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디카 일기

용담꽃은 추워지는데도

김창집 2011. 11. 11. 00:17

 

엊그제까지 기온이 많이 올라 이상난동을 보이더니

비가 한 이틀 내리고 나니, 갑자기 서늘해진 느낌이다.

전에 하나둘씩 피어 있는 용담을 찍어두었는데

한라수목원에 나이가 찾는지 여러 송이 핀 용담이

이렇게 피어 그 오묘한 색을 내비치고 있었다.

 

용담(龍膽)은 용담과의 여러해살이풀로 높이는

20~60cm이며, 잎은 마주나고 피침 모양이다.

8~10월에 푸른빛을 띤 자주색 꽃이 줄기 끝이나

잎 사이에서 피고 열매는 삭과이며 말린 뿌리는

약재로 쓴다. 관상용으로 재배하기도 한다.

  

 

♧ 용담꽃 - 홍해리(洪海里)

 

비어 있는

마당으로

홀로 내리는

가을볕 같이

 

먼저 간 이를

땅에 묻고 돌아와

바라보는

하늘빛 같이

 

이냥

서럽고 쓸쓸한

가을의 서정

 

슬픔도 슬픔으로 되돌아가고

아아

비어 있는 마음 한 자락

홀로 가득하다.

 

 

♧ 늦가을 용담 - 김귀녀

 

인고의 세월

기다리고 또 기다리며

모두 떠난 빈자리에

함초롬히 피어있는 청순한 새색시

 

꽃반지 끼워주며

언제 오마고, 약속하고 떠난 임

언제 올까

굽이굽이 굽은 산길 바라보며

목 빠지게 기다린다

 

달님이 지나가면

말없이 웃고

새벽이슬 내리면 눈물 흘리고

중천에 떠오르는

해님을 보며

쌓인 설움 토해내며 울먹거린다

 

돌아오는 소식마다

가슴만 후벼 파고

뭉친 가슴 쓸어안고 서성이다 해가 지는

한 맺힌 여인

속가슴엔

시퍼런 멍 자국 골이 패인다

    

 

♧ 두고 온 용담 - 서연정

 

산행 때마다 보게 되는 몸부림이 있다

 

예순 나이가 넘어도

뵈는 것이 예쁜 그만큼

몸서리치게 가지고 싶어서

욕심은 또 젊을 적 육욕처럼 거칠어서는

눈독들인 것마다 움켜쥐려는 저 갈퀴손

 

뿌리째 내 뜰에 옮겨오고 싶은 꽃이 왜 없으랴

 

고스란히 두고 온 용담

이윽하게 바라만보는 날

끌어안고 싶은 갈비뼈가 홀로 으스러진다

 

 

♧ 용담꽃은 용담꽃 아니었다 - 한영옥

 

당신은 당신 아니었다.

흙담집 창호문 안에서

쏟아지는 눈발을 바라다 보는

가만한 웃음 당신을

쏟아지는 눈발 속에서 보았다

눈발마다 묻어나는 그 웃음 따라가다

나는 그만 그 방에 들었다

그런데 마주친 당신은 당신 아니었다

당신 비슷하긴 했어도……

 

용담꽃은 용담꽃 아니었다

청보라빛 입술에 산그늘을 걸치고

가을 풀섶으로 몸을 다 가린 용담꽃을

흔들리던 하루가 잦아드는 어스름에

나는 그만 꺾어들고 말았다

그런데 용담꽃은 용담꽃 아니었다

용담꽃 비슷하긴 했어도……

 

 

♧ 세석 평전 - 권경업

 

잔돌배기 밤하늘에

은하별이 쏟아지면

텐트에 개스등

불을 밝혀서

잊혀지는 산 이야기

아쉬워하며

은하수 기울도록

끝이 없는데

백무동 길목에서

헤어진 산친구

아쉬움과 그리움에

정을 더하여

님과의 산행길을

생각하다가

용담꽃 피는 밤을

나는 지샜다

................

*새석평전: 지리산 주능선상에 잇는 넓은 고원. 해방 후 빨치산의 군사훈련장이 있었다.

 

 

♧ 가을 산길에서 - 김길남

 

바람이 거센

산 능선의 나무들은

모두 다들 키가 작아 보인다

 

매서운 바람의

매를 피하기 위해

납작하게 엎드려

숨마저 가파르다

 

산이

나무를 잡아 주지 않으니

나무가 산을

붙들 수밖에

 

힘을 다해 뒤 잡아

나무들은 뒤 틀리고

구부린 채로 옹이를 맺고

 

단단하고 깊다란

마음의 굳은 살

뿌리 그것은

용의 근육을 닮았다

 

 

♧ 돌아와 그대 또한 꽃이 되리니 - 이현우

 

벼랑에 핀 꽃이 훨씬 더 아름답다.

폭염과 눈보라 다 이겨내고

끝끝내 살아남아 열매 맺는 그 모습

어느 꽃의 향기가 이를 지우랴.

우리 또한 저와 같은 간난艱難 속에서

희망이란, 꿈을 지킨 삶의 문풍지.

인적 드문 길섶이 문을 닫으면

한없이 못 견디는 고독 같은 거

남몰래 애태우던 사랑 같은 거

그네들은 무엇으로 대신 가질까.

잎 지고 서리 내린 계절이 와도

여전히 머무를 곳 없는 이들은

참된 행복이 어디 있는지

어떻게 내일 일을 기약하는지

골 깊은 산천으로 찾아가 보라.

그리운 이름 담은 메아리를 남긴 채

돌아와 그대 또한 꽃이 되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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