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디카 일기

눈 쌓인 오름 풍경

김창집 2012. 1. 27. 00:55

   

오름에는 눈이 적당히 쌓여야 좋겠다.

 

한라산처럼 웅장한 크기의 산은

눈이 계곡을 메워 그늘을 없애고

도톰하게 불어 보기 좋게 살진

부드러운 곡선을 볼 수 있을 테니까

눈이 많이 와도 좋지만.

 

오름은 그 자체로 원만해서

겨울에 말라버린 풀을 덮을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근래 들어 눈 오는 날이 많아서 좋다.  

그래서 오름 가는 주말이 기다려진다.

 

 

♧ 사람들은 왜 모를까 - 김용택

 

이별은 손 끝에 있고

서러움은 먼데서 온다

강 언덕 풀잎들이 돋아나며

아침 햇살에 핏줄이 일어선다

마른 풀잎들은 더 깊이 숨을 쉬고

아침 산그늘 속에

산벚꽃은 피어서 희다

누가 알랴 사람마다

누구도 닿지 않은 고독이 있다는 것을

돌아앉은 산들은 외롭고

마주 보는 산은 흰 이마가 서럽다

아픈 데서 피지 않은 꽃이 어디 있으랴

슬픔은 손 끝에 닿지만

고통은 천천히 꽃처럼 피어난다

저문 산 아래

쓸쓸히 서 있는 사람아

뒤로 오는 여인이 더 다정하듯이

그리운 것들은 다 산 뒤에 있다

사람들은 왜 모를까 봄이 되면

손에 닿지 않는 것들이 꽃이 된다는 것을

 

 

♧ 능선(陵線)을 보며 - 장윤우

 

산은 내겐 어려운 질문이다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曲線곡선의 觀音관음을

직선인 바다에 비하면

산은 때 없이 내게 반복해 왔다

地坪지평에 앉아

일몰의 붉음을 온 몸에 물들이던

젊은 날의 추억은 빛바래고

다시 산에 빠지는 이유는

내사 헤아리기 힘들지만

 

산은 있을 곳에 있고

없을 곳엔 무언가 반드시 숨겨놓는

配慮배려와 짓궂음의 兩性양성을 지닌

전설의 怪獸괴수

못 이겨 빗겨치는 빗발과

둘리는 안개를 머금고

감춘 秘意비의 한 자락으로 들쳐주는

너 앞엔 차라리 차돌로

엎어지는게.     

 

 

♧ 후미진 능선을 오르며 - 강남주

 

바람은 서로 어깨를 엮어

줄지어 선 나무들 앞에서 시위를 한다.

지친 자의 일몰 속으로 퇴진하는

한 시대의 수림.

부르튼 발을 뻗어

이 산하의 피곤함을 쉬게 한다.

 

더욱 거센 바람은

파도를 일으켜세우더니

나무는 뿌리에서부터 신음을 하면서

짚신을 챙긴다.

 

길들어 잘 달리는 바람은

일제히 갈기를 일으켜세우고

산과 강을 무차별 휩쓸어간다.

이 불한당의 바람을

어떻게 하랴. 어떻게 하랴.

 

우리는 모두가

신발끈을 단단히 묶는다

지친 곳 후미진 곳을 더듬어

바람을 거슬러 가면서

불안한 일몰을 통과하려고.

    

 

 

♧ 눈 덮인 삼도봉 능선에서 - 권경업

 

바람

섬뜩한 바람만 있다

까마득한 저 아래, 모든 번뇌를

가지고 온 것일까

이유 없이 다리가 무겁다

능선을 타고

능선을 가로질러

귓전을 때리는 바람

외면하듯 하얀 능선길에 선다

그리고 나는 간다

통일로 가는 하늘길을 따라

내가 산이 될 때까지

나는 가야 한다

.......................

*삼도봉 : 전북 무주와 경북 금릉. 충북 영동의 삼도의

경계에 있는 산. 해발표고 1,177m.

 

 

♧ 능선에 서니 - 김용언

 

손끝 시리게 하던

바람이 보인다

지문까지 지워진 어머니의 손끝에

굽이쳐 흐르는

강물

 

어머니는 어디론가 떠나고

뼈마디 홀치던 물줄기만

노을에 반짝이며 휘돌아 간다

사라지는 것은

떠날 때 비로소

반짝이는가 보다

 

능선에서 바라보면

지난 세월은

어머니의 등줄기

휘어진

눈물이었다

 

 

♧ 산 위에서 - 도종환

 

산꼭대기에 서서 보아도 산의 안 보이는 곳이 있다

웅혼하게 벋어 있는

밀려오고 밀려간 산자락의 내력과

육중함을 평범함으로 바꾼 그 깊은 뜻도 알겠고

영원하다는 것은 바로 그 평범하다는 데 있는 것도 알겠는데

산이 제일 잘 보이는 곳에 올라서서 보아도

다 못 보는 구석이 있다

산 아래 살면서 내 집 창으로 산을 보거나

일터를 오가는 길에 서쪽 벼랑에서 늘 보아오던 모습으로

언제나 그 산을 잘 아는 것처럼 말해왔는데

잘 안다는 그 짧음 한쪽에서만 보아온 그 치우침을

오늘 산 위에서 비로소 깨닫는다

가까이 있는 산 하나도 제대로 못 보는데

하물며 사람의 삶에 대해서는 어떠했을까

꼭대기에 오르기는커녕 말 한마디 깊이 나누어보지 못하고도

얼마나 많은 편견을 사람들에게 쏟아부었던가

산꼭대기에 올라서서 보아도 다 못 보는 구석이 있는 것을.

 

 

♧ 바다가 나를 구겨서 쥔다 - 조정

 

눈이 수평선을 지우고

바다가마우지 떼를 지우고 온다

소나무 숲을 지나 송림 슈퍼에서 뜨거운 커피를 산다

알루미늄 캔 속에 출렁이는 바다

낡은 목도리를 두른 타르콥스키 감독이

끊어진 길을 위해 낡은 자전거를 불태운다

딛고 올라가기에 인생만큼 부실한 다리도 없다

많은 침묵을 풀어 물 위에 내려놓은 사람들이 바다를 빠져나간다

굳이 떠나야만 했던 길을 되짚어 가는 동안

눈은 한정 없이 쏟아지고

출항을 포기한 집들은 문을 깊게 닫고 잠이 들 것이다

빈 탈의실이 문도 없이 떨고 서 있다

푸른 비치파라솔을 그려넣은 옆구리에 한 사내가 오줌을 눈다

내가 그만 바다와 저 비굴한 기다림과

이 추위 속에서 길을 잃을 것만 같다

빈 캔을 주머니에 넣고

운동화를 벗어 털면

병든 시곗바늘이 쏟아진다

엇갈린 바늘처럼 비명을 지르는 시계가 내 발바닥에 고인다

제때 제 곳으로 가지 못하는 발을 위해 나는 발목을 불태워버린다

거대한 냉기가 모래를 헤치고 엎드려

손을 내민다

조금 더 내리고 말 눈이 아니다

바다가마우지가 통째로 바다를 삼키며 올라온다

올라오지 않는다

바다가 나를 구겨서 쥔다

 

 

♧ 파문 - 이은봉

 

애초에 돌을 던지지 말아야 했다

돌에 맞은 호수는 이내 파문을 일으켰다

애써 마음 가다듬고 있는 호수를 향해

돌을 던진 것 자체가 문제였다

파문은 둥근 물결도 품고 있었지만

날카로운 파도도 품고 있었다

파도는 세상을 떠도는 한 자루 칼!

칼을 품고 있는 파문이 문제였다

칼은 어떤 것이든 찌르기 마련!

아무데서나 상처를 만들기 일쑤였다

매번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았다

한바탕 곪아 터지고 나서야 겨우 아물었다

누군들 아프지 않으랴

누군들 반란을 꿈꾸고 싶으랴

공들여 마음 가라앉히고 있는 호수를 향해

돌을 던진 것 자체가 문제였다

애초에 돌을 던지지 말아야 했다

돌을 맞고 어찌 파문을 일으키지 않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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