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디카 일기

해바라기, 태풍 지나간 자리

김창집 2012. 9. 11. 00:24

 

태풍이 잇달아 지나간 밭에

해바라기 잎이 마구 찢어진 채로

약간 상한 꽃을 떠받들고 있다.

 

우리가 흔히 해바라기에 대한

중대한 오해를 가지고 있는데

꽃이 해를 따라 돈다는 생각이다.

그것은 해바라기가 어려

줄기가 비교적 연할 적에 태양을 향해

몸을 돌림으로써 햇빛을 많이 받아

영양분을 만들려 그러는 거고,

다른 대부분이 식물도 그렇다네요.

몸과 잎이 커지고 몸이 굳어버리면

그럴 수도 없고, 필요도 없어

심지어 태양을 등지고 있는 것도 많다.

 

해바라기는 국화과에 속한 한해살이풀로

줄기는 높이 2m 정도로 곧게 자라고 강한 털이 있으며,

잎은 넓은 달걀꼴로 가장자리에 톱니가 있고 어긋나게 난다.

8~9월에 노란색의 둥글고 큰 꽃이 줄기 꼭대기에 피고,

씨는 기름을 짜서 등유(燈油)로 쓰거나 식용한다.

양지바른 곳에서 잘 자라며,

중앙아메리카가 원산지로 세계 각지에서 분포한다.  

 

 

♧ 해바라기의 비명 - 함형수

    -청년 화가 L을 위하여

 

나의 무덤 앞에는 그 차거운

비ㅅ돌을 세우지 말라

나의 무덤 주의에는 그 노오란

해바라기를 심어 달라.

그리고, 해바라기의 긴 줄기 사이로

끝없는 보리밭을 보여 달라.

노오란 해바라기는 늘 태양같이

태양같이 하던 화려한

나의 사랑이라고 생각하라

푸른 보리밭 사이로 하늘을

쏘는 노고지리가 있거든

아직도 날아오르는

나의 꿈이라 생각하라

 

 

♧ 해바라기의 변명 - 김형출

 

시방 나는 미친 태양이다

황금빛이 유난히 예리하게 보이는 것은

태양을 사모하기 때문이다

시원한 땡볕이 그립다

팔월의 아침은 강인하다

사막에 뿌리 내린 선인장처럼

보도블록 틈새에서 탈골된 생명처럼

태양은 황금빛 꽃을 피운다

변절된 배반은 해바라기라는 이름일 뿐

강인함은 못되리라

녹색의 정원에 태양이 눈부시다

황금빛으로 세공한 고호의 해바라기가

벽에 붙어 우리 가족 이야기를 엿듣고 있다

아들 비장에도 해바라기의 꽃씨가 피어나고

이글거리는 태양빛으로 또 다시 황금빛을 심어다오

파란 하늘 사이로 노을이 보이거든

우리는 땡볕 한 줌 호주머니에 넣고서

해바라기가 피어있는 잉카제국으로 달려가리라

너의 확장된 기다림을 위하여   

 

 

♧ 해바라기 - 신현정

 

해바라기, 길 가다가 서 있는 것 보면 나도 우뚝 서보는 것이다.

 

그리고 하루에도 몇 번이고 쓰고 벗고 하는 건방진 모자일망정

 

머리 위로 정중히 들어 올려서는

 

딱히 누구라고 할 것 없이 간단한 목례를 해보이고는

 

내 딴에는 우아하기 그지없는

 

원반 던지는 포즈를 취해보는 것이다

 

그럴까

 

해를 먹어버릴까

 

해를 먹고 불새를 활활 토해낼까

 

그래 이렇게 해야 한다는 거겠지

 

오늘도 해 돌아서 왔다.   

 

 

♧ 해바라기 - (宵火)고은영

 

나는 너로부터 탈골되었다

지상의 모든 기억들이 하나 둘 사라져 갔다

412개의 뼈 들이 서로 엉켜 춤을 추웠다

우리 유역에 불던 바람은

저 먼 강 하구로부터 수몰된 본능을 깨우며

모락모락 안개로 피어올랐다

음험한 배고픔이 거리를 배회했다

 

염전 같은 거리

사랑은 비로소 어둠으로 사라져 갔다

그리고 몇 개의 주검이

또 다시 거리를 떠돌았다

마른 잎들은 서로에게 따뜻한 위로를 물었다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히는 일은

다시 만남을 예고하는 여백이라고

 

 

나의 방은 온통 초록의 숲이다

검푸른 초록에서 나는

깊고 깊은 우울에 젖어 모더니즘을 읽는다

균형을 잃은 나의 시어들은 환기가 필요하다

사랑 지상주의에 입각한 양심과 자유를 향한 갈망은

이제야말로 선명하게 부각돼 와야 한다

 

나는 믿고 싶지 않다

불황의 그늘에 가리어진 남루한 눈물들

그 길고 지리한 염원과 의혹

이미 주검으로 돌아앉은 사랑을 부르는 허무

지독한 목마름에 뭉클하게 걸린 그것은

진실하고 아름다운 사랑이었다고

이제 말할 수 있겠다

 

그러나 사랑은 없다   

 

 

♧ 해바라기 광장 - 김종제

 

소낙비에 쉬이 꺼지는

촛불 대신에

풍에 가볍게 찢어져버리는

깃발 대신에

우리들의 광장에

해바라기를 심으면 어떨까

시커먼 돌을 다 들어내고

발에 짓밟힌 잔디도 없애버리고

어머니 같은 흙을 깔아놓고

아버지 닮은 저 태양을

광장에 가득 피어나게 하면 어떨까

한가운데도 구석진 곳에도

쑥쑥 잘 자라서

우리들만큼 키가 크면

둥근 얼굴 서로 맞대고

그옆에 나란히 서 있고 싶어지는

해바라기숲을 만들면 어떨까

 

 

그 노오란 빛깔에 취해서

온갖 나비도 날아들고

어느새 씨앗이 익었다고

처음 눈 마주친 사람에게도

울렁울렁거리는 가슴으로

사랑을 고백하도록 하면 어떨까

어느 하루 쉬는 날이면

가족들 다 데리고 광장에 나와

아직 꽃 덜 핀 곳에 앉아서

하하하하, 입 크게 벌리며 웃는

해바라기가 되면 어떨까  

 

 

♧ 해바라기 - 홍수희

샛노란 그리움을 깃발처럼 펄럭인다,

너무 길어버린 모가지

인적 없는 강가에 얹어 두고

 

한걸음에 쫓아보는 상행선 열차

그대 그리운 뒷모습 오간 데 없고

 

늘 이마 위로 떠도는 구름

빼앗긴 마음은 쉴 곳 없는데

 

한 송이 꽃으로 태어나기 전

이미 너는 네 것이 아니었으니

 

깎아지른 벼랑 위로 자꾸 오르는

지평(地平)없는 허공 위로 자꾸 오르는

 

샛노란 그리움을 깃발처럼 펄럭인다,

만종(晩鐘)의 종소리로 펄럭거린다

 

'디카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부처꽃으로 남은 여름  (0) 2012.09.13
야생의 미국나팔꽃  (0) 2012.09.12
무릇꽃과 가을 시편  (0) 2012.09.10
우리詩 9월호와 여름새우난초  (0) 2012.09.05
권경업의 지리산 시편  (0) 2012.09.04