경쟁이라도 하듯 빗줄기가 굵어진다

어둔 내 가슴 속에도

그칠 줄 모르고 비가 내린다

 

  

 

♧ 풀무치 - 최재경

 

살아보니 어떠냐고 그가 물었다

사는 것이 늘 그렇고 그렇지 뭐 뾰족한 수가 있냐고, 그랬다

그러면, 사철 중에 어느 철이 그 중 살만하냐고 물었다

없이 사는 놈이 대충 벗고 사는 여름이 좋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 떠나도 여한은 없냐고 물었다

아직은 멀었다고 대답을 하려다 그만두고 딴전을 봤다

감나무에서 쓰르라미가 악을 쓰고 울었고

간혹 여치도 찌직 찌직 따라 울다 그쳤다

하늘이 수상하다

아주 오래전 그가 돌아왔다

바람보다 먼저 풀잎이 눕는다

선뜻 일어나 마주할 수 없다

날개를 비벼도 소리를 낼 수가 없다, 돌아눕는다

나는 자꾸 말라간다

풀잎처럼.

 

  

 

♧ 세월 - 우기수

 

풀린 태엽처럼

돌이켜 볼 여유 없이

톱니로 돌고 돌아

숨 가쁘게 내달린 시간

 

눈금 없는 잣대 들고

하릴 없이 재어본 삶

그저 헤아릴 수 없이

하얗게 자란 귀밑머리

 

먼 길 재촉하듯

등 떠미는

검은 그림자

 

  

 

♧ 동同, 행行 - 김명

 

굽은 허리를

늙은 소가 끌고 간다

한 발 한 발

움직일 때마다

목에 달린 작은 종은

딸랑거리고

노인의 이마에

깊은 강이 흐른다

 

  

 

♧ 철새 - 김민호

 

겨울 한철 사용허가서 품고

금강하구로 날아든 가창오리 떼

일몰 직후 군무를 펼친다

따뜻한 저녁을 찾아

썰물 때는 서천갯벌 쪽

밀물 때는 금강호 쪽을 황급히 오간다

자리 잡지 못한 날갯짓 속

뼈는 슝-슝 비어간다

하늘 우듬지까지 솟은 고공비행

날개 하나 거리로 스쳐며 날아도

생은 결코 부딪히지 않는다

파문은 호수에 얼었다

춤사위만 쫒은 환호성이 지나면

누군가 던져 줄 벼이삭 몇 알

밀물과 썰물 치는 세상 속에서

한 뼘 땅과 하늘에 곡예가 한창이다

날개를 접고 발을 붙인

텃새의 꿈을 자주 꾼다

시간이 기울면 떠날 철새라고

무관심한 해가 시들어 간다

깊은 밤의 고랑으로

북서계절풍도 곤두박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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