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제주작가 가을호와 고마리

김창집 2011. 10. 11. 00:31

 

 

계간 ‘제주작가’ 가을호(제34호)가 발간되었다.

‘책머리에’는 ‘희망의 싹은 절마의 끝에서 움튼다’,

‘포토 에세이’는 문영종 시인의 ‘해오라비난초’,

특집으로는 ‘일강정, 푸른 물아!’로 여러 곳에 발표된

강정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시와 산문 29편을 모았고,

‘작가를 찾아서’는 김성주 시인, 시는 12시인의 작품,

시조 6인의 작품, 수필 2편, 연작소설 한림화,

단편 이석범, 제주어 산문으로 김창집 글이 실렸다.

 

고마리는 여뀟과의 한해살이풀로 높이는 70~100cm까지 자란다.

가시가 있으며 8~9월에 작고 불그스름한 꽃이 가지 끝이나

잎겨드랑이에서 핀다. 열매는 수과를 맺으며 들이나 골짜기에 나는데

우리나라, 우수리, 일본, 중국 등지에 분포한다.

우선 특집시 5편을 뽑아 고마리와 함께 싣는다.

 

  

 

♧ 구럼비는 말이 없다/ 김해자

 

     1

집도 절도 없는 붉은발말똥게가

게걸음으로 느릿느릿 바다로 들어간다

바다는 너른 품을 빌려

사리 같은 알들 쏟아내느라 충혈된

그의 눈자위를 식혀주고 있다

내가 저 깊은 바다라면

별빛 아래서 내장까지 비워낸

그의 오랜 탈피를 알알이 새겼으리

학벌도 수입도 캐묻지 않고

기수갈고등 두 마리가 둥글게 살을 맞대고 있다

위에서 봐도 옆에서 봐도 평등한 8자 모양이다

서로에 닿기 위해

온몸으로 써내려간 구불구불 상형문자

작은 창구멍으로 뻐끔뻐끔 해독에 열중인 갯벌의 너른 이마

묵묵히

그 둥그렇고 평등한 사랑을 받아먹었으리

열대여섯 살 돈 벌러 나간 고향 언니들 같이

어려서 대처로 떠난 은어들이 떼 지어 돌아온다

도톰한 입술에 은빛 루즈를 바르고

다 처녀가 되어 돌아온다

돌부리에 긁힌 은빛 등짝

물은 종일 은빛 등짝들 토닥거리며 노래한다

‘객지 나가 애썼다 자식 낳고 잘 살아라’

내가 물 속 바위라면

금빛나팔산호의 찬란한 나팔소리에 취하고

물속에서 등불 켠 별혹산호의 별빛에 눈멀었으리

내가 만일 바람이라면

강정 천변에 흔들리는 층층고랭이 그 보드라운 머릿결 어루만지며

층층이 잔물결 빚는 천 실 만 실 춤이 되었으리

 

 

     2

 

우리는 어찌하여

아파트 없어도 잘만 사는 붉은발말똥게 못 되고

통장 없이도 사랑만 잘 하는 기수갈고등은 못 되고

물만 먹어도 팔뚝만 굵은 수지맨드라미산호는 못 되고

수천수만 은빛 출렁이는 은어 떼 순한 춤사위는 못 되고

우리는 어찌하여 그렇게는 못 되고

 

부수고 망가뜨리고 서로 해치는 종족이 되었는가

 

내가 인간이라면 만일

내가 인간이라면…

 

-----------

“멸종위기에 처한 산호가 생생하게 살아 숨쉬고, 환경부가 지정한 자연생태 우

수지역이며, 유네스코의 세계자연유산, 신비하기 그지없는 구럼비를 없애가며

휴전선도 아닌 한반도 가장 아랫마을에 해군기지를 짓겠다는 이유가 정말 무

엇인지, 그 해군기지는 무엇을 위한 것인지 진심을 알고 싶다.”(정원선, 제주

풍경화 중에서)

 

 

♧ 강정 간다 - 박관서

 

강정에 간다

형과 형수와 아내와 딸과 함께

여름휴가 삼아 배를 타고

뒤늦게 신혼여행 왔던

제주도 아름다운 바닷마을

태풍에 흔들리는

강정에 간다

부끄러움으로 간다

총칼 난무하는 곳도 아니고

국경을 넘나드는 싸움터도 아닌

시골마을 하나 지키자는

사람들을 만나러 간다

강정에 간다

갓난아이를 안고 폭설 속에

목숨을 다한 미이라가 되어

역사와 전설로 남아있는

사람의 체온을 찾아

강정에 간다

따순 피가 흐르는

형과 형수와 아내와 딸을 만나러

나는 오늘도

부끄럽게 부끄럽지 않게

강정에 간다

 

- 7.19 강정마을에서

 

  

 

♧ 군인은 제발 보이지 말아야 하네 - 서수찬

 

군인은 보이지 말아야 하네

여태까지 군인이 보여서

잘된 나라는

이 지구상에는 없었네

군인이 커다랗고

선명하게 보이는 미국이

가는 곳마다 남긴 것은

분쟁이요 죽음 뿐이었듯이

성산 일출봉이

미국을 따라 하는 것은 정말 싫네

정방폭포가

세계 사람들에게

폭격기가 되는 것은

생각하기도 싫네

제주의 바람이

지구 곳곳에

피의 냄새를 다시 타전하는 것은

죽기보다도 싫네

군인 몇 백만 명 보다도

용두암 하나가 제주를 지킬 것이네

무명 저고리 같은 갈대 하나가

어떤 무기보다도 튼튼히

제주를 지킬 것이네

산방굴사 외돌괴 유채꽃이

어떤 항공모함보다도

평화를 더 오랫동안 기억하게 할 것이네

군인은 제발 보이지 말아야 하네.

 

  

 

♧ 몰락하는 바다 - 손병걸

--강정마을

 

콘크리트 덮인 땅이 생명을 키울 수 없듯

구럼비 바위 끝 짙푸른 바닷속

따개비 붉은발말똥게 기수갈고둥 수지맨드라미산호 은어 떼

졸지에 마을이 매몰 당할 아우성 같은

신열을 앓는 바다의 파도소리를 들어 보라

잔물결 파도소리 가릉거리는 바닷가에서

두 눈을 적시는 해풍의 냄새를 맡는 후각은

아주 먼 곳, 먼 시간까지 가닿아서

몰려올 성난 해일 같은 포탄비를 예감하듯

자궁을 들어낸 바다는 죽음의 상징이다

채 태어나지 못한 수많은 생명의 무덤이다

굳이 안 봐도 환한 그날이 오지 않기를

여린 손 모아 모아 기도하는 간절한 합창 속에서

이미 쉰 목 또 한 번 아프게 소리쳐 본다

그 모든 것을 알고 갯벌도 숨구멍을 열어젖히고

강정천변에 흔들리는 키 작은 층층고랭이

천실만 잔물결도 악착같이 눈부시다

 

  

 

♧ 강정의 아침 - 이은봉

 

강정의 아침, 하늘 저쪽 저 혼자 저물다 만 낮달, 어지럽다 열기를 내뿜으며

아침부터 여름의 햇살 따갑다

 

다른 방법이 없다 팔베개를 하고 구럼비 바위 위에 누워 마음 한 곳으로 모은

다 출렁대는 파도소리 듣는다

 

그렇게 침묵한다 명상한다 구름 몇 점 떠 있는 북쪽 하늘, 함께 떠 있는 마음

으로 10분, 20분, 30분……

 

불어오는 바람에 실려 구럼비 바위, 재잘대는 소리 들린다 뿔고동이며 홍합,

흥얼대는 소리 들린다

눈 감는다 구럼비 바위 깨뜨리려는 포클레인 이빨 두드리는 소리, 들린다 허

공을 날던 고추잠자리들 서둘러 달아난다

 

무더기로 쌓여 있는 방사탑 위로‘해군 기지 결사반대’라고 쓰인 노란 깃발

흩날린다

 

눈 뜨면 구럼비 바위 뚝뚝 눈물 흘리며 살려달라고 우는 소리 들린다 하늘 저

쪽 저 혼자 떠 있는 낮달도 너무 무서워 소름 돋는 여름의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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