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디카 일기

입동에 핀 흰애기동백

김창집 2011. 11. 9. 16:17

 

아침에 따라비 오름에 취재 다녀오자는 말에

엊저녁 무조건 OK했는데, 아침에 비가 내린다고 해

안 가나 보다하고 천천히 매운탕 해먹는데, 차가 와

부랴부랴 옷을 차려 입고 오름으로 향했다.

 

오름엔 지난 태풍 때문에 시원치 못했던 억새가 다지고

철없는 철쭉이 만발하다. 한 바퀴 돌고 전체 사진 찍으러

내려가려는데, 빗줄기가 더 커진다. 그럼 사 가지고 온

달걀 삶은 것이라도 먹고 가자고, 1회용 우의를 입고

쪼그려 앉아 먹는데, 막걸리도 한 잔 없어 목이 멘다.

 

아무래도 더 큰 비가 내리기 전에 가는 것이 상책이다 싶어

내려와 세 사람 모두가 동의하에 옛 가시초등학교 자리

자연사랑 갤러리에 가서 오랜만에 사진 구경하고

서 관장님에 차 한 잔 얻어먹고 나와 식당에서 돼지고기

구워 먹으며 환담을 나누고 집으로 오다.

 

 

♧ 입동(立冬)에 부르는 노래 - 홍수희

 

겨울이 오려나 보다

그래, 이제

찬바람도 불려나 보다

 

선뜻 화답(和答) 한 번 하지 못하는

벙어리 차디찬 냉가슴 위로

 

조금 있으면

희디흰 눈싸라기도

아프게 불어제끼려나 보다

 

코트 깃을 여미고

멀어지는 너의 등 바라보며

쓸쓸히 찻잔이나 기울이고 있을 나

 

사랑은 소유가 아닌 까닭을

모를 리 없는 죄 많은 가슴

하, 연약한 미련

 

장밋빛 뺨이 고운 그대여

너무 쉽게 왔다가 너무 쉽게

떠나 갈 그대여!

 

다시 또 겨울이 오려나 보다

오거든 다시 가려나 보다

 

 

♧ 입동 무렵 - 최영숙

 

밤비 오려나...... 바람이

별들을 쓸고 가 버린 입동 무렵

연탄은 좀처럼 피지 않는다

한 장 또 한 장의 숯탄을

넣을 때마다 폐광처럼 아뜩한 누짐 속에서

단 한 번의 불길이 확, 일었다 지고

잠시 밝은 매캐함이 눈을 아프게 한다

 

 

그렇다 두려운 것은 한밤의 냉기가

등골을 타고 내려오는 절망 때문이 아니다

나 이제 가보지 못한 겨울의 문을 열려 할 때

왜 지나간 추위는 따뜻하게 느껴지는지

가난했지만 두 손으로 받쳐 올리던 국물 사발과

서리김 사이로 보이던 그대 얼굴 있다

마음밭 서성임으로 주저했으나

 

저렇듯 불씨를 옮겨 붙이려고

먹탄 아래 여생의 캄캄함을 태우면서 혹은

스러지면서 혼자 가는 길 위에서

부르는 사랑노래 무섬증을 밀고 가다 보면

떨어져 쌓인 낙엽무덤 속

두 발을 묻고 싶도록 환해 보일 대도

있는 것이다 밤비 오려는지

별 없는 하늘 고개를 들면

어딜까, 바람이 길을 트는

먼 나라 그 집......

 

 

♧ 입동 - 권복례

 

세월은 그냥 가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 내 몸 구석구석

몸살을 앓게 하고

그리고 또 한 살을 먹는 건가

경상도 사투리로 약을 조제하는

그 여자에게로 가는 길목의

가로수 잎이 한 개도 남아있지 않다

늦은 시간까지 운동을 하던 사람들도

모두 떠나버린 시민공원의

적막함,

늘 바라보기만할 때는

그것도 할 수 없는 내가

서럽고 서러웠다

 

늦은 밤

모두 떠나보내고 빈 가지로 겨울바람을

맞고 서 있는 나무의 추위가

다 내게로 몰려온다

 

 

♧ 입동 - 유안진

 

유랑하는 내 마음

기슭기슭에

무성히 우거진

탐욕의 잡초더미

 

젊은 날

비린내마저도

무찔러

 

절대의 왕국은

오고야 말았구나

 

 

그리스도

옛 애인이여

 

막달라 마리아의 상채기마다

눈바람이 일겠지요

얼음꽃도 피겠지요

 

그 얼마 뒤에

절대의 사랑은

불이 붙을까요.

 

 

♧ 입동 부근 - 송종찬

 

입동이 눈 앞인데 이제야 먼 길을 나서다니

밤나무 잎이 떠가는 냇가에 앉아

협곡을 막 빠져 나온 물살을 바라본다

겨울이 오기 전에 바다에 닿을 수 있을까

잘게 드러난 주름살 창백해진 손과 발

주술사처럼 강기슭마다 물안개를 피워

사람들이 어찌어찌 살고 있는지 저지대의 안부를 물으며

낮은 목소리로 갈대를 흔들고 지나간다

언제 영어의 몸이 될지 내년 봄까지

어디서 얼음의 제단이 될지

이제야 먼 길을 나서다니

절로 막막해지는 늦가을 그림자 속에서

 

  

♧ 입동 - 이명기

 

바람이 몹시 불어 코끝이 어는데,

빈손 쫙 펴 들고 먼 곳을 배경으로 섰습니다.

다 쓰러진 세상엔 더 이상 흔들릴 것이 없습니다.

거울처럼 잘 닦여진 풍경 속으로 자꾸 얼굴 감추는

길을 갑니다. 이 길 끝에는 드문드문 까치밥이 어는

몇 채의 집과 샛강 건너 돌담을 쌓고,

저물 무렵엔 낮은 지붕 위로 저녁 연기가 피어오르는

마을입니다. 몇 남은 잎에 내려온 햇살같이,

기다림이 끓고 있는 곳으로, 이제 한동안

당신을 만날 수 없음을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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