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디카 일기

비양도 해녀콩 꽃

김창집 2012. 7. 2. 00:03

 

한 해라도 건너가 보지 않으면 못 견디는 비양도

올해도 어김없이 오름길라잡이 6기생들과

지난 토요일에 다녀왔다.

 

가뭄의 영향인지 일찍 피었던 꽃들은

다 지고 없는데

이 해녀콩 꽃만 한창이었다.

 

가자마자 참다랑어 회에 막걸리 한 잔 걸쳐서인지

콩꽃 빛이 너무 고와 보인다.

바다 속에서 숨막혀 고생하는 누이들

숨은 속살 빛인 양 애처롭다.  

 

 

♧ 해녀콩 - 정군칠

 

태아의 발길질에

멀미나는 세상이 있었다지

저승길 멀다 해도

바닷속 그 길만 할까

들숨이 있는 한 살아있는 목숨이라

홑적삼에 달랑 바지 한 잎

 

날아가다 멈추었다는 비양도, 팔랑못 가

바다 향해 섬칫섬칫 줄기 뻗은 해녀콩

줄기 끝 콩꼬투리 야물게 매달려 있다

 

바다는 날콩의 비린내를 노을빛으로 받아낸다

 

바닷속 드나듦이 사는 길이라

속엣것 지우려

한 됫박 날콩을 먹었다지

불턱에 모여 앉은 젊은 해녀들

상군 해녀의 허리에 찬 납덩이같은,

탯줄처럼 이어지는 이야기를

듣고 또 들었다 하지

 

그런 날 바다의 낯은 놀빛 더욱 붉어지고  

 

 

♧ 비양도 - 최원정

 

한림항에서 도항선 타고

바닷길을 가르면

마음 안에 있는 섬,

그 곳에 내가 있네

 

작은 어선 몇 척

섬을 지키고

전교생이 한 명뿐인 분교 담장엔

갯강구 무리지어 한살림 차리고 있다

 

검은 화산석 사이에서 자라는 해녀콩

어느 가련한 해녀의 눈물로 피어나

잊지 못한 숨비소리 들으며

천 년 넋을 달랜다  

 

 

♧ 海女 - 진의하

 

해풍 속에서 나왔다가

해풍 속으로 사라지는

늙은 누이는

갈매기다.

 

날마다

바람을 등에 없고

물구나무서기로 자맥질하며

꿈을 캐는

갈매기다.

 

하루의 햇살도 비린내로 절인

깊이를 알 수 없는 수심

망망대해에서

파도를 탄다.

 

아득히 들리는

늙은 누이의 피울음 소리

아프칸 상공을 나는 포성처럼

휘-휘

허공에 쏟아지는 휘파람 소리

물빛 글썽이는 은비늘로

출렁이는 바다.   

 

 

♧ 海女 - 강세화

 

마음이 고요하면 주저없이 통하는가

한 세상 떠도는 바람은 파도에 실어두고

아득히 바다 밑 속이사 생생히 넘나드네.

솔잎 우려낸 아릿한 물빛을 품고

오금 당기는 살깊이 저린 느낌이 도지면

어설피 감추지 못하는 알섬이고 싶겠네.

숨을 다잡아 찬연하게 솟구칠 때마다

새로이 피가 돌아 살아나는 기운은 아마도

애당초 몸 속에 바다가

깊숙이 들어찬 노릇이겠지.  

 

 

♧ 방어진 해녀 - 손택수

 

방어진 몽돌밭에 앉아

술안주로 멍게를 청했더니

파도가 어루만진 몽돌처럼 둥실둥실한 아낙 하나

바다를 향해 손나팔을 분다

(멍기 있나, 멍기-)

한여름 원두막에서 참외밭을 향해 소리라도 치듯

갯내음 물씬한 사투리가

휘둥그래진 시선을 끌고 물능선을 넘어가는데

저렇게 소리만 치면 멍게가 스스로 알아듣고

찾아오기라도 한다는 말인가

하마터면 정신나간 여잔가 했더니

파도소리 그저 심드렁

갈매기 울음도 다만 무덤덤

그 사투리 저 혼자 자맥질하다 잠잠해진 바다

속에서 무엇인가 불쑥 솟구쳐 올랐다

하아, 하아- 파도를 끌고

손 흔들며 숨차게 헤엄쳐나오는 해녀,

내 놀란 눈엔 글쎄 물 속에서 방금 나온 그 해녀

실팍한 엉덩이며 볼록한 가슴이 갓 따 올린

멍게로 보이더니

아니 멍기로만 보이더니

한 잔 술에 미친 척 나도 문득 즉석에서

멍기 있나, 멍기- 수평선 너머를 향해

가슴에 멍이 든 이름 하나 소리쳐 불러보고 싶었다   

 

 

♧ 해녀 - 강정식

 

곤고한 날들만큼이나 헤어진 검정 물 옷 입고

해풍에 등 대고 기다리는

푸른 바다로 물질을 간다

질척대는 남편에게 몸을 주듯

철썩이는 물살에 내어 주고

자맥질해 내려간다

갈매기조차 놓고 간 시간 속으로

파도에 밀려온 날들만큼이나

칙칙하고 어둑해진 물속

죽고 사는 것이

숨 한끝 밖인 그 가장자리

천년을 가라앉아 기다리고 있는

바위 문 두드려 본다

과거와 지금 사이에서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물밑과

기다리는 이 없는

날들 사이를 들락이면서

눌러 참았던

목쉰 날숨 소리만 길게

대답 없는 바다를 부른다

갈매기를 부른다

 

차가운 물살

그녀를 끌어안고 놓으려 하지 않는다  

 

 

♧ 해녀박물관 - 하영순

 

탐라의 초석이 되었던 해녀의 손때 묻은

흔적이

볼거리로 자리매김 하고 있는 해녀박물관

 

스쳐 지나기엔 가슴 아픈 그네들의 삶이

한자리에 모여 있다

한적한 어촌 마을에

 

구석구석 숨비 소리

귓전을 울리지만

그 소리만은 누구도 이해 할 수 없다

오직 내 뱉는 그녀만이 아는 소리다

 

소라. 전복이

그녀의 목숨을 앗아간 순간순간

20m 물속 전복 한 마리 눈에 들어온 것이

놓쳐버린 촌음이 되어

영영 물 밖으로 올라오지 못한 해녀의 일생이

내 뇌리를 강타하는 시간

 

다리에 경련을 느끼면서

묘한 연정이 고개를 들어

피어 보지 못하고 처절하게 던져 버린 해녀의 명복을 비는 마음

묵념을 하고 관람 관을 뒤로 하는데

 

빗속을 헤엄치고 불어오는 바람 속에

휴~ 하고

숨비소리 들린다.   

 

 

♧ 제주남원 해녀의 집 - 박태강

 

바다 끝자락에 붙은 언덕위에

검은 돌로 쌓아 지은 건물

해녀의 집

앞을 보면 망망 대해 푸른 물빛

검은 갯바위가 어울려 노닐고

뒤에는 한라산의 푸르름이 눈가득한 곳

바다에서 삶을 영위하는

해녀가 잡은 고기로

길손들의 넋을 빼앗는 해녀의 집 음식맛

특미 갈치조림은 담백하면서

감칠맛 나는 특유의 향기로

입가진 사람들의 탄성을 부른다

주인아저씨의 해학스런 이야기

보이는 바다 푸른 오름 어울려

즐거움이 아리는 곳 해녀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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