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디카 일기

7월에 만나는 송엽국

김창집 2012. 7. 1. 16:18

 

7월 첫날부터 비가 내리려나보다.

우산도 없이 오름으로 간다.

긴 낮, 숲길 걷기부터 하자고

돝오름 둘레길을 걷는다.

 

아직 덜 익은 복분자

길 가득 짙은 푸르름 안은 나무들

비목나무, 산개버찌, 말오줌때, 천선과나무,

자귀나무, 예덕나무, 산뽕나무, 덧나무…

 

바로 옆이 비자림이어서

비자나무를 많이 심어 놓았다.

다시 오르는 돝오름, 7월엔 들꽃들이 별로 없어

돌가시나무, 낭아초, 돌나물, 개망초가 주인이다.

 

동백동산으로 가다 연못에서 수련을 보며

아직 피지 않은 어리연꽃을 기다린다.

흐린 날 동백숲은 너무 어두워

컴컴한 숲에서 새로운 7월을 맞는다.  

 

 

♧ 7월 - 김지헌

 

어디선가 속삭이는 소리

옆집 은행나무 두 그루가

사랑을 하고 있나봐

 

숨가쁜 호흡이 들려

 

잔뜩 귀 기울이다

더 가까이 가 보았더니

시치미 뚝 떼고

잔기침 소리만 내고 있잖아

 

짓궂은 생각이 들어

툭툭 건드렸더니

하늘 한쪽 기울여

가장 깨끗한 햇살 파편들을

눈 못 뜨게 쏟아 붓잖아.

 

 

♧ 7월 - 권경업

 

닮으라며, 하늘

되게 몰아치는 된바람

숲은, 숲은

아랫입술 잘근 깨물고

휘청이며 뒤척이며

새파래져 간다   

 

 

♧ 7월 - (宵火)고은영

 

헐떡이다 말 염치없는 하루가 어지럽다

습한 대기에 뜨겁게 접지한 태양의 숨결

뜨거운 화염은 골반을 거쳐 빈곤한 다리에 머물고

질겅질겅 한낮을 씹어 젖히며 쇄골을 핥던 더위가

늘어진 가슴으로 와 안녕을 묻는다

 

오늘처럼 찬란한 햇살을 본 적이 있나요?

 

아이들의 맑은 언어가 자장가처럼

가까이 들렸다 사라지는 오늘의 일기에

소나기 소식이 얌전히 접혀있고

느티나무 가지에 그네를 타던 미지근한 바람이

나의 아킬레스건을 들추고

오후만 되면 꾸벅거리는 습한 내 이마를 탁탁 친다

 

정신 차려 이 친구야   

 

 

♧ 7월의 전설 - 임영준

 

뜨거운 태양을 짊어지고

스스로 돌아보고 닦아내었나니

 

과연 싱그러운 초록 바람 앞에

거칠 것이 있었을까

 

궁극을 바라며 호된 소나기 한줄기도

감사하고 또 감사하였네라

 

 

♧ 7월이 그리는 수채화 - 권오범

 

예정된 보폭으로 건너야 할 성하의 강

소서 초복 대서 중복

초목들 이파리만 도톰하게 덧칠하다보니

일렁이는 푸른 파도가 어쩐지 단조롭던 차

 

반질반질한 배롱나무 허구리

간지라기 바람이 때맞춰 집적거려

우듬지마다 토해버린 오르가슴으로

그런대로 구도가 잡힌 화판 아랫도리

 

삶이 송두리째 척척하도록

눈치코치없이 지짐거릴 장맛비도

무참히 주리 틀어 쥐어짤 열대야도

저 백일기도는 막지 못하리라

 

허술한 땀등거리에

성긴 햇살 꽂히는 공원벤치

심중에 펼쳐놓은 이젤 위로

붉은 물감이 함초롬히 번지고 있다   

 

 

♧ 7월 - 반기룡

 

푸른색 산하를 물들이고

녹음이 폭격기처럼 뚝뚝 떨어진다

 

길가 개똥참외 쫑긋 귀 기울이며

누군가를 기다리고

토란 잎사귀에 있던 물방울

또르르르 몸을 굴리더니

타원형으로 자유낙하한다

 

텃밭 이랑마다

속알 탱탱해지는 연습을 하고

나뭇가지 끝에는

더 이상 뻗을 여백 없이

오동통한 햇살로 푸르름을 노래한다

 

옥수숫대는 제 철을 만난 듯

긴 수염 늘어뜨린 채

방방곡곡 알통을 자랑하고

계절의 절반을 넘어서는 문지방은

말매미 울음소리 들을 채비에 분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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