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고흥반도에 자리한 팔영산
세 번째 봉우린가 네 번째 봉우린가는 잊었지만
그리던 철쭉을 만났다.
시기가 지나서 높은 지대에서 한두 송이씩 보이다가
한 무더기 한창 피어오르는 걸 목격한 것이다.
한라산에선 본 일이 없는
연분홍 꽃잎이 매혹적이다.
산철쭉보다는 옅은 분홍이고
참꽃나무는 붉은 빛인데
이 나무의 꽃은 연한 빛을 띠고 있어
가녀린 빛이 너무 곱다.
♧ 철쭉꽃 붉은 입술 - 강세화
오월(五月) 한낮에 귓불 스쳐 바람 불고
은근하게 속삭이듯 입술을 달싹이는
철쭉꽃 흥건한 그늘에 샘물같은 피가 돌아
함께 마냥 젖고 싶은 간지러운 빗발이 치면
나는 또 하릴없이 몸이 달아오르고
어눌한 시선(視線)이 부풀이 그냥 주저앉고 싶다.
눈빛 조촐하고 붉게 타는 여린 가슴
꿈의 숨소리가 풍선처럼 드러나서
흔연(欣然)히 바라보다가 시(詩)도 얻는 내 곁에
소나기 한나절을 싱싱하게 부대끼며
입술을 깨물다가 눈 밝히며 웃는 얼굴
후끈한 사랑이란들 말로 어이 할거나.
♧ 철쭉(31) - 손정모
오월 눈부신 산야
불길처럼 치솟는 군영들
바람은 솔숲을 거쳐
계곡으로 휩쓸리고
요염한 선홍의 색채로
발가벗고
무릎 붙여
상기된 꽃잎이여
솔가지를 휩쓰는 바람결에도
꿈결인양 부신 눈빛으로
하늘을 우러러 미소짓는
너는 정열의 화신.
♧ 철쭉꽃 무리로 피는 그리움 - 정영자
막아야 되네,
지리산 운봉자락 아래
잎만 키 높이로 내려다보는 철쭉 능선을 너머
바람 속에 오르네,
앞서거니 뒤서거니
지나온 길,
그래도 할말은 남아
꽃으로 피고 있나.
천년 만년을 기다려
꽃으로 피고
보고 싶은 마음은 꽃몽오리에 담아
운봉너머 바래봉까지
아직도
그리움 남아서 꽃이 필 것이라는 데,
철쭉골 능선 오솔길에
사랑 하나
실바람 꽃타래로 지나고 있다.
함께 떠났지만
숲길에서 잃어버린
사람,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잃어버려
꽃무리로 피는 그리움,
피고 지고, 피고 지고
억만년을 기다리는 것이네.
♧ 철쭉꽃 - 나태주
아내와 더불어 뜨락에
불 붙듯 피어난 철쭉꽃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여보, 당신이 차마 그러실 줄은 몰랐어요
철쭉꽃이 된 전생의 내 또 한 아내
본마누라 시앗 보듯 시샘하여 눈 흘기며
우리 둘한테 하는
하염없는 핀잔 소리도 들리는
오늘은 다시 맑은 5월 하루 어느 날.
전생의 햇살이 따라와
나무 그늘 아래 곱게 수 놓인
4월 하루 그 같은 날.
어느새 나는 두 여자 사이에 끼어
눈치 보느라 어쩔 줄을 몰라 하고
아내 또한 얼굴이 빨개져서
몸 둘 바를 몰라 하네.
♧ 철쭉꽃 - 주근옥
눈보라
살 비집고 들어와 후려치네
순순히 결박당한 채
두 손 비비다가
닳아 없어지는 목숨
보일 듯 말 듯
웅크렸다가 활짝 허리 젖혀
피워내는 철쭉꽃
♧ 철쭉 - 하두자
언덕 위에 피어난 자유
아지랑이 혹은 부활이라도 좋다
편지 한 장으로는 전할 수 없는 이야기를
도화지에 버팀의 끝으로 붓을 찍고
가로와 세로, 줄을 긋는
그리고 싶은 걸 다 그린다
날 밤 새워 온, 침묵은 깨어져
비어 있는 내 잔에 가득 채워
데칼코마니로 화려하게 찍어낸다
♧ 바래봉 철쭉 - 권경업
그대 바라볼 수 있음은
소리치지 못하는 환희입니다
화냥기라구요?
아니에요, 그저 바라만보다 시드는
바래봉 노을입니다
아니 노을 같은 눈물입니다
눈물 같은 고백입니다
♧ 철쭉꽃 - 박얼서
타향 하늘 아래
그리움 지천으로 피어날 때
만산(萬山)을 물들이고
불쑥 환희로 일어서는 아픔
봄비 후드득 지나간 뒤
아쉬움 정녕 시든다 할지라도
그리움 툭 꺾지는 말자
유년을 달려온 꿈
오늘의 만개 이만큼 서글퍼도
당신 뒤를 쫓는
짙푸른 청춘이 있어
그 시절 고향 하늘
여전히 남아있질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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