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까지 기온이 많이 올라 이상난동을 보이더니
비가 한 이틀 내리고 나니, 갑자기 서늘해진 느낌이다.
전에 하나둘씩 피어 있는 용담을 찍어두었는데
한라수목원에 나이가 찾는지 여러 송이 핀 용담이
이렇게 피어 그 오묘한 색을 내비치고 있었다.
용담(龍膽)은 용담과의 여러해살이풀로 높이는
20~60cm이며, 잎은 마주나고 피침 모양이다.
8~10월에 푸른빛을 띤 자주색 꽃이 줄기 끝이나
잎 사이에서 피고 열매는 삭과이며 말린 뿌리는
약재로 쓴다. 관상용으로 재배하기도 한다.
♧ 용담꽃 - 홍해리(洪海里)
비어 있는
마당으로
홀로 내리는
가을볕 같이
먼저 간 이를
땅에 묻고 돌아와
바라보는
하늘빛 같이
이냥
서럽고 쓸쓸한
이
가을의 서정
슬픔도 슬픔으로 되돌아가고
아아
비어 있는 마음 한 자락
홀로 가득하다.
♧ 늦가을 용담 - 김귀녀
인고의 세월
기다리고 또 기다리며
모두 떠난 빈자리에
함초롬히 피어있는 청순한 새색시
꽃반지 끼워주며
언제 오마고, 약속하고 떠난 임
언제 올까
굽이굽이 굽은 산길 바라보며
목 빠지게 기다린다
달님이 지나가면
말없이 웃고
새벽이슬 내리면 눈물 흘리고
중천에 떠오르는
해님을 보며
쌓인 설움 토해내며 울먹거린다
돌아오는 소식마다
가슴만 후벼 파고
뭉친 가슴 쓸어안고 서성이다 해가 지는
한 맺힌 여인
속가슴엔
시퍼런 멍 자국 골이 패인다
♧ 두고 온 용담 - 서연정
산행 때마다 보게 되는 몸부림이 있다
예순 나이가 넘어도
뵈는 것이 예쁜 그만큼
몸서리치게 가지고 싶어서
욕심은 또 젊을 적 육욕처럼 거칠어서는
눈독들인 것마다 움켜쥐려는 저 갈퀴손
뿌리째 내 뜰에 옮겨오고 싶은 꽃이 왜 없으랴
고스란히 두고 온 용담
이윽하게 바라만보는 날
끌어안고 싶은 갈비뼈가 홀로 으스러진다
♧ 용담꽃은 용담꽃 아니었다 - 한영옥
당신은 당신 아니었다.
흙담집 창호문 안에서
쏟아지는 눈발을 바라다 보는
가만한 웃음 당신을
쏟아지는 눈발 속에서 보았다
눈발마다 묻어나는 그 웃음 따라가다
나는 그만 그 방에 들었다
그런데 마주친 당신은 당신 아니었다
당신 비슷하긴 했어도……
용담꽃은 용담꽃 아니었다
청보라빛 입술에 산그늘을 걸치고
가을 풀섶으로 몸을 다 가린 용담꽃을
흔들리던 하루가 잦아드는 어스름에
나는 그만 꺾어들고 말았다
그런데 용담꽃은 용담꽃 아니었다
용담꽃 비슷하긴 했어도……
♧ 세석 평전 - 권경업
잔돌배기 밤하늘에
은하별이 쏟아지면
텐트에 개스등
불을 밝혀서
잊혀지는 산 이야기
아쉬워하며
은하수 기울도록
끝이 없는데
백무동 길목에서
헤어진 산친구
아쉬움과 그리움에
정을 더하여
님과의 산행길을
생각하다가
용담꽃 피는 밤을
나는 지샜다
................
*새석평전: 지리산 주능선상에 잇는 넓은 고원. 해방 후 빨치산의 군사훈련장이 있었다.
♧ 가을 산길에서 - 김길남
바람이 거센
산 능선의 나무들은
모두 다들 키가 작아 보인다
매서운 바람의
매를 피하기 위해
납작하게 엎드려
숨마저 가파르다
산이
나무를 잡아 주지 않으니
나무가 산을
붙들 수밖에
힘을 다해 뒤 잡아
나무들은 뒤 틀리고
구부린 채로 옹이를 맺고
단단하고 깊다란
마음의 굳은 살
뿌리 그것은
용의 근육을 닮았다
♧ 돌아와 그대 또한 꽃이 되리니 - 이현우
벼랑에 핀 꽃이 훨씬 더 아름답다.
폭염과 눈보라 다 이겨내고
끝끝내 살아남아 열매 맺는 그 모습
어느 꽃의 향기가 이를 지우랴.
우리 또한 저와 같은 간난艱難 속에서
희망이란, 꿈을 지킨 삶의 문풍지.
인적 드문 길섶이 문을 닫으면
한없이 못 견디는 고독 같은 거
남몰래 애태우던 사랑 같은 거
그네들은 무엇으로 대신 가질까.
잎 지고 서리 내린 계절이 와도
여전히 머무를 곳 없는 이들은
참된 행복이 어디 있는지
어떻게 내일 일을 기약하는지
골 깊은 산천으로 찾아가 보라.
그리운 이름 담은 메아리를 남긴 채
돌아와 그대 또한 꽃이 되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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